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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승범 Nov 10. 2015

나의 '응답하라 1988'

88  서울올림픽 개막일 멍청한 관악산 해프닝

1988년 9월 17일 서울올림픽 개막일 저녁, 나는 관악산 봉천능선에서 멀리 잠실벌 불꽃놀이를 우울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당시 제대를 6개월 남겨둔 나는 수도권에 위치한 통신부대에서 수도권 지역 유선 통신망 유지보수를 관리하는 중대 통신 운영병으로 복무하고 있었다. 군대에서 행정병은 편리한 보직의 하나이다. 통신 운영병은 그런 행정병  중에서도 소위 '군대 땡보직'이었다.


시도 때도 없이 발생하는 유선 통신망 장애를 보수하기 위해 중대원들이 출동하면 함께 상황 파악을 위해 밤도 새우며 통신센터와 소통했다. 덕분에(?) 작업이 없는 평일에는 오후 내무반에서 낮잠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허락되었다.


더구나 외부 작업자 편성을 맡고 있는 나는 한시라도 갑갑한 병영 밖으로 나가고 싶은 병사들에게는 물론 선임들도 눈치를 보게 하는 어설픈 '완장'을 차고 있었다.


1988년 9월 16일 서울올림픽 전날 비가 내렸다. 더구나 천동 번개도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지역 전화국에서 근무하던  중대원으로부터 관악산 중계소와의 통신선로 단선 장애보고를 받았다.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외부 작업이 많은 우리 중대는 집에 요청하여 몇 벌의 사복과 운동화를 받았다. 수도권 부대로 외출 외박이 많은 관계로 나도 사복과 운동화를 준비해 놓았다. 1988년 9월 17일 서울올림픽 개막일, 그날은 유난히 조용했다. 중대원들은 영내 청소 등을 하며 올림픽 개막식 TV 시청을 준비하고 있었다.


문득 관악산 중계소 통신선로 단선은 쉬운 작업일 것 같았다. 그동안 일지를 보면 장애 지점이 대부분 동일했다. 심지어 중대원의 급한 비공식 외출 기회를 만들기 위해 전화국 근무자와 협업(?)하여 고의 단선도 자주 발생시키는 지역이었다.


올림픽 개막식에 크게 관심이 없는 나는 이 장애 복구를 일찍 끝내고 전화국 근무자와 입을 맞춰 복구 시점을 늦추면 서울 시내에서 영화나 목욕을 할 기회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통신 운영병으로 실제 작업지에서의 실무경험이 적은 나는 일병 중에서 유비보수작업도 잘하고 외출도 시켜주고 싶은 후임병과 함께 부대를 나섰다. 후임병은 장애 지점에 대해 자신 있게 확신했다. 덕분에 나는 기분 좋게 다음 계획을 짜며 가벼운 발걸음이었다.


후임병이 장애 지점으로 지목한 관악산 인근에 위치한 부대 옥상 단자판 근처는 깨끗했다. 전날 번개에 의한 단선까지 고려하여 근처 야산까지 수색했지만 단선지점은 찾을 수 없었다. 전화국 근무자는 산 위쪽에서 단선인  듯하다는 테스트 결과를 알려왔다. 그때까지도 그날의 악몽을 예상하지 못했다.


부대 쪽문을 나가 관악산 등산로 초입까지 수색하던 우리는 관악산 정상 중계소에서 거꾸로 단선 지점을 찾기로 했다. 우리는 면티와 청바지 차림으로 군용 전화기 등 장비를 들고 땀에 흠뻑 적으며 관악산 정상을 향해 산행을 시작했다.


서울올림픽 테러대비를 위해 관악산 중계소 인근에 주둔하고 있던 특전대원들에게 어렵게 신분확인을 하고 중계소 내 통신파견대에 들어갔다. 소속 중대는 달랐지만 같은 통신단 부대원들이라 편하게 라면도 얻어먹고 잠시 휴식도 취했다.


그리고 우리는 관악산 중계소에서 역으로 통신선로를 따라 관악산을 내려왔다. 해당 통신선로는 한전주나 전신주를 이용하지 않고 일반 나무를 이용하여 장애물을 넘거나 야지에 그냥 뿌려지듯 놓여 있었다. 나무에 걸쳐진 통신선로를 따라 내려가다 보면 덤불 속으로 사라져 버리기 일쑤였다.


그렇게 한참을 내려오던 우리는 통신선로를 잃어버렸다. 문득 정신을 차리니 우리는 일반 등산로에서도 크게 벗어나 관악산 숲 속 어딘가에 있었다. 갑자기 두려움이 느껴졌다. 빨리 산을 내려가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산에서는 길을 잃으면 계곡을 따라 내려가면 하산할 수 있다는 말이 생각났다. 그렇게 물이 없는 계곡을 따라 하산하는 도중 날이 어두워졌다. 그리고 멀리 잠실벌로 추정되는 곳에서 폭죽이 떠지는 모습이 작게 보였다. 마음이 더욱 급해졌다.


그렇게 산을 내려오던 우리 앞에  갑자기 튼튼한 철책이 나타났다. 어두운 밤에 마주한 철책이 끔찍했지만 왠지 민가 근처라는 안도감도 들었다. 그 철책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갑자기 우렁찬 소리가 들었다. "손 들어 움직이면 쏜다. ○○○" 군부대였다. 또한 우리는 아직 당일 암구호를 수령하지 못했다. 머뭇거리며 군인이라며 사복 속에서 인식표와 외출증을 내밀었다. 우리를 향하고 있는 싸늘한 총구가 서늘했다. 그게 공포탄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랬다.


잠시 후 그 부대 5분 대기조가 출동했고 그들의 지시에 따라 이동하여 작은 철책 통문을 통해 부대로 들어갔다. 당직실까지 이동하는 동안 5분 대기조 1/4t 트럭 바닥에 엎드려져 '범죄자' 취급을 받았다. 심지어 흰 밧줄에 뒤로 포박까지 당했다. 가끔 끼득거리는 5분 대기조원들은 나름 즐기는 듯했다.


당직실에서 신원 확인을 마치고 그들에게서 간단한 저녁을 얻어 먹고 부대로 복귀했다. 그 부대를 나와보니 그곳이 남태령이었다.


부대에 복귀하니 그 사이 김포지역 통신망 장애로 급하게 꾸려진 중대 작업반이 출동한 상태였고 그 운영관리를 일직사관이 직접 하고 있었다. 제대 6개월 남겨둔 말년 병장이 중대행정실에서 일직사관에게 심하게 얼차려를 받는 유쾌하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그날 출동한 작업반이 통신망 유지보수를 끝내고 들어오는 새벽까지 대기하고 있었다. 그 후에도 잠이 오지 않아 뜬눈으로 지새우고 아침 일찍 신뢰하는 선임병을 조장으로 전날 단선 수리하지 못한 관악산 작업을 내보냈다.


2시간이 지난 후 전화국  근무자로부터 관악산 중계소 통신선로가 복구되었다는 보고를 받았다. 전날 관악산 초입에 위치한 부대 옥상 통신단자에서 그리 멀지 않은 부대 밖에서 번개에 의한 단선 수리였다. 전날 오전 우리가 수색을 멈춘 지점에서 불과 십여 미터 전방이었다. 덤불 더미가 거북해 피했는데 그 너머 바위 위에 걸쳐진 통신선로가 있었다.


말년 병장이 사서 개고생 한 88 서울올림픽 개막일 끔찍한 해프닝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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