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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even Yoo Dec 18. 2016

결혼과 함께 나의 삶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신혼 부부 1년차

결혼식 1개월 전 아내가 일을 그만두었다. 그녀의 결정을 존중하고 그것이 그녀를 위해 올바른 결정이라고 믿었다. 다만, 이런 경우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을 뿐이다. 내가 나의 커리어를 내 삶에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만큼 미래의 아내도 나처럼 커리어를 계속 발전시키고 싶을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한 사람만 일하고 한 사람은 집에서 일하는 부부 생활은 어떨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 아내가 집에 있어서 혹시 심심하지는 않을지, 내가 오기만을 하루 종일 기다리지는 않을지. 


아내에게 이유가 무엇인지 물어보았더니 그 동안 일을 많이 했고 이제는 쉬면서 정말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다며 결혼 후 여러 일들을 벌이기 시작했다. 나 또한 네가 행복하다면 그게 어떤 일이든 상관없다고 했다. 내 수입만으로도 우리의 재정은 충분하며 몇 천만원 더 번다고 우리가 그만큼 더 행복해지지 않기 때문이다. 돈은 어느정도 벌고 나면 단위당 임팩트가 작아지는 것 같다. 우리의 가정에서는 우리의 시간이 돈보다 더 가치있다. 


그리하여 아내는 요리와 베이킹을 배우기 시작했다. 집에서 요리 책, 블로그, 동영상을 보고서 연습한다. 주 4일 Haelee's Kitchen (아내의 가정식당 이름)을 열고 , 주 1회 Haelee's Bakery (아내의 가정빵집 이름)을 연다. 일을 하고 돌아오면 아내가 퇴근 시간에 맞춰서 따뜻한 저녁상을 차려 놓는다. 한달 간의 저녁 메뉴는 그 전 달에 미리 짜여져 공개되며, 한식을 중심으로 일식/중식/양식이 섞여 있다. 일주일에 한 번은 본인이 새로 도전하는 시간이 많이 걸리는 요리를 하며, 한 번은 본인이 익숙한 요리를 하는 식으로, 짜임새를 고려하며 만든다. 처음 메뉴를 짤 때는 같이 만들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아내의 요리 솜씨와 메뉴의 종류가 늘어서 지금은 혼자서도 잘 만든다. 식단이 미리 짜여 있으므로 일주일에 한번씩 필요한만큼만 재료를 구입하여 재료의 신선도를 유지한다. 


밀푀유나베: http://bit.ly/2gO9evQ


먹어보고 특별히 맛있는 음식들은 요청에 따라 다음 달 메뉴에도 재등장하기도 한다. 아래는 내 요청에 따라 세 달 연속 메뉴에 등장한 두부 버섯 전골. 유부 주머니를 한땀한땀 만들어서 시간이 많이 걸린다. 

두부 버섯 전골: http://bit.ly/2hwrVIv


그리고 스페셜로 내 생일에 내가 먹고 싶은 케익의 종류와 저녁 식단을 주문 받아서 집에서 만들어 놓는다. 한 날은 치즈 케익에 딱 맞는 그릇을 샀다며 신나서 만들었다. 

치즈 케익: http://bit.ly/2i27Pm7


슈 안에 들어간 크림이 시중에 파는 것처럼 달지 않아서 더 맛있는 크림 퍼프. 언제나 새로운 걸 배우는 건 낯설고 어려운 일인데, 아내가 빵을 굽고, 요리를 할 때 보면 즐거워 보인다. 누가 옆에서 지도해주는게 아니니까 헷갈리는 디테일들을 혼자서 상상해보고 실험해보고 마음에 듣는 방향으로 계속 발전시켜나간다. 

크림 퍼프: http://bit.ly/2gYvEPJ


하와이의 한 일본식당에서 엄청 맛있는 연어 요리를 먹고서 감명 받아서 집에서 처음 시도해본 연어 요리. 

연어 요리: http://bit.ly/2hM02tp


아내가 일을 그만둔 덕분에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에 더 집중할 수 있고, 아내는 아내가 좋아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아내는 결혼하고서 요리하고, 빵을 굽고, 반려견과 산책을 더 자주 하며, 여유있는 아침 식사를 즐긴다. 우리의 주말엔 동네 빵집 (Hoffman's bakery)에서 햄앤치즈 크로와상과 시금치 크로와상을 사 먹으며 아내는 Pure Barre에 운동을 다녀오고 나는 평소 읽고 싶었던 책을 읽고 게임을 한다. 


아내는 나보다 기본 행복 지수가 더 높은 사람이고, 남편이 특별한 무언가를 해줄 때에 더 행복해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스스로 행복한 사람이다. 집에서 이것저것 배우며 혼자 행복해 한다. 요리 말고도, 캘리 그라피를 배우고, 공룡 케일과 바질을 집에서 키워서 요리에 쓰고, 가구를 샌딩/스테인하여 색을 바꾸며, 직접 디자인한 그림을 액자에 담아서 집을 꾸민다. 이 글의 제목 배경으로 쓰인 액자에 담긴 디자인을 아내가 만들었다. 


우리 둘 다 집돌이/집순이인 덕분에 (쉴 때 활동적인 일을 하지 않고 집에서 쉰다) 집에 오래동안 있는 것을 좋아한다. 친구들로부터 종종 집에만 있으면 나가고 싶지 않냐는 질문을 받는데, 밖에 나가면 집에 가고 싶고 밖에 나간 김에 필요한 모든 일을 끝마치고 온다. 그러므로 밖에 나갈 때는 어떤 일을 할지 명확히 정리해서 동선까지 고려한 뒤 출발한다. 둘의 에너지 레벨이 비슷해서 좋다. 


무엇보다도, 아내를 만나 삶의 소중한 순간들을 즐기는 법을 배우고 있다. 내가 들이는 현재의 노력이 미래의 어떤 보상을 위한 것이 아니라 현재 이 배움이 그리고 이 순간이 즐겁기 때문이란걸 배우고 있다. 돈과 명예를 쫓던 내가 삶에서 가장 기다려지는 순간이 다음에 다가올 승진, 보너스, 새로운 직업적인 기회가 아니라, 아내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는 우리의 저녁 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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