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낮에도 여름의 저녁처럼 묽은 해가 비추는 요즘 지난가을 열심히 쫓아다닌 단풍을 생각한다. 철저히 컨택트리스 시대인 요즘, 떠나보내고 또 맞이하는 일이라서일까 계절을 감각하는 일은 감성의 통로가 되곤 한다.
얼마 전 나의 친한 Y양의 생일을 멀리서 축하해주며 연락도 잘하지 못하고 만나지도 않지만 자주 생각나고 생각나면 애틋한, 그런 사람들을 떠올렸다. 내가 하는 일이라곤 틈 날 때마다 겨우 SNS 라이크나 눌러주는 일이지만 핸드폰 화면 속 짧은 알람이 그들에게도 내 생각을 짧게나마 하게 해 주면 좋겠다는 생각은 욕심일까.
몇 안 되는 나의 가장 친한 무관심한 친구, 재미있는 친구, 쓴소리 잘해주는 친구, 깊은 대화를 하는 친구 중 어릴 때부터 서로의 인생에 대해 너무 잘 알아서 굳이 연락하지 않아도 자주 생각하게 되는 친구 A가 떠나기 전 마지막인데 나오지 않았다며 잔뜩 취한 목소리로 서운하다며 전화가 왔다. 친구 A는 나와 다른 친구들에 비해 그렇게 풍족하지도, 무언가 특출 나지도 않지만 자기 꿈을 향해 말 그대로 무소의 뿔처럼 돌진하는 친구인데 기타리스트, 뮤지컬 배우 등의 경로를 거쳐 파일럿이 되겠다고 대리기사와 쿠팡 알바를 뛰며 준비를 마치고 4년간 공부하러 떠난다고 했다.
우리는 지금까지 놓치지 못한 꿈이라는 것을 무기처럼 쥐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개인적으로 브랜드 샘플을 만들면서 느낀 괴리와 회의를 넘어서려고 전라도까지 철학 공부도 하러 다니고 부모님 일을 도와 경제적 자유를 위해 허무하게 올 해를 코로나와 이렇게 또 보낸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고 무슨 일이 하고 싶은지 너무나 뚜렷해서 누가 뭐래도 흔들리지 않을 줄 알았는데, 거리두기와 함께 엄혹한 이 계절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는 사실이 아직 공부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간의 삶 중 가장 높은 급은 자아실현과 그를 통해 세상에 어떤 변화를 야기하는 거라고 하는데, 세상이 자신의 쓸모를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마주하고 그것을 또 혼자만의 힘으로 넘어서는 데에는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할까.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 나는 나의 부모님 없이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을 내 친구 A는 혼자 힘으로 한다는 것. 어차피 연락도 안 하고 만나지도 않겠지만 자기 일상과 가족 친구를 모두 버리고 자신의 두 발로 길을 나서는 내 친구의 삶을 나는 언제나 응원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내 친구와, 내가 자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존재 가치에 대해 증명하기를 원할 때, 나는 그들을 대신해 지금까지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하루하루 버텨내 왔는지 증언해줄 테다. 비록 그것이 가장 검고 깊은 바닥에 있더라도. 까치발을 들고 내 두 팔을 벌려 목소리를 크게 내면서 말이다.
작년이 올 해가 아니듯, 이번 가을의 낙엽들은 자신의 쓰임을 온전히 다 해내고 떨어졌는지 그런 생각을 해보았다.
지난가을 SNS에 써 두었던 글을 브런치에 발행해 봅니다. 글에 등장하는 제 친구는 코로나로 인해 울진에 있는 항공 학교가 위기에 처하자, 이번엔 캐나다의 항공 학교로 가겠다며 다시 쿠팡맨이 되었습니다. 저 역시, 남성복 디자이너의 꿈을 무기처럼 손에 쥐고, 벌어먹고 사람 구실 좀 하려고 부동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일의 특성상 과정이 길고 성과가 늦어져 힘에 부치기도 합니다. 세상은, 가혹할 땐 어쩌면 이렇게나 가혹할까요.
겨울이 가고, 꽃이 피는 이 계절에 우리는 또 무엇을 피우고 있을까요. 올해 저는 어떤 꽃을 피울 수 있을까요.
기왕이면, 올해에는 겹꽃을 피우고 싶습니다. 지난 몇 년간 피우지 못한 꿈들을 한 번에 이루게 된다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