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츠제럴드(F. Scott Fitzgerald)의 작품인 「The Great Gatsby_위대한 개츠비」는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이어진 경제 성장으로 물질적 풍요가 넘치고 활기와 자신감이 충만했던 1920년대 미국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재즈와 찰스턴 춤을 즐기고 자동차로 재력을 과시하며 흥청거리던 이 시기는 ‘roaring twenties - 광란의 20년대’라 불렸다. 작품은 그 당시를 살아가던 사람들의 모습을 닉 캐러웨이(Nick Carraway)라는 화자의 글을 빌려 소개하고 있다. 작품의 제목이자 주요 관찰 대상인 개츠비(Gatsby)라는 인물은 단편적으로 보면 불법으로 돈을 벌고, 거짓으로 자신을 소개하며, 유부녀를 사랑하는 인물이다.
소설을 처음 다 읽고 나서 왜 이 인물에게 ‘The Great’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했는지에 대해 명확히 이해할 수 없었다. 번역본에 쓰인 ‘위대한’이라는 단어는 의문을 더욱 증폭시킬 뿐이었다. 그런 와중에 이 작품을 영화화한 바즈 루어만(Baz Luhrmann) 감독의 2013년 작 「The Great Gatsby」를 접하게 되었고, 그 속에서 ‘The Great’이라는 수식어를 조금 이해할 수 있는 단서를 찾게 되었다. 소설과 영화 속 전개의 어떤 차이가 제목에 대한 독자와 관객의 이해도를 다르게 만들었는지 비교해 보자.
Tobey Maguire as Nick Carraway in The Great Gatsby.
영화와 소설 속 화자 닉(Nick)의 언행 비교
작품 초반에 사용된 표현은 화자의 성향과 이야기의 흐름을 이해하는 방향키 역할을 한다.
소설과 영화 모두 화자인 Nick이 아버지의 충고를 통해 사람들을 어떻게 대해왔는지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그 강조점은 극명하게 달랐다.
소설
“Whenever you feel like criticizing any one, just remember that all the people in this world haven’t had the advantages that you’ve had.”
"누군가를 비판하게 될 것 같을 때 이것만 기억해라.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네가 소유한 특혜/이점을 갖지 못했다는 것을"
영화
“Always try to see the best in people”
"항상 사람들의 좋은 면을 보려고 노력해라"
소설은 Nick이 누군가를 비판하게 될 것을 먼저 제시한 후 ‘scorn(경멸, 깔봄)’, ‘foul dust(역겨운 먼지)’와 같은 부정적 표현을 나열한다. 아울러 Nick의 글에 설득력을 더하기 위해 그의 사회적 관계 지위를 높이는 작업도 이어졌다. ‘태생부터 다른 근본적 품위를 신사인체하며 되뇌고’, 자신은 ‘유명한 집안의 출신’이며 명문대를 나왔다는 점 등등 아버지가 얘기하던 남들은 누리지 못한 자신의 이점을 열거하며, 자신은 남들을 비판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점을 독자들에게 이해시켰다. Tom을 묘사할 때는 ‘거만한 행태’, ‘도도한 두 눈’이라는 부정적 표현을 썼고, Gatsby의 첫 모습을 ‘자신의 몫을 셈하기 위해 하늘을 보고 있다’고 냉소적으로 해석한다. 이러한 Nick의 비판적 표현은 독자들에게 다른 등장인물들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미리 각인하는 역할을 한다. 미리 설정된 악인에 대한 독자들의 기대치는 자연히 낮아질 수밖에 없음으로, 앞으로 이들이 벌일 행위와 사건에 대해 덜 민감하게 반응하게 된다.
반면 영화는 타인의 좋은 점을 보도록 노력하라는 아버지의 조언과 함께 새로 등장하는 인물들에게 밝은 표정을 짓는 Nick의 모습을 보여준다. 관객들은 멋진 저택에 좋은 옷을 입고 등장하는 깔끔한 용모의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이미지를 우선 받게 되는데, 이는 Nick의 첫 등장 모습인 요양원 상담 장면과 대비되면서 더 크게 두드러진다. 요양원 간판과 진단명이 나열된 정신과 상담 기록철이 나오는 음울한 장면은 Nick이라는 인물의 목소리가 지닌 힘을 빼놓았다. 당시 사람들은 술을 많이 마시고 사회에 이바지하는 점 없이 살았는데, Nick 또한 그들 중의 한 사람이었고, 현재는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기에 그의 말에 대한 권위와 진정성은 점차 낮아진다.
이렇듯 소설과 영화는 작품 초반에 화자의 기본 위치를 서로 다르게 설정하여 독자와 관객이 이야기를 받아들이는 과정에 차이를 일으켰다. 화자가 높은 위치에서 비판적으로 얘기하는 소설은 독자들에게 부도덕함을 경멸하는 타당성을 설득시키는 반면, 화자가 낮은 위치에서 타인의 좋은 점을 보려 하는 영화는 관객이 화자의 말의 무게를 가볍게 느끼며 영상에 관한 판단을 관객 스스로 하게 했다.
이미 악인임을 상정하고 진행되는 소설에서는 앞으로 전개될 그들의 부도덕한 행위가 독자에게 당연한 내용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지만,
영화 속에서 좋은 면만 보이던 사람이 저지르는 부도덕한 행위는 관객들이 비판하고 평가하게 되는 것이다.
화자의 사생활 개입 여부
작품은 사랑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는 Gatsby와 불륜을 저지르는 Tom과 Daisy, 이 세 사람의 관계와 이에 얽힌 사건들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남녀문제를 얘기하는 곳에서 이를 평가하는 사람의 연애사가 개입되면 평가에 대한 중립성을 잃게 되고 평가의 강도도 흐려진다.
소설에서는 Nick의 연애 문제가 함께 그려진다. 약혼 관련 소문이 동부로 온 이유 중 하나이고 본인은 정직한 연애를 하는 드문 사람 중에 하나라며 타인의 불륜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암시하기도 한다. 이러한 Nick의 연애 내용은 Gatsby의 Daisy에 대한 사랑이 왜 특별한지에 대한 강조점을 흔들리게 한다. Nick 본인도 바람피우지 않고 연애하는 정직한 소수에 속하며, 소문에 휩쓸려 결혼하지 않을 만큼 소신이 있는 사람이라고 얘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독자들은 Gatsby의 Daisy에 대한 일편단심, 지고지순한 사랑과 노력을 특별하거나 대단한 것으로 보기 어려워진다. 또한, Nick은 자신의 연애 문제로 Gatsby와 Daisy의 일을 잊기도 하는데, 이렇게 본능에 이끌려 행동하게 되는 부분은 화자 역시 감정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는 인상을 주어 Nick의 타인에 대한 평가 글의 힘과 권위를 점점 낮춰가게 된다.
이와 달리 영화에서는 Nick의 연애 문제는 전혀 다뤄지지 않고 있다. 부도덕한 불륜관계의 현장에는 있지만 한 발자국 떨어져 관찰자로서 나열하고 있을 뿐이다. 초점을 흐리게 하는 곁가지가 없음으로 관객은 Gatsby, Tom, Daisy 이 세 사람의 관계에 오롯이 집중할 수 있게 된다. Gatsby의 Daisy 한 사람을 향한 어리석을 만큼 강한 집착과 사랑과 헌신은 Tom의 불륜과의 비교되며 더욱 도드라진다. 단순한 이야기 흐름은 관객이 무엇을 평가해야 하는지를 명쾌하게 보여주며 선과 악의 판단을 명확하고 쉽게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시각적 효과의 의미 전달
영화는 타자 치기를 끝낸 원고의 제목인 Gatsby 이름 앞에 ‘THE GREAT’을 뒤늦게 손으로 적어 넣는 것(02:09:04)으로 마무리된다.
소설에 없는, 영화에서만 묘사된 이 장면은 ‘THE GREAT’에 대한 독자와 관객의 이해 차이를 만들어냈다.
영화 역시 소설과 마찬가지로 제목을 먼저 접하고 이야기를 따라가지만, 영화는 마지막에 ‘THE GREAT’이라는 수식어를 제목에 추가함으로써, ‘뒤늦은 깨달음’이라는 의미를 부여한다. Nick이 원래 알고 지냈던 Tom과 Daisy가 얼마나 경솔하고 부도덕한 사람들이었는지 알게 된 후, Daisy만을 위해 노력하고 희생한 Gatsby에게 마지막으로 위로 혹은 경의를 표하는 뜻으로 ’THE GREAT’이라는 수식어를 더하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의 노력과 사랑은 대단했었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소설은 다 읽은 뒤에 소설 속 어딘가에서 ‘The Great’을 뒷받침할 수 있는 부분을 찾아야 하는 숙제를 독자에게 남긴다. 소설에서는 Nick의 Gatsby에 대한 부정적 평가가 곳곳에 남아있는데 부정적으로 대하던 사람에게 ‘great’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게 되는 것은, 긍정적으로 바라보던 사람에게 ‘great’이라는 수식어를 쓰는 것에 비해 더 많은 증거와 설명이 필요하다. 비판하던 사람의 태도를 바꿔 놓을 만큼 더 대단하고 위대한 무언가를 찾아야만 ‘great’에 대한 설득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숨겨진 의도를 독자들이 단번에 찾기에는 소설의 내용은 길고 복잡하지만, 상대적으로 영화는 단편적 부분만을 친절하고 상세하게 보여주었다.
책 vs. 영화
영화는 소설보다 시간과 공간적 제약이 큰 예술 매체이다. 주어진 시간 내에 이야기를 전개하고 관객의 공감과 이해를 구하려면 내용을 되도록 단순하고 명확하게 설정해 나가야 한다. 영화는 소설 속에서 불필요하다 판단되는 Nick의 개인적 연애 내용은 과감히 제거하여 관객들이 Gatsby, Daisy, Tom 이 세 사람의 관계에 집중할 수 있게 하였다. 또한 화자의 개입을 최소화하기 위해 인물들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던 흐름을 긍정적 분위기로 바꿔 놓아 인물에 대한 평가를 관객의 몫으로 넘겼다. 마지막으로 시각 이미지의 힘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완성된 타자 원고 위에 펜글씨로 ‘The Great’을 넣음으로써, 뒤늦은 깨달음 뒤에 부여된 수식어라는 의미를 추가하여 관객들에게 제목을 이해할 수 있는 힌트를 제공하였다. 책과 소설 모두 ‘great’이라는 수식어를 ‘위대한’으로 이해하기에는 여전히 많은 의문이 들지만, 적어도 영화를 통해서는 Gatsby가 사랑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고 희생한 점은 ‘대단한’ 것이라고 Nick은 믿고 있다는 확신을 관객은 엿볼 수 있었다.
참고자료.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신현욱 주해, 에피스테메,「위대한 개츠비」
바즈 루어만 감독, 위대한 개츠비 The Great Gatsby, 2013
Pics. Courtesy of Warner Bros. Pictur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