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옛날엔 도대체 왜 그랬을까,

딸 6명이 얼마나 귀하고 행복한 일인데.

by At


나는 이모가 다섯이다.

나는 외삼촌이 없다.


고로, 우리 외갓집은 딸만 여섯명이다.

우리 외할머니는 "아들" 에 한이 맺히셨다.


그때 그 시절의 환경과 풍습을 생각하면 할머니가 한맺힌게

너무나 이해가 된다.


아들을 낳기위해 한명더 한명더 했던 것이

6이 되었고, 결국 할머니는 끝내 아들을 낳지 못한 채

딸 6으로 마무리 지으셨다.


그래서 인지 유독 아들 손자들에게 각별 하셨다.

그리고 그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우리 외갓집은 총 11명의 손주들 가운데 9명이 아들이다.


손주들 줄줄이 아들이 태어났고, 반대로 딸이 귀한 집이 되었다.

내가 딸이고, 내 밑으로 딸 동생이 있는데,

나와 15살 정도 차이가 난다.

고로, 15년 정도를 유일한 딸 손주로

할머니가 아닌 ! 이모와 이모부들에게 온갖 예쁨을 독차지 했다.

사실 15년도 아니다. 그 15년의 애정이 쌓여 지금까지도

예쁨 받는다.

특히 딸이 없는 이모 이모부들에게 더욱.

더 살갑지 못해서 죄송할 따름이다.



외할머니가 나를 안 예뻐 하신 것은 아니었지만,

아들에 워낙 한이 맺히셨던 분이라,

아들손주들에게 상대적으로 더욱 애정이 깊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내가 서운할 법도 했지만,

다섯명의 이모 이모부의 애정은 그 이상이었기에 나는 외갓집이 좋았다.



몇년 전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아마, 90정도 되셨던 것 같다.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우리엄마가 외할머니의

모든 케어를 도맡아 했다.

물론, 둘째인 우리엄마를 도와 많은 이모들도 함께 했지만

외할머니의 마지막까지 손발이 되어 곁에 있던건 우리엄마였다.

그래서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이모들이 엄마의 마음과 건강을 걱정했고,

엄마또한 많이 힘들어 했다.



손주들 몇이 외국에 있었음에도 할머니 부고를 듣자마자

모두 모였다.


그래서 단 한명도 빼놓지 않고, 외갓집 직계 가족들은

전부 모였다.


특히, 외할머니가 그토록 애닳아했던 아들 손주들은

모두 장성하여 막내가 20살이 넘었으니

이미 아기아빠가 된 아이들도 있었다.


"직계 가족들" 로만 우리집 포함, 이모 이모부 12명에

손주들 11명에 배우자 4명 / 손주들의 아이들 6명 /

총, 33명 이었다. 적지 않은 숫자였다.


다 모아놓고 보니 북적 거렸다.

특히, 손자 9명이 키가 다 컸다. 제일 작은 녀석이 177..

제일 큰 녀석이 184.. 다 그 사이였다.


물론 키가 대수는 아니지만, 다들 자기 역할 잘 하며,

멋지게 잘 큰걸 보니,

손녀인 내가봐도 다들 듬직한데, 외할머니 보시기엔 얼마나 듬직할까 싶었다.


할머니의 영정사진은 할머니가 몇 년 끼고 키웠던,

그래서 가장 예뻐했던 그리고 손주들 중 가장 애교가 많았던

5번째 손주가 들었다.


그 옛날, 젊어서는 딸만 6낳은 서러움..

그리고, 외할아버지가 일찍이 돌아가시고 홀로 딸을 6키운 서러움.


외할머니의 한평생은 서러움이었겠지만,

그래도 돌아가시는 그 순간 보니 우리 할머니,

어떤 한편으로는 힘드셨겠지만,

어떤 한편으로는 참 다복한 인생이셨겠구나 싶었다.


생각해 보면 살면서 6딸들이 제각각 많은 역할을 도맡아

아들이 있는 그 이상으로 누리며 사셨는데,

아들이 없어서 누리지 못한건 하나도 없었던 것 같은데,

그 옛날 아들을 못 낳았다는 구박이 한평생 한이 맺히셨나 보다.

물론, 내가 할머니의 평생의 그 마음을 다 헤아릴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한가지 분명한건

마지막 길은 너무 환하게 웃으며 가셨을 것 같다.


외할머니가 부디 하늘에서는 평안하시길 바란다.


할머니 지금 생각해보면 딸 6이라 너무 행복하셨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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