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너 50년 뒤에 죽어."
인간은 죽는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모든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는 진리란 바로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이다. 친구와 나는 서른이 넘은 이 시점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나이가 하나 둘 먹어갈 때마다 함께 즐거웠던 친구들은 하나 둘 멀어져 가고 그 자리는 냉혹한 돈이 차지했다.
더 좋은 집, 더 좋은 차, 더 좋은 직장을 찾아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 힘껏 손을 뻗는다. 마치 밤하늘의 별을 따 보겠다는 듯이. 그 틈바구니에서 숨 쉬고 있노라면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남들에게 뒤쳐질까 두려워 슬며시 주머니에 넣고 있던 손을 소심하게 뻗어보는 것이다.
요즘 들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에 대한 화두가 끊이질 않고 머릿속을 맴돈다. 내가 원하고 바라는 것들을 하기에는 '돈'이라는 문제가 항상 곁가지처럼 끼어 있었기 때문에 나 역시 내가 환멸 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사실은 속물이 아닐까 하는 자괴감에 시달리고 마는 것이다. 이런 내 고민에 친구는 '어차피 너 50년 뒤에 죽어'라고 말했다. 그러니 잡생각 하지 말고 돈이나 벌라고 덧붙였다.
과연 친구의 말대로 어차피 죽을 인생 돈이나 벌고 때에 따라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살아가는 것만이 답일까?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Luke: 16~20
성경에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었다. 물론 성경에 등장하는 사람은 나와 다르게 경제적으로 부유한 사람이었다. 이 사람은 부자임에도 불구하고 재물을 쌓아둘 창고가 좁은 것을 고민했다. 고민 끝에 그는 창고를 헐고 더 크게 지어 일평생을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할 인생 계획을 세웠다. 그러자 하나님은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면 네가 준비한 것이 누구 것이 되겠느냐고 물으셨다.
내가 평생을 일해서 돈을 벌어 즐기며 살겠다고 다짐한다 해도 당장 내일 내가 죽는다면 그 삶이 의미가 있는 것일까? 성경에 나온 대로 만약 그 부자가 창고를 가득히 채워놓은 뒤 '내일부터 평안히 살자'라고 다짐한 다음날 죽음을 맞이한다면 그 부자는 자신의 삶에 만족할까? '아 그래도 사는 동안에 이만큼 재물을 모았으니 좋은 인생이었다'라고 생각할까?
'죽음'을 당연하게 여기면서도 사람들이 그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터부시 하는 것은 죽음 이후에 일어나는 일에 대해 산 사람은 절대로 알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살아 있는 영혼을 가지고 있는 한 죽음 이후에 대해서는 절대로 알 수가 없다. 신체가 '죽음'에 이르렀을 때 인간의 신체는 유기물로 분해되어 자연 속으로 흡수되고 끝을 맞게 되는 것인지, 사후세계로 들어가 심판을 받게 되는지 아니면 옆 집 강아지의 뱃속으로 들어가 새끼로 다시 태어나는지 그 어느 것도 확언할 수 없기에 우리는 죽음을 생각하면 불안해하고 두려워한다.
한편으로는 죽음이 있기에 인간이라는 생물이 짧은 역사 동안 많은 것을 이뤄내지 않았나 싶다. '어차피 죽을 인생 대충 살다가 죽자'는 사람보다 '한 번 사는 인생 역사에 남을 무엇인가를 남기겠다'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결과적으로 그들이 남긴 자산 그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을 독려하고 인류를 발전시켜왔다.
그렇다면 그들이 남긴 것은 무엇일까?
저마다 의견이 다르겠지만 노벨상의 권위를 빌려 생각해보면 각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업적이 그것이 아닐까 싶다. 노벨상은 생리학/의학/물리학/화학/문학/평화/경제학에서 가장 중요한 발명이나 발견을 한 사람 혹은 뛰어난 작품을 쓰거나 헌신한 사람에게 주는 상이다. 노벨상이 평가하는 기준에는 '수상자의 업적이 돈으로 치환해서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느냐'는 들어있지 않다.
어쩌면 이것이 사람들의 마음 한 구석에는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작은 마음이 살아있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다. 다만 그 마음은 너무도 작고 약해서 당장 눈앞에 보이는 물질적인 것을 당장에 이기지 못할 뿐이 아닐까.
한창 초등학교 아이들의 장래희망에 '유튜버'가 높은 순위를 차지하는 것을 언론에서 크게 다룬 적이 있다. 1세대 유튜버들의 수익이 공개될 때 즈음인 것으로 기억하는데, 내 주변 사람들은 '어린애들이 벌써부터 돈 이야기를 한다'며 손가락질하곤 했다.
그러나 어른은 아이들의 거울 아닌가.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 중 잘못된 행동에 대해 지적하면 십중팔구는 '저희 집에서는 이래요'라고 대답한다. 어려서부터 부모들의 입에서 '돈'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고 들은 아이들이 어른이 되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왜 부모들은 우리 집 아파트와 남의 집 아파트의 집 값과 거기 사는 사람들의 연봉은 말하면서도 주윤발과 같은 사람들이 8100억을 기부한 것에 대해서는 함구하는 것일까.
내가 만약 성경에 나온 부자이고 평생 먹고 놀 재물을 쌓아 놓은 채 바로 다음 날 죽는다면, 나는 한탄할 것이다. '아, 좀 쓰고 죽을걸. 누구 좀 도와줄걸.'
어찌 됐든 간에 여전히 돈은 내 삶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 중 하나이고, 그것이 내 인생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크게 변할 일이 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나의 마음 한 구석에 있는 '작은 마음'이 힘겹지만 덩치 큰 마음을 물리치길 조용히 응원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