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나는 한 경제 신문사에서 일했다. 선배들과 팀원들은 정말 좋았다. 지금도 가끔 함께 일한 시간들을 곱씹곤 한다. 대부분의 직장 동료들이 그렇듯 내가 회사를 나오면서 연락음 점차 뜸해졌고 지금은 잘 지내기를 마음속으로만 바랄 뿐이다. 이 자리를 빌려 바쁘단 핑계로 먼저 연락하지 못한 못난 후배를 용서해주시기를!
동료들이 좋은 것과는 별개로 일은 썩 만족스럽지 않았다. 꾸역꾸역 버티다 마침내 퇴사를 결정하고 출근날 짜가 10일이 채 남지 않았을 때는 일을 하기 싫은 것이 절정에 달했다. 매일 같이 가기 싫은 출근길을 지나 회사에서 인터넷 서핑만 하다 오기 일쑤였다. 그런데 종국에는 그마저도 시간이 가지 않았다.
그때 마침 나는 우연히 인터넷에서 본 무서운 이야기에 빠졌다. 인터넷 커뮤니티에 올라온 공포 일화 게시물이었는데, 스크롤을 다 내리고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 되어있었다. 나는 '이거다!'라고 생각했다. 아르키메데스가 욕조에서 유레카를 외칠 때의 기분이 이러했을까. 나는 비로소 회사에서의 죽은 시간들을 쉬이 천도할 수 있는 길을 찾아내고야 만 것이다.
나는 본래 무서운 영화나 글들을 잘 읽지 못하는 편이다. 왜 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그런 콘텐츠를 접할 때면 엄청나게 이입이 되었다. 비단 공포영화뿐만 아니라 멜로나 드라마 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또 사람이 위험하고 피해야만 하는 일임에도 괜히 한 번쯤 들춰보고 싶은 심리가 있지 않은가? 나에게도 판도라의 피가 흐르니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한 번 무서운 이야기에 빠져들자 나는 회사에 있는 동안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무서운 이야기를 찾고 읽는 데에 할애했다. 태업에 가까운 행동이었지만 선배들도 이제 곧 퇴사할 내 입장을 이해했는지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문제는 다른 곳에서 생겼다. 며칠을 내리 무서운 이야기만 보다 보니 밤에 잠을 자기가 힘든 것이었다. 애초에 무서운 것에 극히 예민한 나로서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피곤해서 자려고 불을 끄기만 하면 낮 동안 회사에서 봤던 무서운 이야기들이 스멀스멀 발끝에서부터 나를 휘감듯이 집어삼키는 것이었다. 그 때문에 불을 껐다 켰다를 수없이 반복하다가 지쳐 잠이 들곤 했다.
그렇지만 무서운 이야기가 주는 쾌감은 쉬이 끊을 수 없는 것이었다. 정신을 극한까지 몰아붙이는 공포감이 주는 그 아찔한 쾌감이란, 게다가 회사에서의 시간까지 순식간에 '타임 워프'하듯이 없애주니 밤에 잠을 못 자는 것은 생각도 않은 채 더욱 자극적이고 무서운 이야기들을 찾는 것이었다.
그러자 '무서운 이야기 부작용'은 더욱 심해졌다. 밤에 잠을 잘 못 자는 것은 기본이고, 낮에 생활하면서도 이따금씩 등줄기가 오싹오싹하며 식은땀이 나는 것이었다. 무엇인가가 나를 계속해서 쫓고 있는 기분이었다. 그 미지의 공포감이 나의 낮과 밤을 잠식해가고 있을 때쯤, 친구를 만났다.
오래간만에 친구를 만나서 근황을 이야기할 때도 나는 내 등에 올라타 있는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나는 마치 잘 숙련된 배우가 연기하는 것처럼 겉으로는 친구의 이야기에 맞장구치면서도 속으로는 끝없이 밀려오는 무서운 생각이 나를 잠식하지 못하도록 싸워야 했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싸움은 친구가 집까지 나를 바래다주고 나서야 끝이 났다.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고 돌아다녀서인지 기분 좋은 피로감이 몰려왔다. 그날은 왠지 불을 꺼도 무서운 생각이 들지 않고 잘 잘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행히 예감이 맞아떨어져서 오래간만에 꿈도 꾸지 않고 긴 수면을 취했다.
간밤에 나타나지 않던 공포는 다음 날 오후 뜻밖의 모습으로 나를 찾아왔다. 어제 만난 친구가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너를 내려다 주고 오는 길에 이상하게 소름이 끼치고 등이 오싹오싹한 거야."
친구의 말인즉슨 나를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알 수 없는 공포가 차를 가득 메우고 있는 기분이었다고 한다. 마치 뒷자리에 누군가 타고 있을 것만 같은, 혹은 미지의 존재가 자신을 따라오는 것만 같은 그런 기분이 집으로 가는 내내 들어서 창문을 다 열고 일부러 신나는 음악을 크게 틀고 갔다고 한다.
친구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나는 팔에서 계속해서 돋아나는 소름을 털어내야 했다. 그날 친구가 느꼈던 공포의 정체는 무엇일까? 그리고 나를 밤낮으로 따라다닌 그 공포는 또 무엇이었을까?
그날 이후 나는 무서운 이야기를 찾아보지 않았다. 점차 마음은 안정되고 나를 괴롭히던 무서운 생각도 서서히 들지 않게 될 무렵 나는 마침내 동료들의 환대를 받으며 무사히 회사를 나올 수 있었다.
얼마 전 유튜브가 골라 준 영상을 보는데 6년 전 일이 문득 생각이 났다. 영상에서 설명하기를, '사람이 느끼는 기분과 감정이 분자의 형태로 퍼져나가 주위의 사람들도 그 영향을 받는다'는 내용이었다. 영상에서 설명하기를 과학적으로 연구가 된 부분이라는데, 그쪽은 내가 젬병이기도 하고 유튜브에 워낙 출처가 불분명한 내용들이 많아 정말로 맞는 말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6년 전 겪은 일을 떠올려보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며칠 동안 내가 몰입해서 읽었던 무서운 이야기들이 내 안에서 실체화되면서 실재하는 공포로 자라났고 그 공포가 분자의 형태든 뭐든 간에 친구에게 전염된 것이라면, 그때 친구가 나를 데려다주고 가면서 느낀 공포가 설명이 되지 않을까?
만약 그런 것이 과학적으로 설명이 된다면 그것은 또 다른 공포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가는지에 따라 주변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말이다. 나의 분노, 슬픔, 미움, 질투 같은 못난 감정들이 혹여나 지금까지 나를 마주쳤던 사람들에게 안 좋은 영향이라도 미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내 과거를 뒤돌아 본다.
몇 달 전 SBS '세상에 이런 일이'에 나온 박대신 할아버지가 하신 말씀이 있다. 치매 걸린 아내를 10년 동안 돌보고 계시는 박대신 할아버지는
"좋게 행동하고 나는 또 나대로 좋게 생각하고 그러면 그게 행복이죠. 똑같은 입장인데도 불행하게 느끼면 불행한 거고 행복하게 느끼면 행복한 거예요."
나의 마음이 타인에게 전해진다면, 나도 박대신 할아버지를 본받아 살아가야겠다. 어떤 상황이든 행복하게 느끼기. 그로 인해 타인이 나에게서 에너지를 받을 수 있게끔 마음먹기.
무서운 이야기는 이제 다시는 보지 않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