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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ka Oct 30. 2022

에필로그

“요즘 컨디션은 어떻니?”


“좋아요.”


“머리가 아프거나 토할 것 같다거나 하는 증상은 없고?”


“네.”


“다행이다. 별 다른 이상은 없는 것 같은데, 그래도 항상 컨디션 체크를 예민하게 해야해. 조금 이상하다 싶으면 바로 병원에 오고. 알았지?”


“네.”


“약은 잘 챙겨먹고 있지?”


“네. 잘 먹고 있어요.”


“그래. 다음 진료때 보자.”


병원 문을 나서면서 나는 주머니 속에 뒹굴고 있는 약봉지를 만지작거렸다. 나는 버스정류장으로 걸음을 옮기다 근처에 있는 흡연구역 쓰레기통에 약봉지를 휙 던져버리고 다시 정류장으로 향했다.


버스를 기다리며 나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정리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생각했다. 벌써 의식을 차린 지 3개월이 지났다. 내가 깨어난 사실에 기뻐하던 부모님에게는 이제는 다른 고민거리가 생겼다. 바로 내 눈 앞에 보이는 이것들 때문이다. 버스 안, 몇몇의 사람들 머리위로 그림자들이 어른거린다. 어떤 것은 사람의 형상으로, 어떤 것은 동물의 형상으로, 또 어떤 것은 기괴한 도형의 모습으로 그들 머리위에 떠있다. 처음 내가 이것들을 보게 되었을 때, 나는 곧바로 기절해버렸다. 내가 깨어나자마자 나를 진료하러 달려 온 의사의 머리 위에 달린 거대한 송충이를 보았더라면 누구든 같은 반응이었을 것이다. 내가 다시 정신을 차린 후에도 의사의 머리에 붙은 송충이는 여전히 존재했다. 내가 자신의 머리를 보며 이상한 반응을 보이자 의사는 지레짐작으로 ‘혹시 헛것이 보이거나 하니?’라고 물었다. 내가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이자 의사는 부모님만 따로 호출해서 자신의 진료실로 들어갔다. 의사의 진료실에 다녀온 부모님의 얼굴은 수심이 가득했다. 내가 살아돌아오기만 하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기도는 이제 내가 ‘정상’이 될 수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다는 기도로 바뀌었다. 하지만 부모님이 아무리 간절히 바래도 2주에 한 번씩 보는 의사의 머리에는 여전히 거대하고 징그러운 송충이가 기어다니고 있었다. 다행스러운 것은 송충이가 내가 자신을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는 점이었다.


처음 몇주 동안은 혼란스러움이 점점 더 가중되었다. 사람들의 곁에는 다양한 것들이 붙어있었다. 흔히 아는 귀신의 형태로, 기괴한 문양의 형태로, 짐승 혹은 움직이는 어떤 물체의 모습으로 그것들은 사람들 곁에 있었다. 사람 모양의 것들은 나를 의식하는 듯 했지만 내가 아는 체를 하지 않으니 나에게 별다른 해코지를 하는 것은 없었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들이 보인다는 사실을 숨겼다. 왠지 그래야할 것 같았고, 그것이 마법사가 말한 ‘선’을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문제는 깨어있을때보다 밤이었다. 수면 상태에서는 내 의지대로 컨트롤 할 수 있는 것이 현저히 제한되었다. 그 일이 있은 후로 나는 매일 거르지 않고 꿈을 꾸었는데, 그때마다 내 정신은 육체를 떠나 머나먼 여행을 떠났다. 그것은 내 의지대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어느 순간 잠에 들었다 눈을 뜨면 나는 정신만 남은 채 생경한 풍경을 맞이해야했다. 언제는 달과 지구 사이에서 눈을 뜨는 바람에 산소가 없다는 생각이 물밀듯이 몰려들어와 정신채로 질식사할 뻔 한 적도 있었다. 또 한번은 사막 한 가운데에서 눈을 떠 잠이 깨기까지 한참을 모래밭을 걸은 적도 있었다. 처음에는 잠들기가 두려웠다. 그렇지만 잠을 이길 수 없는 인간은 없었다. 나도 모르게 깜빡 잠들때면 어김없이 낯선 장소에서 눈을 뜨는 생황을 몇 주 동안 보내다보니 나는 강제로 육체로 돌아가는 법을 터득했다. 정신의 세계에서 했던 것처럼 ‘흐퓨’를 사용하면 곧바로 육체로 정신이 돌아와 방 안에서 눈을 떴다. 나중이 되자 마치 가위에 눌리는 것처럼 육체에서의 이탈은 나에게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시도한 방법이 자기 전에 정신을 집중해 ‘흐퓨’를 발현하는 것이었다. 온전한 정신의 세계가 아니라 능력이 발현할까 걱정했지만 그것은 기우에 불과했다. 마법사의 말대로 정신과 육체의 유격이 있는 나는 정신의 세계에서만큼은 아니지만 미약하게나마 능력을 사용할 수 있었고, 그 날 이후로 한 번도 깨지 않은 채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다만 낮에는 능력을 사용하는 것을 스스로 금기시 했다. 내가 능력을 사용하면 사람들 곁에 붙어있는 것들이 일제히 나를 향해 달려들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어찌됐든 내 나름의 생존 방식을 하나씩 익혀가는 중이었다.




버스를 타고 가며 나는 지나온 일들을 복기해보았다. 쭉 기억을 더듬은 결과 남는 것은 그래도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이었다. 남들과 조금 다르고, 조금 신경쓸 점이 많지만 생존해 있다는 것, 그 사실이 유난히 내게 위안이 되는 하루였다. 마음이 평안해지고 긴장이 풀리자 스르르 잠이 오는 것을 느꼈다. 나는 고개를 버스 좌석에 기대고 걱정없이 눈을 감았다. 모든 것이 잘 될거야, 스스로 다독이면서.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공항에 있었다. 막 착륙한 듯 눈 앞에 거대한 A380 비행기는 거대한 몸뚱아리를 힘겹게 돌려 브릿지에 갖다대는 중이었다. 나는 브릿지 위에 앉아 승무원이 문을 열때까지 가만히 있다가 정신이 들었다. 흐퓨를 사용하는 것을 깜빡했네, 라고 생각한 나는 그동안 낮잠을 거의 자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낮에는 사람들 곁에 있는 것들에게 신경쓰느라 도저히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다. 한가하게 낮잠이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살아있다는 생각하나만으로 이렇게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에 나는 새삼 감사하며 능력을 사용해 그만 버스에서 자고 있는 내 육체로 돌아가려고 하던 차였다. 승무원의 미소 띈 인사를 받으며 내리는 한 여자가 눈에 들어왔다. 주변까지 화사하게 만들 정도로 밝은 빨강의 머리를 한 여자였다. 타이트한 청바지에 무릎까지 올라오는 부츠를 신은 여자는 한 손에 캐리어를 끌고 한 손을 들어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벗는 참이었다. 나는 선글라스가 가리고 있던 여자의 얼굴을 확인하자 놀란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소리쳤다.

그녀가 분명했다. 파비앙이 마지막까지 사랑한, 마지막까지 존재했던 이유, 영원에 가까운 시간동안 정신을 잃지 않고 인간으로서 남을 수 있게 해주었던 구원, 줄리앙이 선글라스를 벗어 자켓 주머니에 넣은 채 브릿지를 건너 뚜벅뚜벅 걸어가고 있었다. 나는 강렬한 그녀의 인상에 취해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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