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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ka Dec 08. 2022

절전모드가 필요해!

 며칠 전부터 소화가 잘되지 않았다. 시도 때도 없이 트림이 나오고, 속이 답답해서 합곡혈을 눌러보면 불쾌한 통증이 체했음을 알려주었다. 그때마다 소화제로 버텼다. 하루는 오랜만에 사촌누나를 만났는데 또 속이 이상한 조짐을 보였다. 일본식 고구마 소주를 한 잔 들이켰는데 목으로 알콜을 넘기자마자 왼쪽 가슴아래가 싸한 느낌이 들면서 속이 쓰린 것이다. 이상한 느낌에 두 잔 세 잔을 더 마셨다. 의심은 확신이 되어 '술을 마시니 왼쪽 가슴 아래가 쓰라리다'는 결과를 얻었다.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술 마시는 것을 중단하는 것이었다. 술집이니 안주도 기름 진 것이어서 속에 좋지 않을 것이 뻔했다. 결국 나는 거의 1년 만에 보는 사촌누나 앞에서 젓가락만 깨작대다 돌아오는 수 밖에 없었다.


늦은 밤 택시를 타고 귀가하면서도 마음은 편치 않았다.


-혹시 큰 병에 걸린 것은 아닌가?


-내일 더 아프면 어떡하지?


-이러다 당장 죽는 것 아니야?


난생 처음 느껴보는 생소한 통증은 나로 하여금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걱정을 무수히 많은 물음표와 함게 만들어냈다. 그렇게 쌓인 걱정들로 인해 그날 밤 나는 잠을 이루지 못하고 한참을 뒤척이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다음날 9시가 되기도 전에 나는 병원 앞에서 대기표를 뽑고 기다렸다. 데스크 업무를 보는 간호사는 나의 불안을 아는지 모르는지 건조한 목소리로 '잠시만 기다리세요'라고 말했다. 잠시  벽에 걸린 TV  이름이 나타났다.  이름 앞에는 4명이 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번째 순서가 되었다. 나는 초조한 마음으로  역시 빠른 진료가 가능한 가벼운 질병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곧이어 만난 의사는 밝은 미소로 내게 몇가지 질문을 했다.


-어디가 아프세요?


=왼쪽 가슴 밑이 쓰라려요. 소화도 잘 안되는 것 같고… 어제 술을 마셨는데 술이 넘어가자마자 왼쪽 가슴 여기가 쓰라리더라고요.


-네. 열은 안나구요?


의사는 내 말을 들으며 열심히 타이핑을 했다. 열도 나지 않고 다른 곳은 괜찮다고 말하자 의사는 웃으며 말했다.


-술 드시지마세요.


의사는 내가 고개를 숙여 인사를 꾸벅하는 순간까지도 끝까지 모니터를 보며 열심히 손가락을 움직이고 있었다. 내가 문고리를 잡으며 나오는 것과 동시에 간호사가 ㅇㅇㅇ님 진료실로 들어가세요! 라고 힘차게 외쳤다. 이 얼마나 효율적이고 생산적인 시스템인가!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 가자 약사는 의사보다 더욱 상세하게 설명했다.


-이거는 위염이나 식도염이 있으실 때 주로 드시는 약인데요…


나는 약사의 설명을 들으며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마찬가지로 약사는 여전히 친절하고 상세하게 답해주었다. 나는 약사의 설명의 맞춰 네-네- 하는 대답과 몇 번의 끄덕임과 함께 어젯밤 인터넷으로 찾아본 결과와 같은 진단이 내려졌음에 안심했다. 전 날 밤을 설치며 얻은 결론은 역류성 식도염과 위염이었다. 원인은 다양했다. 공복에 산이나 커피, 카페인 음료를 마신 경우, 야식을 먹고 바로 누워 잠을 청하거나 식사 후 바로 눕는 생활습관 그리고 만병의 근원 스트레스.


이 중 나의 원인은 전부였다. 요즘 커피수업을 받느라고 아침 일찍부터 공복에 커피를 마셨다. 매일 연습한답시고 커피를 내려마시고 거기다 산 성질이 강한 사과를 곁들였다. 밤 10시에 퇴근하면 주린 배를 참지 못하고 이것저것 닥치는대로 우겨넣은 다음 잠에 들었다. 그리고 스트레스. 서비스업 6년차인 지금도 이상한 사람들에 대한 스트레스는 적응이 되질 않는다. 게다가 최근에는 새로 시작하는 프로젝트까지 있어서 신경쓸 일이 이만저만이 아닌 상황이다. 이 모든 것들이 한데 어우러져 역류성 식도염과 위염으로 찾아왔고, 나는 그제야 나의 몸이 힘에 부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집에 돌아와 달력을 펼치고 오늘로부터 열흘이 되는 기간을 표시했다. 그리고는 밑에 큰 글씨로 '절전모드'라고 적었다. 전원을 아예 꺼버릴 수는 없는 노릇이니 저전력모드로 생활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앞으로 열흘동안 나는 최소한의 에너지로 최소한의 일만 할 것이다. 나머지는 온전히 나를 돌보는 것에 힘쓸 것이다. 나는 가벼운 마음으로 달력을 바라보았다. 한편으로는 '그런데 절전모드는 대체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기준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이내 고개를 휘젓고 그런 고민을 지워버렸다. 


'열흘동안 살아보면 어떻게든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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