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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ka Dec 10. 2020

체육관, 남자, 일기

뜻밖의 쿠팡이츠

체육관을 닫았다.


8일부터 28일까지 3주간 영업을 할 수 없다. 월세라도 벌어야 할 텐데 코로나라 아르바이트 자리도 없다. 주변에 하소연하다 보니 한 친구가 그럴싸한 대답을 내놓았다.


'쿠팡이츠는 어때?'


그렇게 쿠팡이츠를 시작하게 됐다.



쿠팡이츠를 하는 방법은 쉽다.


1. 쿠팡이츠 앱을 다운받고 가입한다.


2. 배달 수단을 등록한다

    (ex: 도보, 자전거, 오토바이, 자동차)


3. 앱을 실행 후 상태를 '온라인'으로 바꾸어 콜을 기다린다.


4. 콜이 들어오면 해당 음식점으로 가서 배달 음식을 픽업한다.


5. 픽업한 음식을 주문자에게 전달한다.



오늘로 쿠팡이츠를 시작한 지 3일째. 첫날에 했던 긴장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여유롭다. 차에 앉아서 음악을 들으면서 콜을 기다리다가 콜이 들어오면 장소로 이동해서 픽업, 배달. 다시 콜을 기다리고 픽업, 배달의 연속. 여태까지 파트타임 삼아 일한 것들 중 가장 편했다.(물론 내가 사무직이 정말로 적성에 안 맞는다는 것은 알아주시라)


지금까지 총수익은 13만 원 정도. 대략 20건 정도의 배달을 완수했다. 어머니는 내가 배달 알바를 시작했다는 말에 기겁을 하셨다. '배달'의 이미지가 어머니한테는 그런 것이리라. 내가 쿠팡이츠 시스템에 대해 설명하자 어머니는 나름대로 납득을 하셨는지 고개를 끄덕이셨지만 여전히 탐탁지 않은 눈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할 뿐.


자영업을 시작하면서 내가 크게 깨달은 것이 몇 가지가 있다. 그중 가장 큰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은 바로 '생활력'이다. 투잡, 쓰리잡을 하면서 가족을 부양하거나 빚을 갚는 사람들을 보통 '생활력이 강하다'라고 표현한다.


생활력이 강하다는 것은 이른바 꺾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상황이 닥쳐도 포기하지 않고 생을 이어가는 것을 모색하는 것, 그것이 생활력이 강한 것이다.


회사를 다닐 때는 생활력에 대해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매일 이른 아침에 출근하고 퇴근시간에서 1분이라도 지체되면 스트레스를 받고는 했다. 퇴근과 동시에 업무에 대한 스위치는 모두 off 했다. 일과 나의 삶을 최대한, 두껍고 부서지지 않는 철벽을 세워 분리하고 싶었다. 투잡 같은 것은 생각하지도 않았다. 퇴근하고 쉬기 바빴다.


자영업을 시작하고 나서 처음 몇 달간은 기존의 나의 태도 때문에 고생을 좀 했다.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수익을 창출해야 하는 상황인데, 퇴근시간이 되었다고 해서 일을 멈춰버리면 그대로 좌초되는 것을 처음에는 실감하지 못했다. 자영업이란 그런 것이다. 스스로 영업해서 수익을 내지 못하면 나에게 정산되는 금액은 0원이다. 대충대충 시간만 때워도 한 달에 한 번 월급이 들어오는 상황과는 전혀 다르다.


장사하는 사람은 억세다는 말이 있다. 4년 차 자영업자인 나를 돌아보면 굉장히 맞는 말이다. 생존이라는 명제 앞에 자영업자는 억세질 수밖에 없다. 아스팔트에 뿌리내리는 민들레 씨앗처럼 고난과 역경의 틈바구니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발악하는 것이 디폴트가 되어있다.


평범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도대체 왜 저렇게까지 해서 살아야 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충분히 이해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던 때가 있었으니까. 그렇지만 관점을 달리해서 자영업자의 입장이 되어보면 그들도 알 것이다. 조금이라도 움직이지 않으면 심해로 추락해 버리는 상어처럼, 생존을 위해 조금이라도 버둥거리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면 누가 꼬리질을 멈출까?


생존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다시 영업을 하기까지 아직 2주 반 정도가 남았다. 오늘도 밥을 든든히 챙겨 먹고 쿠팡이츠 앱 상태를 '온라인'으로 바꾼다.


오늘도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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