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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ka Dec 07. 2020

체육관, 남자, 일기

갑자기 백수


오늘 회의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 단계를 다시 한번 조정하고자 합니다. 상황이 심각한 수도권은 거리두기를 2.5단계로 격상하겠습니다. 수도권 이외의 지역도 단계 조정을 포함한 방역 강화 방안을 논의해서 결정하겠습니다.



 정세균 국무총리의 모두발언이 끝남과 동시에 내가 백수가 되는 것이 확정되었다. 거리두기 단계가 2.5단계로 격상되면서 실내체육시설은 집합 금지명령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거리두기 2.5단계 기간은 12월 8일부터 28일까지 총 3주. 3주간 나는 일을 할 수가 없다. 소득을 창출할 수가 없어졌다. 직업이 있지만 일을 하지 못하는 경우에 처한 사람은 어떻게 정의해야 할까? 


실내체육시설은 영업이 중단될 경우 두 가지 측면에서 피해가 발생한다. 1. 신규 회원 유입 중단 2. 기존 회원의 회원권 연장에 의한 손해. 


1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2의 경우 많은 사람들이 간과하는 부분이다. 아마 정책을 담당하는 사람들도 깊게 생각하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예를 들어 12월 8일에 기한이 만료되는, 재등록 의사가 있는 회원이 있다고 하자. 그렇지만 우리는 12월 8일부터 강제 휴관 기간이 시작되기 때문에 재등록을 받을 수 없다. 12월 15일이 재등록인 회원이 있다고 하자. 휴관기간 동안 12/8~12/15까지 체육관에 나올 수 없으니 이 기간만큼 연장을 적용하여 1월 5일에 회원권을 연장해야 한다. 


만약 월세와 공과금이 나가는 날이 매달 15일이라고 하면 위의 사례처럼 휴관기간에 걸친 회원들의 재등록을 받지 못하고, 체육관은 그 금액만큼의 적자를 보게 되는 것이다. 만약 휴관기간에 걸려 있는, 재등록이 임박한 회원들이 전체 회원의 80%라면? 생각하기도 끔찍할 만큼의 적자가 예상된다. 


물론 그 기간만큼 취미생활을 즐기지 못하고 운동을 하지 못하는 회원분들에 대한 마음 역시 아쉽고 답답할 것이다. 나 역시 십분 그 마음을 이해하지만 나는 어찌 되었든 운영적인 측면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매달 내야 하는 월세가 있고, 관리비가 있고, 공과금이 있으니까. 나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니까. 


거리두기 2.5단계 격상 소식을 접했을 때 내 머릿속에 드는 의문은 이런 것이었다. 


'음식점은? 카페는? 백화점은?'  


코로나로 인해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이 시작되면서 실내체육시설은 어떤 업종보다도 방역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탁구장, 줌바, 에어로빅 등 확진자가 발생한 장소가 '실내체육시설'이라는 이유로 집합 제한, 금지 업종에 초창기부터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억울할 노릇이다. 사람들은 운동을 하면서 숨이 턱끝까지 차오를 정도여도 결코 마스크를 벗지 않는다. 처음에는 힘들어하던 사람들도 이제 적응이 되어 마스크를 쓰고도 어려운 동작들을 척척해내는 중이었다. 체육관에 들어와서 나가는 순간까지 마스크를 꾹 눌러쓰고 다니는 회원들을 보며 감사한 마음과 동시에 이렇게 방역 수칙을 지키면 코로나는 금방 잡히겠거니 하는 실낱같은 희망을 품었다. 


하지만 어느 때다 예외는 있고 '일부'는 존재한다. 몰지각한 '일부' 사람들은 헬스장을 비롯한 체육시설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고, '일부' 젊은이들은 1년에 한 번 뿐이라며 이태원, 홍대에 나가 할로윈을 즐긴다. 분장을 보여줘야 하므로 마스크는 쓰지 않았다. 또 '일부'는 시즌이라 스키장에 간다. 기사에서 본 스키장 사진은 인산인해였다. '일부'는 주말이면 백화점과 아울렛으로 몰린다. 서로 간의 거리가 10cm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지만 개의치 않는다. '일부'는 집회를 강행한다. 코로나로 인해 집회에 제한을 두는 것은 헌법에 위배된다고 말하면서.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라는 말이 있듯이, '일부'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다들 이유가 있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듯이 행동이 있으면 그에 따른 이유가 발생하기 마련. 하지만 이유가 있다고 해도 그 모든 것들이 합당한 것은 아니다. 나의 이유 있는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친다면, 그 피해는 누가 보상해주어야 할까?


이유가 어찌 되었든 간에 코로나 확진자는 연일 500~600명 대를 기록했고 나는 3주 동안 영업을 정지당했다. 3주간 다른 일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당장 다음 달 월세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번 2주 영업제한 때는 정부 지원금으로 200만 원을 받았다. 일반 회사를 다니는 친구들은 지원금을 받았으니 다행 아니냐고 묻는다. 하지만 200만 원이라는 금액은 턱 없이 부족하다. 보통 상가 월세 평균을 보면 체육관을 할 정도의 평수의 월세는 대략 300만 원이다. 월세도 내지 못하는 금액인데, 나머지 고정비들은? 고스란히 적자다. 


2주 영업제한 당시 정부가 했던 정책이 생각난다. 이른바 '착한 건물주 지원' 정책. 자영업자들에게 월세를 감면해주는 건물주는 세금에서 감면한 월세의 절반을 깎아준다는 내용이었다. 감면한 월세를 현금으로 지원해준다는 것도 아니고 세금을 감면해준다, 게다가 전부도 아니고 절반만. 우리나라에서 도대체 몇 명의 건물주가 자처해서 그런 수고스러움을 감당할까? 적어도 내가 세 들어 있는 건물주는 그러한 수고스러움을 사양했다. 


한 때 유행했던 말이 있다.


 '조물주 위에 건물주.' 


요즘은 초등학생 아이들도 건물주가 '짱'이라는 사실을 다 알고 있다. 건물주는 사회에서 높은 계층에 위치해 있다. 사회에서 소위 말하는 '기득권'인 것이다. 물론 그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해야 하는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프랑스 귀족은 아니니까. 하지만 현실에서는 건물주도 결국 세입자가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다. 특히나 대출을 반 이상 받아 건물을 사는 건물주들이 많은 요즘은 더 그렇다. 세입자가 월세를 내야 그들도 이자를 낼 것 아닌가?


그렇지만 그들도 월세를 감면하지 않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나로서는 이해가 가지 않지만 다들 있는 것이다. 각자의 입장이라는 것이. 


3주, 21일이라는 예기치 않은 방학이 생겼다.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방학기간 동안 재충전의 시간을 가질 것이고 여유가 없는 사람들은 방학기간 동안 없는 일자리를 찾아 헤맬 것이다. 분명한 것은 3주의 시간은 지나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힘든 시간이 지나가면 미화가 되어 안줏거리가 되듯이, 지금 이 시간도 잘 견뎌내어 추억거리로 변모하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코로나가 얼른 지나가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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