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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ka Dec 06. 2020

체육관, 남자, 일기

재능에 관하여

 '문일지십'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안다'는 뜻으로 공자의 제자인 자공이 한 말이다. 유래는 이렇다. 공자가 제자 자공에게 너와 안회중 누가 낫냐고 묻자 자공이 말했다. 안회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고 자신은 하나를 들으면 겨우 두 개를 알 뿐이라고. 


보통 '재능'이라는 것을 설명할 때 우리는 가장 많이 위 고사성어를 인용한다. 하나를 들으면 두 개를 아는 자공 역시 대단한 인재였지만 열 개를 아는 안회는 소위 말하면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 듯하다. 공자 역시 안회를 가장 아꼈다고 하니 그 재능이란 얼마나 빛이 나는 것이었을까?


남을 가르치는 일을 업으로 삼으면서, 유독 재능이라는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된다. 


하나를 가르쳐서 열을 아는 학생(복싱을 배우는 입장이니 학생으로 표현하겠다)은 아직까지 본 적이 없지만 하나를 가르치면 하나를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학생들은 종종 본다. 자세를 알려주고 시범을 보여주면 곧바로 거의 완벽에 가까운 동작을 수행하는 학생들을 보면 신기하면서도 욕심이 난다. 


'어? 이렇게 잘한다고? 그럼 다른 것도 가르쳐줘야지. 이것도 할 수 있나? 그럼 이건?'


가르치는데 신이 난다. 마치 내가 마음먹은 대로 도자기가 빚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다. 그것도 굉장히 세련되고 고급진 도자기가. 공자도 안회에 대해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까? 재능 있는 사람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가르침을 업으로 사는 사람들에게는 복과 같은 것이다. 


반면 하나를 알려주면 100의 1 정도만 소화하는 학생들이 있다. 한 번에 동작을 이해해서 따라 하는 사람들에 비해 이런 유형의 학생들은 가르치기가 매우 힘들다. 간단한 설명으로 끝날 것을 여러 가지 방법을 적용해서 설명해야 한다. 


예를 들어, 양쪽 무릎을 굽힌 채 무게 중심을 5:5로 맞추어 서는 기본 스탠스를 설명한다고 하자. 



"거울로 본인의 자세를 보면서 해보도록 할게요. 먼저 오른발 뒤꿈치를 살짝 듭니다. 그 후에 양쪽 무릎을 가볍게 구부리며 무게 중심을 5:5로 맞춥니다."


거울로 자세를 보면서 수정하기 때문에 보통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정도의 설명을 이해한다. 시각적인 자료가 함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100의 1 정도만 소화하는 학생들에게는 이 정도 설명은 너무나도 약식이다. 


"거울로 자세를 확인하면서 기본 스탠스를 만들어볼게요. 먼저 오른발 뒤꿈치를 살짝 듭니다. 아, 너무 많이 드실 필요는 없습니다. 3cm 정도만 드실게요. 그다음 양쪽 무릎을 가볍게 구부립니다. 아, 너무 많이 굽히시면 다리 근육에 힘이 많이 들어가기 때문에 다른 동작들을 수행하실 때 뻣뻣하고 느려지게 됩니다. 살짝 탄성만 줄 정도로만 굽히실게요. 네. 거기서 조금만 더 무릎을 펴보실게요. 이제 무게중심을 5:5로 맞춰볼게요. 거울로 지금 보시면 오른쪽 무릎에 무게가 쏠려 있죠? 이 무게를 왼쪽 다리에 조금 나눠줄게요."


이 정도로 풀어서 설명해도 이 중에 1 만큼만 받아들이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나면 평균 대비 2배는 더 에너지가 소모되는 느낌이다. 앞서 말한 하나를 가르치면 하나를 온전히 소화하는 학생들을 가르칠 때에 비해 재미도 현저히 떨어진다. 냉정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가르치는 사람도 결국에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한 번은 이런 고민을 교편을 잡고 있는 친구에게 푸념한 적이 있었다. 친구는 내게 아주 중요한 조언을 해주었는데, '가르치는 사람은 열정을 잃으면 절대로 안돼.'라는 것이었다. 가르치는 사람이 배우는 사람의 소질에 따라 열정이 좌우되다 보면 가르치기 힘든 사람에게는 선생 스스로가 학생을 포기하게 되고 결국 기계적으로 지식 전달만 한다는 이야기였다. 이 조언은 내 가슴에 깊은 울림을 주었다. 


친구의 조언 이후로 100의 1만 소화하는 학생들을 가르칠 때에도 최선을 다했다. 힘들지만 스스로 열정을 가지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 하면 이 사람이 더 이해하기 쉬울까, 어떻게 하면 좀 더 자신감을 가지고 동작을 수행할 수 있게 할까 와 같은 고민을 하게 되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나를 힘들게 하는 학생들이 선생으로서 역량을 키우는 계기가 된 것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100의 1만 소화하는 학생들이 복싱을 포기하지 않고 계속한다면 어느 정도 수준까지는 반드시 올라간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 수준은 하나를 배우면 하나를 완전히 소화하는 학생들과 비슷한 수준을 말한다. 


나 역시 가끔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 100의 1밖에 이해 못하던 학생이 어느새 사각의 링 안에서 그럴듯한 폼으로 쉐도우 복싱을 하거나 헤비백을 팡-팡- 기분 좋은 파열음을 내며 치는 것을 보면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지어진다. 


물론 절대적인 실력 자체는 하나를 배우면 하나를 확실히 아는 학생들이 더 좋다. 그 학생들은 소위 말하는 재능, 소질이 있는 것이다. 그 부분은 어쩔 수 없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재능 중 하나를 가지고 태어난 것을 교습 방법 하나로 온전히 같게 만들 수는 없다. 


다만 올바른 연습 시간이 어느 정도 갖춰지면 누구나 일정 수준까지는 도달할 수 있다. 일반인 기준에서 보았을 때 프로 선수 수준으로. 때문에 우리는 재능이라는 단어 하나로 모든 것을 쉽게 놓아버리면 안 되겠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면 이렇게 생각하자. 매일 내가 투자하고 있는 이 시간이 나를 조금씩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고 있다고. 이 시간이 쌓이고 쌓이면 반드시 이 분야에서 전문가 수준의 퍼포먼스를 보여줄 수 있다고. 


그것이 복싱이든, 학업이든, 회사 업무든 간에. 


절대로 포기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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