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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ka Dec 02. 2020

체육관, 남자, 일기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 

 체육관을 시작한 후로 개인 운동시간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회원들과 간간히 스파링을 할 정도의 체력은 되지만 조금 더 수준이 높은 스파링은 2라운드, 무리해서 해야 3라운드가 최대다. 


처음 체육관을 오픈할 때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았다. 3년 전 모은 돈도 없이 대출을 끌어다 오픈을 하는 입장이기에 디자인에 따라 천차만별인 인테리어 값을 두고 막막한 기분을 느꼈다. 다행히 아는 분의 소개로 금액을 맞추어 공사를 시작할 수 있었다. 


당시 공사를 해준 분은 여러 체육관 인테리어를 책임지신 배테랑이었다. 그때 그분이 하신 말씀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체육관 차리면 정작 체육관에 가장 오래 있는 사람은 주인인데, 운동은 일반 회원보다 할 시간이 없다고. 


그때는 내가 조금씩 부지런 떨면 운동할 시간은 충분할 텐데 왜 그런 말씀을 하셨나 했지만 막상 체육관을 운영하고 보니 그 말이 사실임을 깨닫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루 종일 서 있어야 하는 높은 수준의 노동강도와 언제 어느 시간에 지도를 해야 하는 상황이 올 지 모른다는 것이 나로 하여금 개인적으로 운동을 할 수 없게 했다. 겨우겨우 짬을 내어 운동을 하려고 마음먹으면 내 동작 하나하나를 지켜보는 눈들에 부담스러워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기 일쑤였다. 


그렇게 매일매일 수련하다시피 해온 복싱을 일주일에 한두 번밖에 하지 못할 정도로 하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내게 문제가 생겼다. 첫 번째는 눈이 게을러졌다. 


복서에게 눈이 게을러졌다는 의미는 치명적으로 다가온다. 사람의 눈은 본능적으로 위협을 감지해 눈꺼풀을 닫아 눈동자를 보호한다. '눈 깜빡할 사이'라는 말이 관용적으로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눈꺼풀이 닫히는 속도는 굉장히 빠르다. 평균적으로 0.1~0.15초 정도다. 훈련된 복서의 잽이 뱀이 스트라이킹 하는 속도와 같고 초당 4~5회 정도의 펀치를 뻗으니 말 그대로 눈 한 번 잘못 깜빡였다간 상대에게 치명적인 공격을 허용할 수 있다. 


게다가 눈을 습관적으로 자꾸 감게 되면 상대방 공격 타이밍을 이용해 역으로 공격하는 카운터 펀치를 사용할 수가 없다. 눈 한 번 깜빡임에 공격과 방어 모두 무너지는 것이다. 


둘째는 체력의 저하다. 운동을 하도 못하니 체력이 현저히 떨어졌다. 물론 회원들과 스파링을 할 때는 상대적으로 내가 상수이다 보니 모자란 체력을 알뜰살뜰 나눠 쓰기 때문에 전혀 상관이 없다. 100이라는 체력이 50으로 줄었어도 상대가 나보다 하수일 경우 50의 체력을 1라운드 10 2라운드 10 3라운드 10 이 정도로 쪼개어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3라운드 스파링이더라도 오히려 체력이 남는다. 


하지만 나와 실력이 비슷하거나 나보다 잘하는 프로선수와 스파링 할 때는 다르다. 내 리듬대로 온전히 체력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50의 체력은 1 라운드면 고갈 직전이 되어버린다. 


가르치면서 배운다는 말이 참 맞는 것이, 사람들에게 제대로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하기 위해 아는 것도 다시 연습하고 유명 트레이너의 영상을 분석하고 연구하다 보니 한창 운동할 때보다 기술적인 부분이나 타점 같은 것은 비교도 안되게 더 좋아졌다. 그렇지만 절대적인 운동량 부족으로 체력이 말도 안 되게 떨어졌다. 아이러니한 부분이다. 


이런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답은 한 가지뿐이다. 처음에 마음먹었던 대로 조금 더 부지런을 떨 것. 조금 더 일찍 일어나서 운동시간을 확보할 것. 때로는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단순하게 행동하는 것이 해결책이다. 


한 번은 같이 운동하던 40대 형님에게 이런 고민을 털어놨다. 20대 때는 몰랐는데 30대가 들어서니까 체력적으로 확 꺾이는 느낌이 든다고. 운동량도 운동량이지만 신체적인 노화가 시작된 것 같다고 말이다. 그 형님은 내 등을 철썩 때리더니 자기 앞에서 무슨 그런 이야기를 하냐며 너는 아직 한창인데!라고 핀잔을 주었다. 


물론 상대적으로 내가 10년 이상 젊기 때문에 신체적 능력은 40대인 그 형님보다 훨씬 좋다. 그러나 내 신체 능력은 20대보다 확실히 떨어지고 있다. 나도 복싱처럼 격렬하고 터프한 운동을 하지 않았으면 절대 알아차리지 못할 그런 변화. 아마도 복싱을 하지 않았더라면 눈이 게을러진다던지 내 퍼포먼스가 20대보다 훨씬 못하다던지 하는 미묘한 변화들을 알아차릴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저절로 경계심이 들었다. '컴포트 존(comfort zone)'에만 머물러 있으면 사람은 절대로 변화를 감지하지 못한다. 인간인 이상 시간이 지나면 나이는 먹게 되어있고 노화는 필연적으로 찾아온다. 그것을 빨리 캐치해 삶의 패턴을 바꾸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저 천천히 죽어가는 존재밖에 되지 않는 것이 아닐까?


그 형님의 말대로 나는 아직 젊으니 조금이라도 더 젊을 때 최고의 퍼포먼스까지 내 모든 것을 끌어올리고 싶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내 전성기는 아직 찾아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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