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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ka Nov 30. 2020

체육관, 남자, 일기

성격은 드러나게 되어있다. 

취중진담이라는 말이 있다. 


술에 취했을 때 진심을 털어놓는다는 의미다. 알코올에 의해 억눌려 있던 감성이 터져 나와서일까, 생각해보면 유독 취중에 진심 아닌 진심이 나올 때가 있는 것을 보면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보통 때 사람은 이성을 이용해 감성을 컨트롤한다. 화가 머리 끝까지 오른 사람에게 '이성적으로 생각해!'라고 말하는 것처럼 이성을 잃은 인간은 무슨 짓을 할지 모른다. 


이성을 잃은 사람들의 행동을 본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성격 나오네.'


여기서 성격이라는 것은 무엇일까? 물론 한 단어로 성격을 정의하기는 너무도 복잡하겠지만 적어도 사람들이 말하는 '성격 나오네'의 성격은 평소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줄 때 사용한다. 


평소 저 사람에게서 볼 수 없던 무엇인가를 볼 때, 우리는 거기서 낯섦과 동시에 그 사람의 성격을 느낀다. 사회적으로 보이는 성격은 철저한 이성으로 인해 통제되고 만들어진 가면이라는 것을 입 밖으로 말하지는 않지만 모두가 공감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이라는 가면 아래 숨겨진 인간이라는 동물의 순수한 모습, 그 모습은 대개 이성이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할 때 가면을 뚫고 바깥으로 나온다. 


앞에 말했듯이 술을 마셨을 때나 강한 위기감을 느낄 때, 인간의 3대 욕구인 식욕, 성욕, 수면욕이 충족되지 않을 때 같은 상황에서 우리 안의 짐승이 세상 밖으로 나온다. 이를 우리는 '본성'이라고 부른다. 


재밌는 사실은 사람들이 복싱을 하면서도 자신의 본성을 유감없이 드러낸다는 것이다. 특히 스파링이나 시합을 할 때 그 점을 명확히 관찰할 수 있다. 


복싱은 기본적으로 스포츠지만 상대방을 타격하는 투기 종목이다. 서로의 얼굴과 복부를 주먹으로 가격하는 인간의 원초적인 행동에 입각한 스포츠인 것이다. 


처음 스파링 혹은 시합을 하는 사람은 그 사람이 어떤 일을 해왔건 간에 긴장하게 되어있다. 사각의 링에서는 오로지 나와 상대방, 무기는 내 몸보다도 훨씬 작은 두 주먹뿐이다. 상대방도 마찬가지. 땡- 하고 벨이 울리면 3분간 벗어날 수 없는 결투가 시작되는 것이다. 


이때, 사람들 각기 각색의 성격이 링에서 그대로 나온다. 어떤 사람들은 눈을 질끈 감고 가드를 올려 얼굴을 파묻는다. 또 어떤 사람들은 거울 앞에서 연습했던 자세들은 깡그리 잊어버리고 주먹을 붕- 붕- 휘둘러댄다. 어떤 사람들은 그런 상대를 주시하고 있다가 침착하게 상대방 타이밍에 맞춰 카운터 펀치를 꽂아 넣는다. 


이외에도 사람들의 복싱은 개개인 별로 다양한 특성을 보여준다. 


나의 경우는 '한 가지밖에 보지 못하는 성격'이 그대로 나의 복싱에 드러난다. 예를 들어 이런 것이다. 상대방 공격에 역으로 공격하는 카운터 공격을 의식하면, 그 라운드에 경우 카운터 공격만 노린다. 반대로 상대방 공격을 회피하는 것에 집중하면 찬스가 와도 방어에 집중하여 상대방과의 거리를 벌려버린다. 한마디로 융통성이 없어지는 것이다. 복싱을 잘한다는 것은  상황에 따라서 적재적소에 필요한 움직임을 구사한다는 것인데, 한 번에 하나밖에 하지 못하는 성격이 도움이 될 리 만무하다. 


앞에 말한 예들도 마찬가지다. 눈을 질끈 감거나 흥분에 못 이겨 주먹을 휘두르거나 하는 행동들은 복싱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더 많이, 더 심하게 맞는다. 결국 복싱을 잘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성격, 본성을 컨트롤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내 성격대로 모든 일을 처리한다면 그 사람은 사회에서 결코 환영받지 못할 것이다. 먹고 싶지만 참고, 화내고 싶지만 참고, 게으름을 피우고 싶지만 참고. 이런 식으로 참고 참고 참아 내 본성을 하나 둘 깎아 둥그렇게 만든다면, 


우리의 인생도 복싱도 좀 더 아름답게 완성시킬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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