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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ka Nov 26. 2020

체육관, 남자, 일기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고 있다는 것에 대해

복싱 체육관에 처음 등록하는 회원분들이 상담 때 항상 묻는 말이 있다. 


"혹시 매일 줄넘기만 하나요?"


복싱이라는 스포츠가 많이 대중화가 되었지만 아직까지 복싱의 이미지는 그런 것이다. 오래된 학교 교실 바닥처럼 삐걱이는 나무판자에 청테이프로 칭칭 감은 샌드백, 퀴퀴한 땀냄새와 하루 종일 줄넘기를 하는 선수들...


당연한 이야기지만 지금은 어느 체육관을 가더라도 반년씩 줄넘기만 한다던지 하지 않는다. 복싱 체육관도 철저한 비즈니스이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걸출한 프로 선수를 배출하면 되었지만 우리나라 복싱 시장의 상황으로는 턱도 없는 소리다. 


취미로 복싱을 배우러 온 사람에게 기초! 기본! 이 중요하다며 몇 달 동안 줄넘기를 시키거나 지루한 반복연습을 시킨다면 대체 그 누가 버틸 것인가?




복싱을 입문하시는 분들이 처음 체육관에 가면 배우는 동작은 기본 스탠스와 풋워크다. 




1. 스탠스


발을 어깨 넓이보다 약간 넓게 벌린다. 왼발을 한 보 정도 앞으로 내민다. 양 발끝이 2시 방향으로 가게끔 움직인다. 그러면 몸 전체가 2시 방향을 보게 되는 모습이 된다. 이 상태에서 고개만 살짝 정면을 향한다. 양 손은 정권을 쥐고 양 팔을 가볍게 머리 위쪽으로 올렸다가 팔꿈치가 갈빗대에 얹힌다는 느낌으로 살포시 내려놓는다. 이때 승모근이 위축되지 않게 긴장을 풀어준다. 양 주먹은 턱과 광대 사이에 가볍게 붙여준다. 오른쪽 발 뒤꿈치는 지면에서 살짝 들어주고 양쪽 무릎은 가볍게 굽힌다. 이때, 무게 중심은 한쪽으로 쏠리지 않고 50:50을 유지해야 한다. 이 동작이 복싱의 기본 스탠스다. 물론 여러 가지 가드가 있지만, 기본적으로 처음 기초를 다질 때에는 이 스탠스를 사용한다.


2. 풋워크


기본 스탠스를 갖춘 뒤, 풋워크를 이용하여 앞과 뒤로 움직이는 법을 배운다. 전진 스텝은 오른쪽 발로 지면을 밀어 왼발을 먼저 보내고 지면을 밀친 오른발이 뒤따라와 스탠스를 유지한다. 후진 스텝은 반대로 왼발로 지면을 밀어 오른발을 보낸 뒤, 왼발이 뒤따라와 스탠스를 유지한다. 



첫날에는 보통 이 동작들을 반복하며 연습하고 정리 운동 후 끝이 난다. 복싱은 3분 동안 같은 동작을 반복하면 생각보다 꽤 힘들다. 게다가 익숙지 않은 자세를 유지하면서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제대로 연습하려면 상당한 집중력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보통 급한 성격의 소유자들은 이 과정을 버거워한다. 이유는 하나, 지루하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한 복싱을 배운다는 것의 이미지는 팡팡- 소리를 내며 샌드백을 치거나 스파링을 하는 그런 것인데, 거울 앞에서 이상한 자세를 취하고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하는 풋워크만 하고 있으니 속이 터질 만도 하다. 


때문에 성격이 급하신 분들의 경우 초반에 몇 번 기초 과정을 배우시다가 안 나오는 분들이 많다. 어쩔 수 없다. 보는 것과 내가 하는 것의 차이는 하고자 마음먹은 것만으로는 메울 수 없다. F1 레이싱 경기를 보고 '나도 운전할 줄 아는데 머신 한번 몰아볼까?'와 같은 이야기다. 아마 대부분은 시동조차 켜지 못할지도 모른다. 


복싱도 마찬가지. 우선 어떻게 서는지부터 배워야 펀치를 배우던지 할 것 아닌가? 하지만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을 거듭하다 보니 그 부분을 이해시키는 것이 선생의 역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문제는 바로 'WHY?'였다. 


그냥 뚜벅뚜벅 걸어가서 때리면 될 일이지 왜 이렇게 불편하게 서서, 불편한 게걸음 같은 걸음걸이로 가느냐? 


사람들에게 이 부분을 명확히 설명해줬어야 했다. 이 동작을 하는 이유에 대한 명확한 설명과 이해가 있어야지만 지루한 반복 연습을 견딜 수 있는 것이다. 아니, 동작 수행에 대한 명확한 이해가 수반된다면 더 이상 지루하지 않은 연습이 될 것이다. 그저 이해 없이 시켜서 하는 것과 능동적으로 연습하는 것의 차이다.



호텔에서 일하는 하우스키퍼들의 신체적 활동량은 웬만한 운동보다 많다. 그런데 이들의 몸무게와 체지방은 운동을 꾸준히 한 사람들보다는 평범한 사람들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나빴다. 스탠퍼드 대학의 연구팀에서 이에 대해 연구한 결과 문제는 '의식'에 있었다. 그들에게 당신들이 하는 작업이 굉장한 운동이고 많은 칼로리를 소비하는 동작들이라고 설명을 하자 신체의 변화가 일어났다. 몸무게가 감소하고 체지방량이 줄어들었다. 게다가 일에 대한 만족도까지 높아졌다. 바뀐 것은 하나, 그들의 생각이었다. 


단순히 힘든 노동이라는 생각이 칼로리 소모량을 현저히 낮춰버린 것이다. 원효대사의 해골물처럼,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연구다. 


다시 돌아가서, 복싱도 마찬가지다. 왜 이런 스탠스와 스텝을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 없으면, 운동을 배우는 입장에서는 단순한 노동이다. 부자연스럽고 힘든 자세로 신체를 혹사시키는 노동. 어떠한 성취감이나 보람도 없이 끊임없이 반복하는 동작들은 고통의 연속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스스로가 알고 있는 것이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도 비슷한 맥락에서 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비단 복싱뿐만 아니라 우리가 하는 일에 대해서도 적용이 되는 부분이다. 


회사원이든, 자영업자든, 프리랜서든 간에 내게 주어진 일에 있어서 왜 이 일을 하는지, 앞으로 내가 가야 할 방향이 어느 쪽인지 명확히 인지하고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일과 삶을 대하는 자세가 확연히 달라지지 않을까?


유난히 그날따라 일이 버겁게 느껴지거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이 나를 괴롭힌다면 호흡을 멈추고 한 번쯤 나를 돌아봐야 한다.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 인생에서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은 어디이고 그 방향 위에서 내가 잘 가고 있는지, 만약 방향이 맞지 않으면 어떻게 수정해야 하는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인생이 당장 드라마틱하게 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지금 하는 일이 '노동'처럼 느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 작은 차이가 하우스키퍼들이 변화한 것처럼 우리의 인생도 변화시키게 만드는 씨앗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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