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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ka Nov 25. 2020

체육관, 남자, 일기

1. 나의 5학년과 너의 5학년

코로나 바이러스가 지구에 나타난 지 벌써 1년이 다 되어간다. 우리나라에서는 1월 말부터 스멀스멀 모습을 드러내더니 2월부터는 그 존재감을 거리낌 없이 뿜어냈다. 


초반에 직격탄을 맞은 것은 실내체육시설이었다. 확진자가 '줌바댄스'에서 나타났는지 아니면 확진자가 '줌바댄스'에 다녀갔는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분명히 기억하고 있는 것은 그로 인해 실내체육시설에 운영 중지 권고와 더불어 집합 금지 처분까지 내려졌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코로나 바이러스는 잡히기는커녕 점점 더 몸집을 불리더니 이제는 너 나 할 것 없이 모두가 피해를 받고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안타까운 것은 어린 학생들이다. 


한창 학교나 학원에서 친구들을 만나고 밖에서 뛰어놀 나이의 에너지 넘치는 초등학교 친구들이 학교를 제 때 가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넘치는 활력을 세상사에 찌든 부모로서는 감당키 힘들다. 집에서 에너지를 쏟지 못한 아이들은 체육관에 온다. 운동도 운동이지만 사람 간의 대화가 더 절실한 아이들은 나를 붙잡고 쉴 새 없이 떠든다. 


평소라면 어느 정도 이야기를 받아주다가 그 날 해야 할 운동량을 수행시키기 위해 집중을 유도하는데, 하루는 아이들이 신나서 이야기하는 얼굴을 보니 조금 더 이야기를 들어줘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 학교도 자주 못 나가고 심심할 텐데 여기서라도 해소하게 해주자.'


이런 마음이었다. 


보통 아이들과의 대화는 7:3 정도의 비율이다. 아이들이 말하는 것이 70프로, 내가 말하는 것이 30프로. 아이들의 말의 대부분은 질문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런데, 그 날따라 아이들의 질문이 이상하다. 


"선생님, 여기서 일하면 얼마 벌어요?"


"선생님, 여기 월세에요 전세에요?"


"선생님, 차 뭐 타고 다녀요?"


원래는 30프로를 차지해야 할 내 목소리가 침묵을 지켰다. 질문을 한 아이들은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우리나라 나이로 하면 12살, 만 나이로 하면 10살 혹은 11살 친구들이었다. 난감해하며 대답을 못하는 나를 구해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다른 5학년 아이였다. 


"야, 그만해 너네들. 선생님 곤란해하시잖아."


나는 급하게 분위기를 수습하고 아이들에게 줄넘기를 시켰다. 2라운드. 복싱은 1라운드에 3분이 소요된다. 쉬는 시간은 30초. 실제 경기에서는 1분을 쉬지만 체육관에서는 30초만 쉰다. 7분 남짓한 시간, 아이들이 줄넘기를 하는 동안 나는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어떻게든 정리해야 했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무엇이 12살 아이들의 입에서조차 '돈'이라는 단어가 오르내리도록 만들었을까? 아니다. 애초에 돈은 잘못이 없다. 그렇다면 아이들이 이토록 냉정한 '현실'을 입에 담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나중에 성인이 되면 아이들은 냉혹한 현실을 일찍 알게 된 것에 대해 감사할까? 아니면 저주할까? 


생각이 거듭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나의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나의 5학년, 12살 시절은 어땠는지에 대해. 


나는 서울의 서쪽 끝에 있는 개화동에서 태어나 바로 옆에 있는 방화동에서 자랐다. 중학교 1학년 때 이사를 갔지만 14년을 그 동네에서 보냈으니 지금 체육관에서 열심히 줄넘기를 하고 있는 아이들과 같은 나이에는 한창 방화동에서 살 때다. 


초등학교 5학년의 나 역시 지금 아이들처럼 학교와 학원을 다녔다. 그때도 교육열이 세기는 했지만 지금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다. 다른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주요 과목인 국영수를 학원에서 배우고 곁다리로 피아노와 태권도 같은 운동을 배웠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학원비도 만만찮게 들었겠다. 새삼 어머니에게 죄송스러운 마음이다. 


그때 당시 단과 학원비는 한 달에 10만 원~12만 원 정도, 태권도는 6만 원으로 기억한다. 나는 태권도에 흥미를 갖지 못해 한 달 하고 노란띠밖에 따지 않고 그만두었다. 하지만 오후 3시쯤 태권도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문방구에서 파는 300원짜리 슬러시를 먹는 것은 그 당시에 가장 좋아하는 일 중 하나였다. 문방구 앞에서 레미콘처럼 돌아가는 오렌지 색과 보라색 슬러시를 보고 있자면 사 먹지 않고서는 도저히 배길수 없었다. 아마 태권도를 겨울에 다녔다면 그 자리는 500원짜리 컵볶이(종이컵에 담아주는 떡볶이)가 차지하지 않았을까?


가끔 용돈이 넉넉하게 여유가 생기면 한 손에는 슬러시를 들고 만화책방을 들렀다. 지금이나 그때나 만화책을 정말 좋아한다. 기억을 더듬어 그때 읽었던 만화책들을 생각해본다. 바람의 검심, 명탐정 코난, 소년탐정 김전일 등등. 어머니는 만화책 보는 것을 싫어하셨기 때문에 몰래 빌려가야만 했다. 나는 헐렁한 태권도복 안쪽으로 보이지 않게 만화책 3권 정도를 겨드랑이 사이에 끼워 넣고 집으로 들어가곤 했다. 그때는 완벽하다고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알고도 눈감아주신 어머니께 다시 한번 송구스럽다.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건너 건너 아파트는 임대 아파트였다. 정확한 명칭은 기억이 나질 않지만 '도시개발아파트' 비슷한 이름으로 불렀던 것 같다. 주변 어른들은 도시개발아파트는 무서운 아이들이 많으니 되도록이면 가지 말라고 이야기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임대아파트에 대한 어른들의 경계는 똑같은 것 같다. 다만 그 당시에는 그래도 쉬쉬하면서 순화된 표현으로 차별을 했다면, 지금은 '팩트'와 '솔직함'이라는 가면 아래 대놓고 차별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 


90년대 생인 나에게 12살의 느낌은 그런 것들이다. 땀내 나는 태권도복, 만화책, 절대 가서는 안 되는 도시개발아파트, 인라인 스케이트와 자전거. 


순수하다면 순수하다 할 수 있겠고, 무지하다면 무지하다고 할 수 있겠다. 나뿐만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가는 또래의 대부분은 그렇게 살았다. 아파트 집값이나 부모님이 타고 다니는 자동차, 벌이 등에는 무지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서울의 끄트머리에 살았기 때문에 그런가 싶기도 하지만. 


내 입에서 '요즘 아이들'이라는 말이 나올 줄은 12살의 나로서는 짐작조차 못했겠지만, 나의 5학년과 요즘 아이들의 5학년은 삶의 궤가 다르다. 장래희망을 조사하면 과학자나 대통령이 그래도 꽤 많은 숫자를 차지했는데, 요즘은 그 자리를 유튜버가 차지한다고 한다. 


'시대가 바뀌었으니까'라고 위안 삼아 보지만 어쩐지 씁쓸하다. 그래도 나는 어렸을 때 꿈이라도 꾸고 살았는데 요즘 아이들은 어린 나이에 현실과 마주해 준비를 충분히 마치기도 전에 사회라는 트랙에 입장하고 있는 느낌이다. 좀 더 많은 돈, 남들보다 나은 삶, 더 빨리, 더 많이를 향해 달려가는 아이들에게 지금의 삶은 나중에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까? 지금 이 순간 벨이 울리기까지 줄넘기를 하는 아이들은 무슨 생각일까? 수행평가 점수를 잘 받아 좀 더 좋은 성적을 받아야겠다는 생각일까? 아니면 운동을 끝나고 해야 할 학원 숙제에 대해 생각할까? 아이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지 나로서는 알 수 없다. 다만 내가 태권도를 마치고 마시던 슬러시와 몰래 도복 안에 숨겨오던 만화책과 같은 달콤함은 분명 아닐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땡-


벨이 울리고 어느새 2라운드가 끝났다. 아이들이 제각각 줄넘기를 걸어놓고 정수기로 우다다 뛰어온다. 이마 위로 선명한 선을 그리며 떨어지는 땀방울을 훔치며 서로 먼저 물을 먹겠다고 아웅 대는 아이들을 보니 그래도 애들은 애들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 애들은 잘못이 없다. 잘못은 항상 어른들이 한다. 아이들이 체육관에 다니는 시간은 길어야 1-2년일 것이다. 중학생이 되면 더 많은 학원, 더 많은 숙제들과 스트레스들이 체육관에서 운동하는 시간 대신 차지하겠지. 아이들이 체육관에 다닐 동안이라도 나는 더운 여름에 몰래 사 먹는 슬러시 같은 존재가 되어주어야겠다. 


"자, 얘들아, 조금 쉬었다가 운동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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