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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ka Nov 24. 2020

0. 프롤로그: 어느덧 3년

시끄러운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귀를 때린다. 서둘러 알람을 끄고 싶지만 차가운 아침 공기가 이불 밖으로 손 내밀 기를 망설이게 했다. 


겨우겨우 시끄러운 귀뚜라미 소리를 끄고는 찌 뿌드 한 몸을 한껏 늘리며 기지개를 켰다. 겨울이다. 2020년으로 달력이 넘어간 것이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은데 어느새 11월도 다 갔다. 


2020년에는 유독 일이 많았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했고 호주에서는 거대한 산불이 온 땅을 집어삼킬 듯 타올랐다. 전설적인 농구선수 코비 브라이언트가 헬기 사고로 영원한 안식에 들었고, 1973년 이후 가장 오랫동안 장마가 지속되었다. 무려 54일 동안이나. 


그러는 동안 나는 31살이 되었고 32살을 앞두고 있다. 체육관을 운영한 지 만 3년이 되었다. 처음 복싱 체육관을 시작했을 때는 20대였는데, 벌써 앞자리 숫자가 3으로 바뀌었다. 3년 동안 정말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많은 사람들을 떠나보냈다. 만남이 있으면 이별 역시 찾아오는 법이지만 헤어짐은 항상 그렇듯 익숙지가 않다. 


취미로 시작한 일이 직업이 되면서 때로는 고단함이 차지하는 부분이 즐거움이나 보람보다 더 클 때도 많았다. 하지만 복싱이라는 스포츠에 대해 여전히 잘하고 싶고, 잘 알고 싶은 마음이 사라지지 않은 것을 보니 아직은 한창 일할 때라는 생각이 든다. 


3년이라는 시간 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다. 대부분은 작은 일들이었지만 큰 일도 몇 가지 있었다. 그중 어떤 것들은 기억이 나고 또 어떤 것들은 애써 떠올리려 해도 흔적조차 찾기 힘들 만큼 흩어지는 중이다. 


매일이 같은 일상이라고 생각했다. 대다수의 현대인들이 느끼는 감정처럼 매일매일 반복되는 지루한 일과, 매너리즘, 쳇바퀴, 헤어 나올 수 없는 늪 같은 이미지들이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앞으로 나아가려는 발걸음을 떼기 어렵도록 자꾸만 붙잡았다. 


그렇게 하루 해를 보내고 또다시 무의미하게 새 해를 맞이하는 날이 많아지면서 나는 좀처럼 낭만을 꿈꾸기 힘들어졌다. 원하는 것은 그저 돈, 돈, 돈. 끝을 모르고 치솟는 집값에 도대체 얼마를 벌어야 집을 살 수 있을지 계산하다가, 월 1000만 원을 벌게 된다고 하더라도 인생에 드라마틱한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사실을 직시하고는 한없는 우울감에 빠져 기계처럼 일만 했다. 


그러다 우연히 유튜브 알고리즘에 의해 알게 된 유튜버를 보게 되었다. 제주도에서 살고 있는 그 유튜버는 나보다 한참이나 어렸다. 아직 취업도 하지 않은 학생이라 경제적으로 나보다 훨씬 부족했다. 나는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없었지만 그 유튜버의 부모님은 두 분 다 몸이 편치 않으셨다. 그 유튜버는 고양이를 네 마리나 키웠지만 한 마리는 고양이 별로 보냈고 한참을 슬퍼했다. 아직 솜이는 아프기는 하지만 무지개다리를 건너지는 않았다. 


나는 객관적으로 모든 부분이 그 유튜버에 비해 나은 환경이었다. 그러나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주는 것 하나 없이 그저 그런 삶을 살고 있었고 그 유튜버는 다른 사람들에게 살아갈 희망을 주고 있었다. 


부끄러웠다. 


작은 것 하나를 돌아보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하는 그 유튜버의 말이 더 많은 돈을 위해 살았던 내 삶을 아프게 헤집었다.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는 그 유튜버의 말에 눈물이 왈칵했다. 누군가에게는 아침에 눈을 뜨고 스스로 샤워하고 아침밥을 먹는 일이 굉장히 수고스러울진대, 그 모든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더 많은 것을 요구했던 나 자신이 흉하게 느껴졌다. 


돌이켜보니 평소와 똑같아 보였던 어제도 분명히 오늘과는 다른 하루였다.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같은 시간에 퇴근하는 하루여도 날씨가 달랐고, 만나는 사람들이 달랐으며, 내 기분도 달랐다. 


어찌하여 나는 오만하게도 매일이 똑같은 하루라며 지겨워했는지 내가 믿는 하나님께 얼굴을 들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럽고 창피할 따름이다.


주변을 돌아보면 나와 같은 사람들이 많다. 


대다수의 현대인들이 아마 같은 생각을 하며 사는 것 같다. 만나면 부동산 이야기, 주식 이야기, 어떻게 하면 더 돈을 벌 수 있을까에 초점이 맞춰진 이야기들 뿐이다. 다른 사람들과 다른 곳에서 만나도 항상 주제는 같다. 어떤 때는 어제 만난 사람과 오늘 만난 사람이 헷갈릴 때도 있다. 


무엇이 우리를 그렇게 돈에 집착하도록 몰아넣었을까?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인생을 다 아는 것처럼 우쭐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내가 알게 된 작은 사실이 세상을 조금이나 따뜻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  


똑같아 보이는 매일이 이리저리 뜯어보면 모두 다른 개성을 가진 사랑스러운 하루들이라는 것을 나의 하루로 표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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