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부터 이야기해야 네가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한참을 고민하던 목마가 입을 열었다.
-우선 기본 개념부터 잡고 가자. 너는 인간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해?
나는 난데없는 질문에 '물'이라고 대답했다. 인간의 70%는 물로 이루어졌다는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가 머릿속을 스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마는 기대한 대답이 아닌듯 고개를 저었다.
-그건 물질적인 것이고. 보통 인간을 육체와 정신 이렇게 나누잖아.
나는 잠자코 고개를 끄덕였다.
-자, 이해하기 쉽게 보여줄게 여기봐봐.
목마의 옆으로 거대한 사람 형체가 나타났다. 민머리의 그 거대한 사람은 발가벗고 있었는데, 고등학교 생물시간에 본 인체모형처럼 몸의 반쪽은 장기들이 훤히 보였다. 목마가 발을 허공에 휘젓자 내부의 장기가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 심장은 쉴새없이 움직였고 셀 수 없을정도로 많은 핏줄은 제각기 신선한 혈액을 운반하느라 분주했다. 그 외의 장기들도 미세하지만 조금씩 살아있음을 알리는 듯 움직이고 있었다. 살아있는 사람의 장기를 눈 앞에서 본다는 것은 신비 그 자체였다. 따로 떼어놓으면 전혀 쓸데가 없는 것들이 모여 척척 박자를 맞춰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모습은 가히 과학의 절정이었다. 이렇게 많은 움직임들이 모여 한 인간을 살아있게 만드는구나 싶으면서도 병실에 누워 있을 내 육체가 생각났다. 내 몸도 저렇게 분주히 움직이며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있을까? 조금이라도 더 살아남기 위해 호흡기에 보조장치를 달고서라도 부지런히 자신의 할 일을 하고 있을까? 나는 다시 정신을 차리고 일상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지 생각하는 나 자신을 보고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마의 목소리가 들리기 전 만해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는 입장이었는데 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세계에 들어오자마자 생에 대한 욕구가 마구 샘솟는 것이 인간이란 역시 간사한 동물인 것이다. 내가 멍하니 인체모형과 같은 사람을 보고 있자 목마는 발로 머리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에 뭐가 있지?
-뇌?
-그래. 아주 멍청하지는 않구만
나는 당연한 것을 묻고 당연히 들었어야할 대답을 들었음에도 진심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목마를 보며 어이가 없었다.
-그럼 네 육체를 움직이는 것은 뭐지?
-뇌?
-좋아.
목마는 이번에도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의 육체는 뇌가 움직이지. 엄밀히 말하면 뇌에서 일어나는 '생각'이라는 것이 육체를 움직이게 만드는 거지. 그런데 그 생각은 어떤 것이 하는 것일까? 뇌가? 아니야. 뇌는 말 그대로 뇌, 컨트롤 타워의 역할만 하는 것이지. 컨트롤 타워에는 그것을 조종하는 것이 있어야겠지?
내가 이해가 안간다는 듯이 굴자 목마는 답답해하며 공중에 뜬 인체모형을 가리켰다.
-자 봐봐. 지금 뇌에서 흘러나오는 신호가 보이지?
목마의 발끝을 따라가니 인체모형의 머리에서 반짝반짝 빛나는 노랗고 작은 알갱이가 보였다. 알갱이는 깜빡깜빡하며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뇌에서부터 출발한 알갱이는 목을 지나 왼쪽어깨를 통과해 손 끝으로 향했다. 셋째 손가락 끝에 도착한 알갱이는 처음보다 강한 빛을 내며 반짝였고 그 순간 인체모형의 왼손이 움직이며 손가락이 구부러졌다. 목마는 키득키득 웃으며 내게 ‘봤지?’라고 물었다. 나는 목마의 태도에 황당함을 넘어서 실망감을 감출 수 없었다. 고작 저 커다란 인체모형을 만들어놓고 내게 보여준다는 것이 가운데 손가락을 보기 좋게 위로 올려 놀리는 것이라니, 애가 따로 없었다.
-어떻게, 또 가시라도 만들어서 화를 내야하는 상황이야?
목마는 떨떠름한 나의 반응을 예상치 못했는지 처음으로 당황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이내 결심한 듯이 다시 발끝으로 인체모형을 가리키며 ‘다시 봐봐’라고 이야기했다. 또 한 번 노란 알갱이가 반짝이며 뇌에서 출발하더니 이번에는 목을 지나 오른쪽 어깨를 통과했다. 나는 설마하는 생각이들었지만 잠자코 지켜보기로 했다. 반짝거리며 오른손에 도착한 알갱이는 이번에도 역시 강한 빛을 내며 인체모형의 손가락을 구부렸다.
-더블!
나를 향해 양 손을 내밀고 가운데 손가락을 올린 인체모형을 보며 목마가 낄낄거리며 웃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눈을 질끈 감았다. 내가 보고 싶은 것은 저런 유치한 장난이 아니었다.
-너 혹시 몇 살이니?
내가 참다 못해 묻자 목마는 웃음을 멈추고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여튼 간에 유머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여자군. 자, 계속하지. 이 노란 빛이 바로 명령어야. 명령이 입력되면 노랗게 변한 이 불빛이 뇌에서부터 출발해 목적지까지 통로를 따라 움직이며 육체에 명령을 새기며 지나가지. 그리고 명령의 끝에 도달하면 이렇게…
목마는 자신의 발을 들어올려 손가락을 올리는 제스처를 취했다. 당연하게도 목마에게 손가락이 있을리 없었지만 분명 목마는 자신의 가운데 손가락을 들어올렸을 것이다.
-육체가 명령을 이행하는 것이 되지. 여기서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명령이야. 이 명령을 누가, 아니지 어떤 것이 내리느냐 하는 말이지.
나는 목마의 발을 애써 외면하며 물었다.
-뇌가 내리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야?
-그렇지!
목마는 발굽을 부딪히며 좋아했다. 나는 처음부터 그렇게 말했으면 진즉에 알아들었을 것이라고 목마에게 말했다. 하지만 목마는 고개를 저으며 내 말을 부정했다.
-아니. 네가 어린아이의 정도의 순수함을 가지고 있지 않는 한 절대로 안돼. 어쨌거나 중요한 것은 뇌 역시 육체에 불과하다는 사실이지. 결국 명령을 내리는 것은 다른 것이라는 말이야.
-다른 것이 뭔데? 정신?
-정신이라고도 하고 영혼이라고도 하지. 명칭이야 어떻든 간에 육체와 별개의 무엇인가가 존재한다는 것이 포인트야. 원래 둘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인데, 어떤 이유에 있어서 합쳐지고 그게 바로 인간이 된거지.
-어떤 이유로 합쳐진 건데?
-그건 나도 몰라.
목마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내 스승도 거기까지는 모른댔어. 짐작가는 것이 있긴 했지만 어설프게 아는 것은 오히려 독이라고 나중에 연이 닿으면 내가 알 수도 있을 거라는 말만 했지. 하여간, 기본 개념은 인간은 정신과 육체로 분리될 수 있고 원래 둘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인데 어떤 이유로 둘이 합쳐져서 인간이 되었다는 것이야.
육체와 정신이 결합된 것이 인간이다, 나는 속으로 목마의 말을 되뇌이며 생각했다. 살면서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는 말이나 '건강한 신체에 건전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 같이 육체와 정신에 관한 어구는 많이 들었지만 정작 육체와 정신이 따로 분리되어 존재한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육체 따로 정신 따로 살아있을 수도 있는 것인가? 생각이 거기에까지 미치자 나는 순간 겁이났다.
-그럼 혹시 내 육체는 지금 어떻게 된거지? 여기가 정신세계라면, 여기에 있는 나는 정신이고 내 육체는? 내 몸은 지금 어떻게 된거야?
내가 다급하게 묻자 목마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아직까지는 괜찮아.
목마는 '아직까지는'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는 것은 나중이 되면 어떻게 될 지 모른다는 말이다. 나는 목마에게 어떤 일을 당해도 이것만은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마음에 목마를 재촉했다.
-아직까지는? 그럼 나중에는 어떻게 되는건데? 지금 상황은 어떤거고?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지니라.
목마가 유명한 성경구절을 읊었다.
-죽는다는 이야기야?
나는 몸 안에 의식이 갇힌채 차라리 죽음을 원하던 시간들을 뒤로한 채 다급하게 물었다.
-진정해 아직 시간이 남았으니까.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너를 부른거고.
목마가 앞 발을 들어 나를 만류했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데?
-음.. 그건 사람마다 다 달라. 정확히 말하면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의지의 문제지. 그래도 페이즈2가 진행되고 있는데도 네가 여기 올 수 있었던 것을 보면 아직은 괜찮아. 아니, 좋은 쪽으로 생각해도 될거야.
나는 '페이즈2'라는 단어를 목마를 만나기 전에 목소리로 들었던 것을 기억해냈다.
-페이즈2라는게 무슨 소리야?
-급한 건 알겠는데, 기다려 천천히 설명해줄테니까.
나는 단호한 목마의 말에 조금 물러서기로 했다. 목마는 내가 재촉하지 않자 의외라는 듯이 쳐다보았다. 그래도 내가 아무말이 없자 이어서 설명하기 시작했다. 한동안 길고 긴 설명이 이어졌다. 목마의 말에 의하면 정신과 육체는 어떤 원리에 의해 서로 결합된 상태였다. 정신과 육체는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지고 있는데, 정신은 뻗어나가려는 확장의 성질을, 육체는 안으로 갈무리하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다행히 둘이 결합된 상태에서는 서로 중용을 지킨다. 정신의 확장성과 육체의 폐쇄성이 서로 상쇄되어 성질이 서로 다른 두 개체가 완전히 융합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둘의 균형은 인간의 육체가 나이가 들어 자연사 할때까지 한치의 오차도 없이 균형을 이루는데, 모종의 이유로 둘의 균형이 깨지게 되면 문제가 발생한다. '정신병'이라고 불리우는 대부분의 질환들이 이 같은 균형의 붕괴가 초래하는 결과물이다. 그 중에서도 나처럼 소위 '식물인간' 상태에 놓인 사람들처럼 물리적은 충격으로 인해 이 균형의 붕괴가 이루어져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경우에는 육체와 정신의 연결이 불완전한 상태라 정신의 영역만 활발히 이루어지고 육체의 폐쇄성이 기능을 못하게 된 상태다.
육체가 제 기능을 못하면 정신 역시 불안정해진다. 오랫동안 육체와 균형을 이루는 것이 익숙했기 때문이다. 이때 사람은 극한의 공포와 답답함을 느끼게 된다. 이것이 페이즈1이다. 페이즈1에서 사람은 얼마간을 공포에 빠져 당황하다가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몇날 며칠을 고민한다. 온 신경을 집중해 신체의 한 부분을 움직이려 노력도 해보고, 명상도 했다가 도대체 왜 자신한테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원망하고 괴로워한다. 대부분의 사람이 페이즈1에서 보이는 행동이 비슷하다고 한다. 그러다 어느 한 순간 현실을 외면하기 시작한다. 정신과 육체의 연결고리가 붕괴되어 때문에 수면도 취할 수 없는 상태이기 때문에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란 철저한 자기 외면이다. 내가 이 상황에 있을리 없다, 이것은 꿈이다, 자고 일어나면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라는 외면. 페이즈1 동안 사람은 점점 정신이 나갔다가 되돌아오는 것을 반복한다. 이를테면 의식만이 멀쩡한 세계에서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집어던지는 상상을 하고 온갖 자해를 하다가 다시 육체를 움직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에 빠졌다가 포기했다가를 반복하는 것이다. 목마는 이것이 지속되면 육체에 머물러 있던 정신세계가 서서히 붕괴하기 시작한다고 설명했다. 육체에 최적화 되어 있던 정신세계가 붕괴되면 남는 것은 순수한 정신의 본질이다. 이 순수한 정신은 자신의 확장성을 마음껏 발휘한다. 육체에 한정되어 있던 설움을 폭발시키듯이 자신의 영역을 점점 확대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정신의 총 에너지는 한정되어 있다. 끝을 모르고 뻗어나가는 정신은 영역이 넓이질수록 존재 자체가 희미해지고 이윽고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이 과정을 페이즈2라고 말한다. 목마가 나에게 벌써 페이즈2라고 말한 것은 그만큼 내 정신의 붕괴가 빨랐다는 말이었고, 그 말은 내 정신이 무한히 확장할 듯 뻗어나가다 공기중에 흩어지는 먼지처럼 사라질 뻔 했다는 이야기다. 나는 정신이 사라진 채 육체만 남은 '나'를 엄마와 아빠가 내려다보고 있는 장면을 상상했다. 언젠가는 일어날 수도 있다는 희박한 희망에 모든 것을 걸고 간절히 기도하는 그들의 모습을 생각하니 소름이 우수수 돋는 기분이었다.
-그럼 지금 나는 페이즈2인 상태야?
-아니 페이즈2에 진입하다가 내가 구출해왔지 바로 여기로.
목마가 앞발굽으로 가슴을 탕탕치며 말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이냐고 묻자 목마는 천천히 설명해줄테니 일단은 쉬라고 말했다.
-아직 내가 시간이 남은 것은 확실한거야?
-그래 시간은 충분하니까 걱정하지마. 여태 너 한숨도 못잤잖아? 잠 좀 푹 자라고. 여기서는 잘 수 있을테니.
목마의 말을 곱씹어보니 여태껏 잠을 자지 않았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내가 마치 이제서야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는 표정을 짓자 목마는 원래 육체와 정신이 분리된 상태에서는 정신의 확장성의 영향을 받아 무한히 확장하는 것 외에는 하기 힘든 상태라고 말했다. 그 상태를 견딜 수 없어 생각하기를 중단하고 확장성에 온전히 내던지는 상태가 페이즈2라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목마의 권유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지금까지 너무 지친 상태였다. 생각해보면 사고가 났을 시점부터 지금까지 잠깐 의식을 잃었을 때 빼고는 항상 '깨어있는' 상태를 유지해온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며칠 밤을 지새운 사람처럼 머리가 멍하고 눈이 빙글빙글 돌았다. 머리만 닿으면 금방이라도 깊은 잠에 골아 떨어질 것 같은 기분이었다.
목마가 앞 발을 들어 소파를 팡팡 쳤다. 그러자 내 뒤로 거대한 침대가 생겼다. 성인 다섯명이 서로 넓찍히 자리를 잡아도 넉넉할 것 같은 하얗고 큰 침대였다. 아마도 이런 침대는 호텔 스위트룸에서도 찾을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자연스럽게 침대로 굴러 들어갔다. 목마가 다시 한 번 앞발을 구르자 주위가 컴컴해졌다. 침대 옆에는 언제 생겼는지 모를 향초가 타닥타닥 소리를 내며 기분좋게 타고 있었다.
-일단 한숨 자라고. 어차피 일어나면 배워할게 많으니까 부족한만큼 푹 자도록 해.
배워야 할 것이 있다고? 나는 무엇을 배운다는 것인지 머릿속으로 생각해보려 했지만 나의 의지와는 다르게 시야가 자꾸만 깜빡거렸다. 고개를 돌려 목마쪽을 보니 목마는 물론 소파까지 사라져 있었다. 하얗고 큰 침대와 모닥불 소리를 내며 타오르는 촛불, 그리고 피곤에 쩌든 내가 하얗고 큰 방안에 있는 전부였다. 마치 긴 일정을 마치고 숙소에 돌아온 여행객처럼 나는 곧바로 의식을 잃고 단잠에 빠져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