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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ka Jun 19. 2024

허와 실

보여지는 것에 집착하는 삶은 미래가 없다

6월이 반도 다 가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찌는 듯한 더위가 찾아왔다. 뉴스에서 올여름은 유독 덥다더니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는 듯 요즘 햇빛은 뜨겁다 못해 피부가 따가울 지경이다. 햇빛의 성질이 변해서일까 건물 안에 있으면 오히려 바깥보다도 더 더운 것이 따가운 햇빛이 건물을 아궁이 불 때듯이 데우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다. 내가 일하는 곳은 상업용 건물인데 커다란 통창임에도 불구하고 열 수 있는 창문은 가로로는 성인의 한 팔정도, 세로로는 한 뼘이 약간 넘는 정도로 얄궂은 크기다. 게다가 미닫이도 여닫이도 아닌 손잡이를 제쳐서 밀면 창문이 위로 올라가는 구조라 환기는커녕 바람도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다. 건물은 이렇게도 크고 웅장하게 지어놓고는 왜 이렇게 기능도 하지 못하는 창문을 달아놓았는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인터넷을 뒤져보았지만 나와 같은 불만을 가진 사람이 딱히 없었던지 명쾌한 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내가 모르는 어떤 모종의 이유가 있겠지라고 생각하면서도 허우대는 멀쩡한 건물에 기능도 못하는 작은 창문을 보고 있자니 요즘 세태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욜로족’부터 시작해서 코로나 시대를 겪으며 느닷없는 골프 열풍, 파인다이닝, 오마카세 등의 유행을 보면 그 중심에는 인스타그램이 있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것, 자랑할만한 것들을 쏙쏙 골라 올리는 재미에 빠진 요즘 사람들은 상황이나 경험에 대한 어떠한 성찰도 없이 인스타그램에 사진을 업로드하는 것에만 목적을 둔다. 사실 앞에 열거한 것들은 따로 떼어보면 나쁜 것들이 아니다. 언제나 그렇듯 언론의 무지함에서 폄하된 ’YOLO’는 ‘한 번 사는 인생 흥청망청 쓰면서 살자!’가 아니라 ‘한 번 사는 인생 내 안의 열정, 꿈을 믿고 나아가서 성공을 누려라!’라는 의미가 깊게 내포된 단어다. 골프는 또 어떤가? 예전부터 비즈니스를 아는 정치인들이나 기업인들은 모두 골프를 쳤다. 파인다이닝과 오마카세도 훌륭한 문화들이다. 오너 셰프가 되기까지의 모든 경험과 역량이 총망라되어 있는 것들이 파인다이닝과 오마카세인데 그것들이 어떻게 나쁠 수 있겠는가?


나쁜 것은 기능은 하지 못한 채 허우대만 멀쩡한 것들이다. 자동차의 핵심인 엔진은 결함투성이를 쓰면서 그럴듯한 익스테리어를 가진 차를 만드는 제조사나 영양학적으로는 몸을 파괴하는 재료들인데 그것들을 모아 겉만 번지르르하게(사진 찍기 좋게) 만든 음식들, 고급 아파트를 표방하면서도 내부 자재는 처음에만 고급스러워 보이는 싸구려 자재를 이용해 지은 아파트들. 그런 것들이 나쁜 것들이다.


그런데 사실 나쁜 것들도 딱히 문제 될 것은 없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은 정확한 기준이 있을 경우 전혀 문제 될 것이 아니다. 기준에 따라 나쁜 것은 도태되고 좋은 것은 더욱 발전하는 선순환을 이루기 때무이다.  문제는 인스타그램과 같은 매체를 통해 남들에게 잘 보여지는 것만이 최고 선으로 자리 잡은 요즘 사람들의 기준이다. 남들이 보고 부러워할만한 것들이 최고 선으로 자리 잡은 기준은 사회를 병들게 한다. 기업은 이윤을 내야 하고, 이윤을 내기 위해서는 소비자가 좋아하는 것을 팔아야 한다. 소비자의 욕망이 남들이 좋아할 만한 것, 보이는 것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기업은 그런 물건을 팔기 마련이다. 겉만 번지르르해도 괜찮다. 어차피 소비자는 인스타그램에 찍어 올릴 사진 한 장이면 충분하다. 어차피 스토리에 올려 24시간 동안 남들의 부러움을 사다 이내 잊히기 때문이다.


겉만 번지르르한 것들의 가장 큰 문제는 깊이가 없다는 것이다. ‘룩(Look)’에 포커스가 맞춰진 상품은 깊이가 있을 수 없다. 깊이가 없다 보니 기능이 부족하고 그러다 보니 트렌드도 더 쉽게 변한다. 기능이 충실하지 못하니 보여지는 외형에 힘을 쏟아야 하기 때문이다. 기괴하게 디자인된 자동차나 옷, 책의 커버를 보면 탄식이 절로 나온다. 기능이 충실한 것들은 디자인의 이유가 명확하며 디자인 코드나 말하고자 하는 것들이 단순하고 명확하다. 빈 수레가 요란하듯이 기능이 충실하지 못한 것들만 쓸데없이 화려하고 말이 많다. 재밌는 것은 그런 것들을 보여지는 것에서 더 좋다고 여겨 소비하는 소비자들도 기능이 충실하지 못하다는 것을 느끼고는 금세 싫증을 내버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음번에도 또 같은 선택을 한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기능은 못하고 겉만 화려한 것들이 계속해서 생산되는 이유다.


이렇게 좁은 나라에서 1인당 명품 소비가 1위를 차지했다. 미국의 주보다 작은 나라에서 이룬 기막힌 업적이다. 자동차를 사기 위해 인터넷을 보면 가장 많이 물어보는 질문이 ‘하차감’이다. 내 차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어떤 느낌을 주는가가 차를 구매할 때의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순수 운전 재미에 큰 점수를 주는 다른 나라들과는 확연히 다른 문화다. 물론 외국도 SNS 발달로 우리처럼 남들에게 보여지는 것을 의식하는 문화가 조금씩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아직도 본연의 가치, 재미, 철학을 읽는 것에 더 익숙하다.


올해로 88세를 맞은 외할머니는 일제강점기 사람이다. 일제강점기부터 6.25 전쟁을 겪으며 국민학교 학생 때 시체를 넘어 쌀가마니를 지고 옮기는 일도 하셨다. 그런 할머니를 보며 이 나라가 이렇게 잘살게 된 시대가 참 빠르게 왔다는 생각이 든다. 여러 학자들이 말했듯 이제는 산업의 발전과 발맞추어 우리 의식도 성장해야 한다. 남과 비교하는 인생에서 벗어나 개인의 취향과 가치관을 정확히 정립할 때다. 옆을 보며 경주하듯 살아가는 인생이 아니라 내가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며 앞으로 가야 할 방향을 재설정할 때다. 겉만 번지르르한 것은 도태시키고 진정한 가치가 있는 것을 소비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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