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는 꼭 알아야 하는 것일까
'[최종면접결과] 귀하와 같은 인재와 함께 하
지 못함이 아쉽습니다. 전도에 행운이 함께
하길 기원합니다'
문자를 받은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핑- 돌았다. '사내 새끼가 울긴 왜 울어?'하는 엄마의 핀잔이 들리는 것만 같아 서둘러 아무렇지 않은 척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나 떨어졌어요."
여섯 글자에 그동안 받은 스트레스와 안도, 기쁨, 슬픔, 기대 같은 것을 눌러 담아 말했다.
"한 명 뽑았더라고요."
7명 중에 한 명.
11월 서류부터 시작해서 필기시험, 실무면접, 최종면접까지 3개월 여를 준비했건만 6명이 떨어지고 한 명만이 어엿한 사회인이 되었다. 최종적으로 수습사원이 된 이는 나와 함께 면접에 들어갔던 '1번 면접자'였다. 수험번호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면접 때 그 사람에게서 본 간절함과 긴장감, 그리고 끝나고 지하철 역까지 걸어오면서 나눈 취업에 대한 대화 때문에 시기와 질투심보다는 동업자와 같은 기분이 든다.
하지만 동업자처럼 느껴지던 그 사람은 이제 합격자라는 신분으로 거듭났고, 나는 나머지 동업자와의 씁쓸함을 공유해야 할 것 같다. 그 사람이 잘 되던 못 되든 간에 나와는 한 치 상관이 없지만 그래도 축하를 건네고 싶다. 그가 소속된 회사의 말을 잠시 빌린다. 전도에 행운이 함께하길 기원한다.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최종면접 결과에 대해 떨어졌다고 말을 했다. 친구는 '아마도 네가 야당 후보를 지지한다고 해서 떨어진 것 같다'는 코멘트를 했다. 나는 '글쎄, 그럴지도'라는 대답과 함께 다른 주제로 이야기를 돌렸다. 비디오 게임에 관한 이야기를 했고, 리프레쉬가 필요하다는 것에 둘 다 동의했기 때문에 바람도 좀 쐴 겸 게임 타이틀을 사러 나갔다.
"다녀올게요-"
인사를 건네고 문고리를 잡고 돌리는데, 뒤에서 '술, 먹지 말구..'하는 할머니의 말이 들렸다.
"잠깐 바람 좀 쐬고 오는 거예요."
기분이 좋지 않은 날에는 술을 오히려 멀리 한다. 스무 살 때 아버지가 내게 가르쳐 준 것이다. 그럴 때 술을 마시면 꼭 사고가 난다고. 맞는 말인 것 같고 경험담이기도 한 것 같아서 그날 이후로 기분이 좋지 않을 때 술을 마신적은 한 번도 없다. 술로 위로하고 사람들에게 위로받는 대신, 혼자서 깊이 생각하는 것이 버릇이 됐다.
깊이, 깊이 생각하다 보면 어느새 명치끝이 아린 슬픔, 고통, 아픔 같은 것이 익숙해질 때가 있다. 그럴 때까지 생각을 계속해야 했다. 괜찮을 때까지. 그 기간 동안이 나만이 겪는 슬럼프다.
이번에도 역시 계속해서 혼자 생각을 해야 했다. 나를 가장 괴롭히는 것을 추려보니 몇 가지로 좁혀졌다.
1. '회사'라는 곳에 들어가야만 하는 처지
2. 노력에도 불구하고 들어가지 못함
3. 손만 뻗으면 될 것 같았는데 떨어짐
4. 가족을 포함한 나에게 힘이 되고 내가 힘이 되어주고 싶은 존재들에 대한 미안함
5. 사회의 시선
6. 대체 왜 떨어졌지?
생각을 거듭하면서 앞의 다섯 가지 문항들은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몇몇은 해결방안까지도 생각했다. 하지만 마지막 질문은 도저히 해소가 되질 않았다.
'대체 왜 떨어졌지?'
그 날, 최종 면접관은 총 다섯 명이었다.
ㅇㅇ실장, ㅇㅇ실장, 사장, 부사장, ㅇㅇ실장.
각각 2~3개의 질문을 던졌다.
-100만 달러가 있으면 어떻게 쓸 것인가
-회사의 최신 소식에 대해 아는가
-재벌 사면에 대한 본인의 생각은?
-유력 대선 후보 중에 누구를 지지할 것이며 그 이유에 대해 말해보라.
등등.
유력 대선 후보 중 누구를 지지할 것이냐는 질문에 나는 야당 후보를 지지한다고 말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현 정부는 국민들에게 신뢰를 많이 잃었기 때문에, 정부는 정권교체를 통해서 잃어버린 신뢰의 회복을 최우선으로 해야 한다'는 식으로 대답을 했다.
이 이야기를 친구한테 했더니 '무조건 새누리당 지지한다고 그러지 그랬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보수 색깔을 띠는 회사이기도 하고 임원진들도 꼰대니까 새누리를 좋아할걸?'이 이유였다. 친구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럴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만 정치에 관련된 질문이 답변에 대한 논리성을 보는 것이 아닌 정치색을 판별하기 위해 던진 것이라면 다분히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지지하는 후보나 정당이 없다. 더 솔직하게 말하면 정치에 관심이 없다. 정치가 싫다. 정치가 싫은 이유는 정치인들의 똑같은 말은 차치하고서라도 선거 때마다 각 종 공약을 내놓아 사람들의 환심을 사놓고는 아무것도 지키지 않는 위선적인 태도 때문이다. 나 같은 일반 사람들은 정치권에 대해 전문가처럼(도대체 누가 전문가인지는 모르겠지만) 속속들이 알 수 없다. 게다가 나는 정치에 관심이 없다고 해서 손가락질받을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정치를 공부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다. 20대들은 점점 더 많은 것을 요구하는 취업시장의 요구에 맞추기 바쁘고, 취업해서도 넘쳐나는 업무에, 야근에, 승진을 위한 자기계발까지 시간이 없다. 3, 40대들은 내 집 마련, 아이의 사교육 등 집안 걱정에 회사 업무에 시간이 없다. 50대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정치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시간을 따로 쪼개어 공부를 하고, 이 후보가 거짓말을 하는 사람인지 아닌지, 뒷배경은 어떠한 사람인지, 그동안 행적은 어떠했고에 대해서 알 수 있단 말인지 도무지 모르겠다.
나쁜 것은 정치에 관심이 없는 국민이 아니라, 정치인이다. 국민들은 생계를 위해 자기의 맡은 바 소임을 다 하는 것이고, 정치인들은 맡은 바 소임을 다 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선거 때마다 항상 해당 후보의 공약을 살펴보고 나름 합리적이다 싶은 쪽에 표를 던지곤 했다. 하지만 선거활동 때 허리를 90도로 접어가며 인사하던 그들은 당선이 되자마자 코빼기도 볼 수 없었고, 그것은 공약 역시 마찬가지였다.
후보가 내세운 공약을 보지 않고 뽑는다면 대체 무슨 기준으로 뽑아야 하는가?
어른들이 말하는 '빨갱이냐 아니냐'를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가?
젊은이들이 말하는 '진보냐 아니냐'를 기준으로 삼아야 하는가?
모를 일이다. 나 같이 정치에 관심이 없는 사람으로서는 이해가 되질 않는다. 내게는 공약을 실천하지 않고, 겉과 속이 다른 정치인들의 온전한 잘못만이떠오를 뿐이다. 속이는 사람과 속는 사람 중에 속는 사람에게 삿대질을 하며 잘못되었다고 비난하는 것은 참 웃긴 일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매번 '속는 사람' 역할이었던 나도 분노했다. 속이는 사람들이 꼬리를 밟혔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의 꼬리가 길지 않았더라면, 나 같은 사람들은 영영 모르고 속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정치에 대한 것들은 부담스러워서 집회 언저리에 인원수만 채우려는 요량으로 참가했더랬다.
가지각색의 사람들이 있었다. 피켓을 들고 중앙에서 큰 소리로 퇴진을 연호하는 사람, 세 살배기 아이의 이마에 붉은 띠를 두르고 목마를 태우고 나온 사람, 삼삼오오 모여 앉아 막걸리를 마시다가 '하야'소리가 나오면 덩달아 '하야!'라고 외치는 사람, 주변 커피숍에 앉아 일어나는 일들을 흥미로운 눈으로 지켜보는 사람, 집회를 반대하는 집회를 여는 사람 등 각자의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그들 중 잘못한 사람은 누구인가?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답변은 역시 정치인이다. 정치인이 정치를 못하면 정치인 잘못이지,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들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된다. 기억에 맴도는 이야기 중에 '가장 좋은 나라는 왕이 누군지 모르는 나라'라는 말이 생각이 난다. 그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각자 맡은 바 소임을 다한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평화롭고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고 보니 최종면접 때 내 옆자리에 앉은 면접자에게 '촛불집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 나왔다. 그 질문을 들었을 때 속으로는 웃기기도 하고 나에게 저런 질문이 오질 않아 다행이라는 좀스러운 생각도 들었다. 레몬 하나를 입에 쥐어짜 놓고 '맛이 어떠냐?' 같은 질문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잘못된 것을 고치라고 요구하고, 그 잘못에 분노하는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은 의도가 대체 무엇일까.
또 재벌 사면, 지지하는 후보와 그 이유 등의 질문으로 그들은 나의 어떤 점을 파악했길래 떨어뜨린 것일까.
모를 일이지만 그 와중에 분명히 알 수 있는 사실은 그들의 기준에서 틀린 것은 정치인이 아니라 바로 나였다는 사실이다.
살아온 세월보다 앞으로 살아갈 세월이 많지만 견디기 힘든 세상이라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요즘이다. 가끔 어머니의 얼굴에서 세월의 흔적을 엿볼 때면 이때까지 쓰러지지 않고 버텨온 것만으로도 경외심이 들 정도다. 어머니는 나에게 '괜찮아'라며 어깨를 도닥여 주셨지만, 그 손길에 묻어있는 안타까움과 아쉬움, 걱정을 읽어내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나 역시 쓰러지지 않고 나아가기 위해서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도.
여러모로 견디기 힘든 세월이다. 누구에게 위로받는 것도 눈치를 봐야 할 것만 같은 요즘, 내 생각을 자유롭게 글로 쓸 수 있다는 것 하나는 참 축복스러운 일이다. 이렇게 두서없이 글로 툭 털어놓고 나면 운동 후 땀을 쭉 뺀 것 같은 개운한 기분이 든다. 내게 치유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글을 쓴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