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고 나면 항상 봄이었다.
아침에 세수를 하면서 거울을 보니 머리가 덥수룩한 것이 오늘 미용실을 꼭 가야겠다고 마음먹게 했다. 까칠까칠한 수염을 깨끗하게 정리하고 나니 정리가 안된 머리가 더욱 돋보인 나머지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 나왔다.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보면서 엘리베이터를 탄 순간 달콤한 향기가 코를 찔렀다. 아파트에 사는 어느 여자의 향수 냄새였다. 달짝지근한 향에서 언뜻 대학 새내기 시절을 엿보았다. 갓 고등학교 교복을 벗어던진 티가 나는 머리에 힘껏 힘을 준 남자 동기들. 서툴게 화장을 하고 로드샵에서 샀을 것이 분명한 향수를 범벅한 채 옹기종기 모여 있던 여자 동기들. 그때는 그 싸구려 향기에 왜 그렇게도 마음이 설렜는지 이상형이 '향기가 좋은 여자'였을 정도였다. 평소보다 진하게 나는 향수 냄새와 함께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차갑게 가라앉은 공기가 옷깃을 여미게 했다.
'아 겨울이구나.'
계절이 바뀌는 것은 냄새가 가장 먼저 알려준다. 봄 냄새, 여름 냄새, 가을 냄새 그리고 겨울 냄새. 정확하게 무슨 냄새인지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무심코 일상을 살아가다가 어느 날 집 밖을 나섰을 때, 계절의 냄새는 예고도 없이 시간이 이만치 흘렀음을 통보한다. 그중에서도 겨울 냄새는 특별하다. 냄새들을 좀 더 확실하게 구분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을 때, 특유의 착 가라앉은 듯한 그 냄새는 겨울이 다가왔음을 알린다.
겨울이 왔음을 알아차리는 것과 동시에 항상 드는 생각은 후회다. 베짱이처럼 3 계절을 놀면서 보낸 것도 아니것만 무엇을 했는지 명확하게 짚어낼 수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겨울은 충분히 냉혹하게 느껴진다. 1년 동안 무엇을 했고 남은 것은 무엇인지, 그것들로 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을 지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어느새 미용실 앞이었다. 딸랑- 소리와 함께 문을 열자 원장이 '춥죠?'라며 인사를 건넸다. 토끼의 것으로 보이는 털이 달린 패딩 조끼가 다시금 겨울이 왔음을 실감케 했다.
-머리가 꽤 많이 자랐네요?
-네 이번에는 일이 좀 있어서 한 주 정도 늦게 왔네요.
-어머, 그러게. 3주 정도 됐네 벌써.
-날이 많이 춥죠? 이렇게 추우면 우리도 손님이 없어. 계속 추우면 모르겠는데 이렇게 갑자기 추워지니... 나라도 뒤숭숭해가지고는 에휴, 해결이나 잘 될는지. 뉴스 보기 싫어서 하루 종일 다른 채널만 틀어놓는다니까요?
'위이잉'하는 바리깡 소리에 섞여 미용사의 푸념인지 서비스 정신인지 모를 대화가 오고 갔다. 확실히 요즘 나라가 뒤숭숭하긴 하다. 대통령이 제일 높은 자린 줄만 알았는데 그 위에 또 있고 그 위를 좌지우지하는 이가 또 있을 수 있다니, 정치에 어두운 나로서는 이해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하지만 우왕좌왕하며 돌아다니는 꼴을 보아하니, 그 치들도 나처럼 겨울을 예비하진 못한 것은 마찬가지인 듯하다.
-자, 저쪽으로 가서 앉으세요 샴푸 해드릴게요.
옆머리는 6미리로 짧게 치고 앞머리와 윗머리는 적당하게 치는 것이 몇 해째 고수해오는 나의 머리 형태다. 반곱슬보다 조금 더 곱실거리는 모질 탓에 파마는 할 필요가 없었고, 그렇다고 조금만 놔두면 꼬부라지는 탓에 머리를 기를 수도 없었기에 찾아낸 최적의 머리였다. 사실 별 기술이 필요 없는 머리라서 집 앞 미용실에서도 적당한 시간에 적당한 비용을 지불하면 되었기 때문에 더더욱 이 머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아마 평생 이 헤어스타일을 할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취향이 굳어져 신념으로 바뀌게 된 사례 중 하나가 될 수도 있겠다.
-온도 괜찮으세요?
샤워기의 물이 완전히 머리를 적시기 전에 미용사가 묻는다. '네'하고 짧게 대답하면서 찝찝스럽게 자리한 번민들도 미용사의 손길에 쓸려내려 가 버렸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올해도 완성하지 못한 나의 단편들과, 생존 수단에 대한 것들, 착실하게 사는 주변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과 나에 대한 자괴감 따위가 한데 뭉쳐 만들어진 퀴퀴한 덩어리. 그것이 하얀 샴푸 거품과 뒤섞여 물과 함께 씻겨져 나갔으면-
축축하게 젖은 머리털을 말리면서 미용사가 '내일은 좀 덜 춥대요'라고 말하길래 '아 그래요?'하고 대답했다.
'그래 우리에겐 항상 내일이 있지.'
돌이켜보면 겨울이라고 생각했던 날들은 지나고 보면 항상 봄이었다. 생애 처음으로 큰 시험을 치렀던 수능날, 위장크림을 덕지덕지 바르고 혹한기 훈련을 받았던 일병 시절, 몇 번의 입사와 퇴직을 반복했던 일들까지 힘들다고 생각했던 지난날들의 씨앗이 움트고 자라서 지금의 내가 되었다.
싫든 좋든, 쉽든 어렵든 간에 우리는 항상 선택을 하고 그에 따른 결과지를 받아본다. 올바른 선택만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련만 우리는 항상 불만족스러운 결과지를 받아 들고 겨울이 다가왔음을 느낀다. 그러나 죽음으로 달려가는 삶에서 그 겨울이 차지하는 부분이 얼마나 작은 것인지에 대해, 그리고 사실은 그것이 봄에 가까운 것이라는 깨달았을 때 우리는 얼마나 감사한가.
겨울을 느낄 때, 선택의 임계점에 다다랐음을 알 수 있다.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서 겨울을 코앞에 둔 그날의 특별한 선택이 삶을 다른 어떤 무언가로 바꾸는, 마법 같은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물론 자신이 선택한 것이 옳은 쪽인지 아닌지는 당장 말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옳은 선택을 했다고 생각할 지라도 지독한 한파가 느껴질 수도 있다. 그렇지만 지나고 나면 혹독했던 그날도 봄이었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어쩌면 죽을 때까지 우리는 겨울과 봄, 봄과 겨울을 착각하면서 살아갈지도 모른다. 사람은 시련을 통해 성장하기 때문이다.
위기는 기회라고 했다. 겨울처럼 느껴질 때, 우리는 가을을 위한 선택의 씨를 뿌려야 한다. 그것이 정치든, 개인의 진로선택이든, 오늘 먹을 저녁 메뉴 같은 사소한 것이든 간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