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가 서투른 당신, 혹은 나에게

우리는 평행선을 따라 걷고 있을까?

by starka



어떤 일이든 처음 하는 것은 어렵기 마련이다. 물론 개인차가 존재하겠지만, 재능의 여부를 떠나서 처음 시도하는 것에는 실수와 실패가 따르기 마련이다. 하지만 시간을 들이고 공을 들여도 실수가 줄어들지 않고 여전히 실패를 거듭한다면 방법이 잘못되지는 않았는지, 혹은 개선해야 할 점이 있는지에 대한 전반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처음 하는 '어떤 일'에는 당연히 사랑도 포함된다. 그러나 우리는 사랑과 사람 그 자체에만 포커스를 맞춘 나머지 관계를 이어가는 방식에 대해서는 의외로 무관심한 듯하다. 특히, 연인과의 사랑에서 그러하다. 때문에 꽤나 많은 사람들이 같은 방식으로 사랑에 빠지지만 또 같은 이유로 만남을 이어가지 못하고 좋은 인연을 정리하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발생하고 만다.


왜?


그 이유를 사랑이라는 감정의 주체와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에서 찾아보자. 보편적으로 사랑이라는 감정이 좀 더 나은 방향으로 발전하려면 나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서로에 대해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즉, '연인'이 되려면 나와 상대방이 우선적으로 존재해야 한다. 여기에 우리의 연애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하나 더하자면 '주변 사람'이다.


나와 상대방, 그리고 주변 사람들이 우리의 연애에 있어서 꼭 필요한 재료다. 우리는 이 재료를 섞어서 연인이라는 관계를 형성한다.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주 능숙하게 잘한다. 문제는 관계를 맺는 것까지만 잘한다는 사실이다. 더욱 발전된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원초적인 감정을 좀 더 다듬고 서로에게 맞추는 과정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들 대부분은 각 자의 불타는 열정에 몸을 맡긴 채 삼켜져 버린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불속으로 뛰어드는 부나방처럼 말이다.


'나'의 입장


첫 번째로 우리가 관계를 더 끌고 나가지 못하는 이유는 자기 자신에게 있다. 성경에 '네 눈에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티끌만 본다'는 말씀이 있다. 같은 맥락으로 소크라테스의 '너 자신을 알라'의 의미를 해석할 수 있겠다. 대부분의 우리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 힘들어한다. 아니, 잘못인지도 모르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다고 해야겠다. 많은 사람들이 실수하는 것들 중 대표적인 것을 꼽자면 연애를 '2인 3각'으로 오해하는 것이다.


소꿉친구부터 알고 지내다가 연인이 된 경우를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연인들이 20년 이상 다른 환경에서 자랐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크던 작던 노이즈가 생기기 마련이고, 초반에는 콩깍지가 씌어 기분이 약간 상해도 넘어갔던 일들이 관계가 안정되면서 점점 수면 위로 떠오르게 된다. 이 과정에서 많은 수의 커플들이 이별을 고한다.


'너무 안 맞아', '맞춰보려고 노력했지만 사람은 안 변해', '아직 젊은데 굳이 맞춰가며 연애할 필요는 없잖아?' 등등의 이유로 말이다.


하지만 위의 변명(적어도 나는 변명이라고 생각한다)들은 말 그대로 변명일 뿐이다. 내가 하는 것은 생각 안 하고 상대방을 내 입맛에 맞춰 변화시키려고 하니까 맞춰지지 않을 수밖에.


예를 들어 A와 B가 있다고 하자(성별은 당신의 선택에 맡기겠다).


A는 B가 일주일에 두세 번, 친구들을 만나 술을 마시는 것이 탐탁지 않다. 연애 초기에는 '인간관계가 좋아서' 또는 '사교성이 좋네'로 넘어갔던 것이 이제는 그냥 한심해 보이기까지 한다. 취업도 힘들고 바쁘게 살아도 모자랄 판에 친구들을 만나서 놀다니. 차라리 그럴 시간에 나를 만나면 모를까. 그리고 친구들을 만나면 연락이 늦는 것도 싫다. B에게 여러 번 말했지만 고쳐지지 않았다. 그런 B에게 점점 지친 A는 이별을 통보했다.


B는 언젠가부터 A의 간섭이 피곤하다. 사람들을 만나 술을 먹어도 한 번도 주정 부린 적이 없는데도 A는 술 좀 그만 마시고 그 시간에 나를 만나던가 공부를 하라고 한다. 하지만 B는 친구뿐만 아니라 학교 선배, 동아리 사람들, 대외활동을 통해 만난 사람들을 통해 더 많은 정보를 얻고 도움을 받는다. 그런 도움을 A와 공유도 한다. 또 B는 취업도 취업이지만 정말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찾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부모님께 손을 벌리며 사는 것도 아니고 성인이 된 후부터 아르바이트를 통해 생활비를 벌고 있다. A의 지나친 간섭에 지친 B는 A의 이별 통보를 덤덤하게, 약간은 해방감을 느끼며 받아들였다.


위의 사례에서 이별의 잘못은 누구에게 있을까? A일까? B일까?


당신이 A의 입장에 공감했으면 B가 잘못했다고 생각할 것이고 B의 입장에 공감한다면 A에게 책임을 전가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 '각자의 입장'이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A의 입장에서 생각하든 B의 입장에서 생각하든 간에 우리는 '나'의 입장에서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한다. 상대방의 상황을 이해하는데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는 것이 아이러니하지 않는가?


A와 B는 이별 후 서로에 대해 '맞춰보려고 노력했지만 맞지 않았다'라고 할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입장에서 생각해보지 않은 채 자기중심적으로 싫은 점을 고치라고 강요했기 때문이다. 이런 유형의 사람들은 연애를 '2인 3각 달리기'처럼 하려고 한다. 삶이라는 긴 레이스의 출발선에서 내 다리에 상대방의 다리를 꽁꽁 묶은 뒤 '우리는 하나!'라고 외치며 발을 맞추라고 강요하는 것이다. 내 발걸음에 맞춰야만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연애에서 상대방이 따라붙지 못한다고 화를 낸다는 것은 황당한 일이다. 물론 템포가 맞는 사람을 만난다면 2인 3각 연애도 꽤나 오랜 기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연애의 본질은 내 발에 상대방의 발을 묶는 것이 아니다. 서로 같은 방향을 보며 걸어가는 것은 맞되, 서로가 서로의 길에 응원과 존중을 보내야 한다. 이러한 관계는 '신뢰'를 통해 형성되는 것이지 서로의 발을 묶는 '끈' 같은 욕심이 아니다.


상대방


앞에서 '나'를 중심으로 상대를 맞추려고 강요하지 말자고 이야기했다. 그렇지만 연애는 나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상대방 역시 중요하다. '나' 중심에서 벗어났으면 상대방에게 어필하는 것을 시도해야 한다.


'역린'이라는 것이 있다. 용의 턱 밑에 거꾸로 난 비늘을 뜻하는데, 용을 길들인 사람이라도 이 역린을 건드리면 반드시 죽인다고 한다. 사람도 누구에게나 역린이 존재하다. 상대방이 '이것만은 안 했으면'하는 행동이 그것이다. 인내심이 강하고 유순한 사람들은 역린을 건드려도 대부분 2~3번은 넘어가지만, 그 이상이 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이별을 고한다.


무섭지 않은가? '사랑해'라고 매일 같이 이야기하며 지냈던 사람이 말 하나, 행동 하나 잘못하면 그대로 돌아선다니. 하지만 괜찮다. 역린이 있어도 건드리지만 않는다면 상관없으니까 말이다.


재밌는 사실은 우리는 한 번쯤은 상대방의 역린을 건드려 보고 나서야 '아...'하는 나직한 탄성을 흘린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용의 역린은 목 밑에 혼자만 거꾸로 나있으니까 '저게 역린이구나. 건드리지 말아야지' 하는데 사람은 말을 해주지 않으면 모르기 때문이다. 눈에 보이지 않으니 조심할래도 조심할 수가 없을 밖에.


그렇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나의 역린을 알리는 작업은 굉장히 중요하다. 간혹 자신의 역린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 그럴수록 서로 간의 대화를 많이 해야 한다. 20년 이상 다른 환경에서 자라온 사람들이 운명처럼 전부가 맞기를 바라는 것만큼 바보 같은 것도 없다. 심도 깊은 대화를 통해 최대한 많은 정보를 주고받아야 한다. 특히 연애 초기에 이런 대화를 많이 해야 서로의 관계에 있어서 조율이 수월하다. 서로에게 익숙해지기 전에 말이다.


대화를 통해 나의 역린을 알렸으면 이제는 상대방에게 달려있다. 상대방이 알아듣고 적절한 액션을 취해야지 우리 관계가 더 발전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 세상에서 나 혼자서만 잘해서 되는 일은 거의 없다. 연애도 그중에 하나다.



주변 인물들


나와 상대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주변 인물들이다. 어떤 특별한 상황에서는 주변 인물들이 종종 연애 당사자보다 더 큰 역할을 차지하기도 한다. 결혼이나 결혼 적령기의 연애, 그리고 결혼할 것만 같은 상황에서 말이다. 주변 인물들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1. 가족

2. 친구(선후배 포함)

3. 사촌


이들 주변 사람들이 크게 영향력을 발휘하는 상황은 다음과 같다.


1. 연애 상대와 다툰 것에 대해 상담을 빙자한 험담을 늘어놓을 때

2. 연애 상대에 대한 확신 없음을 고백할 때

3. 결혼하고자 하는 마음을 전할 때


3번은 차치하고 나서라도 1번과 2번은 다분히 연애 당사자가 주변 사람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바보 같은 일이다. 1번의 상황을 살펴보자. 사랑하는 사람과 다툰 상황이다. 기분이 울적한데 마침 친구들과 선약이 있었다. 친구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하다 보니 기분이 한결 가벼워진다. 그러자 꾹꾹 눌러 담았던 감정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한다. 때마침 친구가 묻는다. "요즘 어때?"


이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옳타쿠나!' 하며 남자 친구/여자 친구와 싸운 일화를 들려주기 시작한다. 잠시 위의 예를 빌려보자. A와 B의 이야기를 들은 친구들의 반응은 두 가지로 나뉜다.


1. 그 사람은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2. 너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연인과의 관계에서 연락/공감/헌신 등을 중시하는 사람들은 1번의 대답을 할 것이다. 반대로 독립성/주체성/자기계발 등을 우선시하는 사람들은 2번의 대답을 할 것이다. 재밌는 것은 주변 사람들은 당신의 상황을 자신들의 관점에서 분석하고 이해하여 당신을 설득한다는 것이다. 더 재밌는 것은 우리들 대부분은 그러한 설득에 넘어가서는 연인에게 가서 따진다는 사실이다. 주변 사람들이 쥐어준 차트 더미를 한 아름 안고서 말이다.


앞서 우리는 '나'와 '상대방'의 이야기를 하며 오로지 '나'의 입장에 서서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하기 때문에 관계가 틀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를 살펴보니 어떠한가. 이번에는 '나'의 일을 주변 사람들이라는 '상대방'의 입장에서 살펴보고 있지 않은가?



실패를 두려워하는 세태


우리는 관계를 이루는 세 가지 요소에 대해 살펴봤다. 결론을 짓자면 "연인과의 관계에서는 '상대방 중심'으로, 주변 사람들과 나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때에는 '나'를 중심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이 같은 사실을 항상 반대로 해서 관계를 망치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자면 아마도 우리는 이전의 세대들보다 실패를 더욱 두려워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요즘 각광받고 있는 기술이 빅데이터다. 특히 빅데이터 기반의 소비자 성향 파악 및 선호 제품 개발은 기업의 크나큰 화두다. 수요에 의해 공급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요를 미리 예측해서 공급을 하는 방식이니, 기존의 경제상식을 뒤엎는 혁신적인 방법이 아닌가?


하지만 넷플릭스, 왓챠, 각종 맛집 어플 등등 빅데이터 기반 플랫폼의 성공과 성장세를 보고 있자면 내심 씁쓸하다. 사람이라는 동물이 어느 새인가 단순해졌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한 사람과 연애를 해보면 사람이라는 동물이 얼마나 복잡하고 종잡을 수 없는 존재인가에 대해 깨닫고는 한다. 작은 것에 기뻐하고 작은 것에 실망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복잡한 것이 가끔 저주스러울 때도 있지만 축복적인 측면이 더 크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요즘 사람들은 점점 단순하게 변해간다. 잡스가 말한 '심플'이 그런 의미가 아니었건만 우리는 점차 '내 생각'을 잃어간다.


맛집 추천, 영화 추천, 데이트 코스 추천 등 각종 추천 검색어만 봐도 알 수 있다. 인터넷을 켜도 원하는 검색어를 찾기보다는 실시간 검색어, 인기 검색어를 먼저 누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다 못해 취미도 추천받는 세상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주체성을 잃어버리기 시작했을까. 나는 사람들이 실패를 지나치게 두려워한 나머지 고민하기보다는 단순히 따라가는 삶을 택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밀레니얼 세대는 물질적으로 기성세대보다 훨씬 더 풍족한 사회에서 태어나고 자랐기 때문에 실패, 실수라는 단어와는 더욱 거리가 멀다. 그러다 보니 영화 한 편, 식사 한 끼도 평점을 보고 선택해 실수를 줄이는 안락함을 쫓게 된 것 같다.


사랑도 다르지 않다. 한 번의 연애라도 처절하게 경험해본 사람만이 성숙하다. 이별도 마찬가지다. 취향 존중의 문제가 아니라 정말로 그러하다. 그러나 요즘 우리는 너무도 실패를 두려워한 나머지 연애도 순탄하게 하고 싶어 하는 것 같다.


초등학교 1학년 때 윗집 사는 친구가 내 앞 자전거를 타고 등장했다. 새로 산 자전거도 아니었건만 녀석은 우쭐해하며 내가 알아봐 주길 바라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녀석의 자전거에는 보조바퀴가 없었다. 닳고 닳은 보조바퀴를 떼어버리고 두 발 자전거가 된 것이다!


그날로 나도 보조바퀴를 떼겠다며 해가 질 때까지 자전거를 연습했다. 언덕을 내려가며 넘어지고 까지고 하며 무릎과 팔꿈치가 반창고 범벅이 되었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그렇게 나도 보조바퀴를 떼고 당당히 두발자전거를 타게 됐다.


얼마 살지 않은 인생이지만 삶 역시 같은 맥락이 아닐까 한다. 보조 바퀴를 단 채로는 평생 두발자전거의 속도와 재미를 느낄 수 없다. 무릎이 까지고 팔꿈치가 아작이 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결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실수가 두려운 세상이라는 것은 인정한다. 주변의 시선과 손가락질 때문에 상처 입는 것이 너무나도 싫은 것 역시 나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 아파하고 나아가자고 이야기하고 싶다. 그것이 영화를 선택하는 일이든, 식사를 선택하는 일이든, 사랑이든 인생이든 간에 말이다. 단순하지 않고 복잡한 인간이 되어 컴퓨터 따위가 예측할 수 없는 인간이 되었으면 한다.


실수를 거듭하다 보면 언젠가 보조바퀴를 뗄 날이 올 것이다. 그 날에 우리는 주변인들에게 보란 듯이 척! 하고 자전거를 끌고 나갈 것이다. 무릎과 팔꿈치의 흉터는 생각도 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두 손을 놓고 타는 것을 보여줄지도.


우리 모두의 앞길을 응원한다.

매거진의 이전글정치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