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한 청춘, 나와 그대들을 위해

우리가 가진 것은 과연 푸르름일까

by starka

"이번 역은 봉은사, 봉은사 역입니다. 내릴 문은..."


익숙한 안내 목소리에 눈이 번쩍 떠졌다. 잠깐 기대에 눈을 붙인다는 것이 깜빡 졸았던 모양이다. '취이익-' 소리가 나며 문이 열리자 한 뭉태기의 사람들이 우르르 내렸다. 나도 그들 중 하나였다.


'6번 출구였나'


기억력이 가물가물해서 문자로 보내준 약도를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면접 일정 안내]

일시: 4월 ㅇㅇ일 3시

장소: ㅇㅇ빌딩 10층

면접 10분 전에 도착해 주시기 바라며 아래에 약도를 첨부합니다.

'확인'이라고

회신 부탁드립니다.


1개월짜리 사무직 알바를 구하는데 참 가관이다 싶었지만, 입장 바꿔 생각하면 면접이 필요하긴 하다 싶어 꾸역꾸역 옷을 챙겨 입고 나왔던 터였다. 6번 출구로 나와 직선도로를 따라 시선을 쭉 뻗으니 ㅇㅇ빌딩인 것 같은 건물이 보였다.


'꽤 걸어야겠다'라고 생각하며 시간을 보니 벌써 2시 45분이었다. 잰걸음으로 발을 옮기며 주변을 훑어보니 다양한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넥타이를 목 끝까지 바짝 조인채 어디론가 바삐 이동하는 슈트 차림의 직장인들, 포르셰의 바퀴를 갈아 끼우는 자동차 정비소의 직원, 신호에 멈춰 선 차에 탄 아주머니 등등 나를 빼고는 모두가 바쁘게 살고 있는 것 같았다. 나쁜 길은커녕 크게 죄지으며 살지 않았는데 괜스레 얼굴이 화끈해져서는 발을 더 빠르게 움직였다.


가까스로 늦지 않게 회사 입구에 도착해 호출 버튼을 눌렀다. 잠시 뒤 젊은 여직원이 나오더니 '미팅룸'이라고 쓰인 방으로 안내했다.


'5분만 기다려주세요'라는 말과 함께 사라진 여직원 덕분에 사각의 유리방 안에 나 혼자 남겨졌다. 단순히 사무 보조, 자료입력 아르바이트를 구할 뿐이었다. 몇 개월씩 일할 것도 아니고 한 달짜리 일을 원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1개월 근무를 원하는 회사를 찾아 지원했을 뿐이었다. 서로의 니즈가 맞았기 때문에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이지만 나를 둘러싼 유리들은 나에게 '을'의 역할을 강요하는 것만 같았다.


느낌상으로 10분 정도 지났을 때, 아까 그 여직원이 이쪽으로 오라며 나를 다른 방으로 안내했다. 방에는 40대 중반처럼 보이는 중년의 남성이 앉아 있었는데, 책상의 명패에 적힌 'CEO'를 보니 대표인 듯했다. 그는 인사와 함께 내게 착석을 권하고는 내 이력서를 훑어보기 시작했다.


"음.. 여기 보니까 2015년 이후로는 뭐가 없네요?"


"아 네."


"이때부터 지금까지의 활동에 대해서 설명해줄 수 있나요?"


순간 기분이 이상했다. 면접은 형식이고 업무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함께 반갑다는 악수를 나눌 줄 알았던 나는 갑작스러운 압박에 숨이 턱 막히면서도 언짢았다. 그래도 사용자 입장에서는 궁금할 수도 있겠다 싶어서 힘이 닿는 데까지 설명을 했다. 어떤 일을 했고, 어떤 회사를 다녔는지, 왜 그만두었는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하지만 우리 어머니조차 이해하지 못한 나의 꿈, 소망, 염원에 의한 결정을 초면인 40대 중반의 남자가 이해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음.."


한 차례 신음을 뱉은 그는 '우리 회사는 1년에 알바를 500명 정도 써요'라는 말과 함께 그중에 책임감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아르바이트하는 사람들은 회사에 대해 불만이 많지만 저희도 아르바이트하는 사람들 때문에 고민이 많거든요. 1개월 간 책임감 있게 할 수 있다는 PR을 좀 해보시겠어요?"


15분 전에 나를 가두고 있던 유리방이 '내가 말했지? 넌 을이야' 하고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다. 그래도 일단은 돈이 급했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책임감을 어필했다.


"음.."


버릇처럼 또 한 번 뱉은 그는


"그럼 지금까지 일했던 곳들에게 확인을 좀 할 수 있게, 레퍼런스 체크를 할 수 있는 연락처를 줄 수 있어요?"


라고 말했다.


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이번에도 '알겠다'라고 대답했다.


이후 몇 분간 업무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나에 대한 그의 검토가 거의 끝나갈 무렵이었다. 불현듯 생각이 난 것처럼 그가 내게 물었다.


"혹시 급여는 어떻게 알고 오셨어요?"


"아 시급 7800원으로 알고 왔는데요."


"아 잘못 알고 계세요. 6500원입니다."


"공고에는 분명 7800원이라고 적혀 있는데요?"


"직원이 실수를 한 모양입니다."


나는 나의 기분을 모두 담아 그에게 닿기를 기원하면서 '아 네'라고 대답했다. 표정을 보니 전혀 와 닿은 얼굴이 아니다. 그렇게 면접 아닌 면접을 마친 나는 '감사합니다'라는 되지도 않는 말을 남긴 채 건물에서 빠져나왔다.


올 때와는 다르게 느릿느릿 걸으며 주변을 훑었다. 여전히 나 빼고 주위 사람들은 어딘가 바빠 보이는 얼굴이었다.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과 분노한 감정이 뒤섞여 오른쪽 머리를 아프게 했다.


버나드 쇼는 '젊음은 젊은이에게 주기에는 너무 아깝다'라고 했지만 나는 되려 내가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냐고 따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는 단지 내게 주어진 시간을, 24시간을 나를 위해 쓰고 싶었을 뿐이다. 하루키처럼 작은 카페를 열어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글을 쓰고 싶었다. 작은 카페가 아니라도 좋다. 단지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즐거움 속에 살고 싶었을 뿐이다. 눈칫밥을 먹이며 쥐꼬리 만한 돈을 쥐어주는 고용주에게서 벗어나고 싶었을 뿐이다. 내 한 몸 건사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을 정도의 돈만을 바랄 뿐이었다. 이러한 바람들을 욕심 없고 소소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랬기 때문에 '좋은 것만 하고 살 수는 없다'며 꾸지람 아닌 꾸지람을 하는 삼촌에게 반감을 품었던 것이었다. 어머니에게 대든 것이었다. 또 하고 싶은 것에 도전하는 친구들에게 힘내라고 말해주었던 것이다.


어젯밤 친한 친구와 만나고 헤어지는 길에 '조급하다'는 말을 들었다. 항상 여유가 넘치고 낙천적인 친구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서 조금 놀랬다. 그러면서 '28살 동안 이뤄놓은 것이 없는 것 같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 말에 속으로 나 역시 어느 정도는 이해했지만 그렇다고 전부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인간이 살면서 꼭 유형, 또는 무형의 무엇인가를 남겨야만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살아있음, 존재 자체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그 사실을 망각한 채 사회에 속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말하는 기준에 자신을 비교하면 끊임없이 고통받을 뿐이다.


요즘 내 또래, 20대들은 준비가 지겹다고들 말한다. 각 종 자격증 준비, 영어 시험 준비, 공무원 시험 준비 등등 셀 수 없는 취업 준비에 넌더리가 난다고 한다. 나 역시 그렇다. '준비 인생' 따위 그만 살고 싶다. 하지만 그렇다고 주저앉아 울고만 있을 수는 없다. 절망의 늪에 빠져도 한 걸음씩 나아가다 보면 단단한 흙을 밟을 수 있을 것이다. 합리화일지도 모르지만 '대기만성'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이 글은 나에게 있어서 진흙탕 속 한 걸음이다. 오늘 하루 우울의 수렁에 빠진 나를 구출하는 작업인 동시에 나와 같은, 혹은 나보다는 조금 나은 처지의 동업자들을 위로하기 위함이다. 나를 비롯한 20대는 유례없는 학력 인플레와 불안한 경기에서 살고 있다. 나는 우리가 경쟁자가 아닌 동료이자 동업자라고 생각한다. 심심한 이 글에서 동업자들이 자그마한 위로라도 받고 반 걸음이라도 내딛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젊음은 젊은이에게 주기에는 너무 아깝다'는 쇼의 말이 내 삶을 돌아보면 맞는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어떡하겠는가? 쇼는 죽었고, 나는 아직 젊다. 그리고 젊음은 좋은 것이다.


지금의 나는 그것이면 충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