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를 키운다는 것

by starka

어렸을 때부터 동물을 좋아했다. 강아지를 키우는 것이 가장 큰 소원이었는데,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엄마가 싫어했기 때문이다. 조르기를 몇십몇 백 차례 시도했으나 전부 허사였다. 그러다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애완동물에 대한 로망은 점차 뒤편으로 밀려났다. 사춘기를 함께 겪는 친구들과, 좋아하는 여자아이의 샴푸 냄새, 시험이 끝나면 삼삼오오 놀러 가곤 했던 롯데월드가 그 자리를 대신했기 때문이다. 그 후로도 수능을 비롯해 대학 생활, 군대 같은 굵직굵직한 주제들이 삶의 대부분을 차지하느라 애완동물은 점점 더 입지가 좁아지기만 했다. 다시 그 로망이 환하게 빛났을 때는 애완동물은 반려동물이 되어있었고, 나는 스물네 살이 되었다.


반려동물이라는, 로망을 빙자한 이 욕망이 다시 불이 붙은 이유는 나도 정확히 설명할 수 없다. 그때의 나는 막막한 미래에 떠밀려 세무사 시험을 준비하던 고시생이었고 어느 날 세법을 풀다가 갑자기 고양이를 키우고 싶어 졌을 뿐이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보니, 원래 모든 일들은 갑자기 결정되는 법이다. 그 외의 구구절절한 것은 갖다 붙인 이유일 뿐이다.


어쨌든 저녁을 먹으면서 나는 엄마한테 ‘고양이를 키워보는 게 어때?’라고 물었고, 그날따라 엄마는 십여 년간 대답한 ‘안돼!’ 대신 ‘강아지가 아니라 고양이?’라는 물음으로 대답을 했다. 엄마의 반응에 용기를 얻은 나는 강아지 대신 고양이를 키우려는 이유에 대해 조목조목 이야기했다.


-안 씻겨도 된다.

-똥오줌을 알아서 가린다.

-산책 안 시켜도 된다.

-혼자 놔둬도 괜찮다.

-장모종이 아닌 단모종은 털이 덜 빠진다.

-예방접종비가 강아지보다 저렴하다.

-조용하다.



나는 최대한 돈이 많이 안 들고 손이 안 간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 설득했다. 엄마는 잠시간 아무 말이 없다가 ‘그러자’라고 말했다. 그 후로는 일사천리였다. 캐터리보다 가정 분양이 좋다는 말을 듣고는 마침 분양 중인 블로거를 찾아냈다. 간단한 통화 후 다음날 바로 방문 약속을 잡았다. 옆에서 통화를 듣던 할머니도 궁금하셨는지 같이 가겠다고 하셨다.


의정부 근처 분양 집에 도착하니 40대 아주머니가 우리를 반겼다. 주인아주머니의 안내로 집안에 들어간 우리는 순간 멈칫했다. 어림잡아 15마리는 되는 고양이들이 자신들의 영역에 찾아온 낯선이 들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쳐다보았기 때문이다.


“얘는 ㅇㅇ구요, 얘는 ㅁㅁ…”


신이 나서 고양이들을 소개하는 아주머니는 결혼은 했지만 자녀는 없다고 했다. 이토록 많은 고양이를 키우는 이유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지는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느껴지는 아주머니의 쓸쓸한 목소리에서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아이는 예약을 하셨고, 이 아이들은 아직이에요.”


소파 밑에는 꼬물거리는 네 마리의 새끼 고양이들이 있었다. 할머니와 나는 신기하게도 동시에 눈처럼 새하얀 고양이를 가리켰다. 우리는 분양비를 미리 건네고, 2개월 뒤 다시 찾아오기로 했다. 모유를 더 먹어야 면역력이 강해 더 건강하다는 아주머니의 권고 때문이었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고 현관을 나서는데 문득 시선이 느껴져 뒤를 돌아보니 하얀 새끼 고양이가 종종걸음으로 쫓아오는 것이 보였다. 할머니는 집으로 가는 내내 거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고, 집에 돌아와서도 한동안 계속 말씀하셨다.


“고양이가 영물은 영물이라니깐!”


두 달 뒤 하양이는 크리스마스이브에 ‘솜이’라는 새 이름을 얻어 우리 집으로 이사를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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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이가 우리 집에 오고 나서 가장 곤란을 겪은 것은 사료였다. 까다로운 입맛의 고양이들에게 맞는 사료는 좀처럼 찾기 어렵다. 솜이 역시 영양성분을 꼼꼼히 체크한 사료를 줘봤자 입맛에 맞지 않으면 몇 번 킁킁거리고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 그렇게 몇 포대의 사료를 먹지도 않은 채 쌓아두다, 인터넷 카페를 통해 ‘소분’을 통해 약간의 사료를 나눠주는 것과 샘플 사료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결국 6개의 샘플사료를 먹여가며 가장 좋아하는 사료를 찾아냈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영양과 혹시 모를 부작용 때문에 한 가지 사료만 오랫동안 먹이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는 ‘사료는 집사들의 영원한 숙제’라는 애묘인들의 말을 겸허히 받아들이게 되었다.


주기적으로 사료를 몇 번 바꿔주는 동안 솜이는 ‘언제 이렇게 컸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자라 있었다. 사람이나 고양이나 어린 시절은 훅- 하고 지나가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아기 시절 사진을 많이 찍어놓지 못한 것이 못내 후회되었다. 그렇지만 듬직하게 커서 우다다 하고 돌아다니는 녀석을 보면 나도 모르게 비져 나오는 웃음을 발견하곤 했다.


그렇지만 솜이를 키우는 동안 마냥 즐거운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어느덧 따듯한 봄바람과 함께 솜이가 우리 집에 온 지 6개월째 되던 사월, 솜이가 중성화 수술을 하게 된 것이다.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들에게 있어 중성화란 ‘정당화된 폭력’이다. 고양이는 발정기가 되면 남자아이는 자신의 영역에 ‘오줌 스프레이’를 발사한다. 여자 아이는 ‘콜링’이라는 행위를 하는데, 이때 울음소리가 갓난아이의 그것을 연상시켜 듣기가 매우 괴롭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과 함께 사는 고양이들은 중성화를 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중성화가 오로지 사람의 편의만을 위해서 하는 것은 아니다. 고양이들은 발정기 때 굉장한 고통을 느끼기 때문이다. 여자 아이는 사람이 느끼는 생리통에 약 10~14배 정도의 통증을 느끼고, 남자아이는 한 번 발정이 오면 중성화 전까지 발정상태를 유지한다. 365일 24시간 발기된 상태가 지속되는 것이다. 게다가 남자아이의 생식기는 수십 개의 손톱과 같은 재질의 갈고리가 역방향으로 형성된 모양을 하고 있다. 그래서 성교 시 여자 아이는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고통을 느끼게 된다.


그러니 고양이들의 삶의 질을 위해서도 중성화는 필요하다. 실제로 중성화 후 고양이의 수명이 평균 3~4년 늘어나는 것을 보면 이러한 고통에서 해방됐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솜이는 집 앞 동물병원에서 ‘정당화된 폭력’을 당했다. 수술 날 안쓰러운 마음에 이동장 대신 담요로 둘둘 말아 내 품에 안고 갔다. 알싸한 알코올 냄새가 불안한 마음을 더욱 자극했다. 솜이는 영역을 벗어나 낯선 곳에 있는 것이 싫은지 계속 야-옹 야-옹 거렸다. 잠시 뒤 나온 흰머리가 듬성듬성 난 수의사는 아무렇지도 않게 솜이의 등 거죽을 붙잡고는 마취주사를 푹 쑤셔 넣었다.


“이따 연락 줄 테니 데리러 오세요.”


자식을 수술대에 올려놓고 돌아서는 부모의 마음이 이러할까. 하얗고 조그마한 녀석의 눈이 마취주사에 젖어드는 것을 보니 도무지 발이 떨어지질 않았다. 그런 손님이 내가 처음이 아닌지 수의사는 ‘걱정 말고 가 계세요’라는 무심한 말을 건넸다. 마지못해 병원 문을 나서면서 괜스레 수의사가 원망스러웠다. 내 손으로 수술을 부탁해 놓고는 말이다. 집에 돌아와 오만가지 상상을 하다 보니 어느새 ‘수술이 끝났습니다’는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다. 한 달음에 달려갔더니 녀석은 아직 마취가 덜 풀려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있었다. 올 때처럼 품에 안고 가고 싶었지만 수술부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동장에 넣어 황급히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데려와서도 솜이는 한동안 죽은 듯 가만히 있었다. 두 시간쯤 지났을까, 마취가 풀렸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어디론가 가려고 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비틀거리다 픽 주저앉고 말았다. 안타까운 마음에 좋아하는 통조림과 물을 옆에 놔주었지만, 물만 조금 먹고는 입만만 다셨다. 그러더니 앉은 채로 조그만 웅덩이를 만드는 것이 아닌가. 화장실까지 가기는커녕 일어날 힘조차 없어 제자리에서 오줌을 싸는 솜이를 보면서 나는 마음이 아픈 것을 넘어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생명에게 이렇듯 오만해도 되는 것일까. 아무리 발정기가 괴롭고 고통스럽다고 해도 인간이 신체의 일부를 앗아가는 것이 옳은 일일까. 반려동물이란 결국 인간의 이기적인 욕심이 낳은 어떤 고약한 무언가가 아닐까.


그러나 사람이라는 동물이 늘 그렇듯 나 역시 간사했다. 이틀이 지나고 점점 괜찮아지는 솜이를 보면서 안도의 마음과 함께 복잡한 고민거리는 망각의 강 건너편으로 떠나는 배편에 실어버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득문득 그때의 기억이 나는 것을 보면 ‘중성화의 충격’은 생각보다 컸는지 강을 다 건너지 못하고 가라앉아버린 듯하다.


시간은 항상 언제 지나있는지 모를 정도로 돌아보면 휙휙 가있다. 엄마 젖을 먹던 애를 데려온 것이 엊그제 같은데, 사람 나이로 따지면 이제 솜이는 나보다 나이가 많다. ‘그래도 아직 하는 짓을 보면 캣 초등학생인데…’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꾸벅꾸벅 졸고 있는 모습을 보면 언젠가 다가올 이별의 순간을 미리 짐작해 뭉클해지기도 한다. 가깝고도 먼 훗날 하늘에서 나를 보면 솜이는 나에게 뭐라고 할까? 땅콩을 도로 내놓으라고 할까?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방문 밖에서 야-옹 하는 소리가 들린다. 반응을 하지 않았더니 발톱으로 문을 박박 긁고 있다. 간식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저에 대한 추억과 함께 ‘몹쓸 짓’을 한 것에 대해 자책에 빠져 있는데 말이다. 현실에 충실하라는 뜻인가 보다. 문득 어디서 읽은 ‘고양이를 혼자 놔둬도 되는 이유’가 기억이 난다. 고양이들은 현재, 그 순간의 시간에 살기 때문에 지루함을 모르고 불만도 없다는 것이다. 한낱 집사 주제에 고양님의 생각을 어찌 알겠느냐마는 지금은 나도 현실에 살아야겠다. 이 글을 업로드하고 통조림을 까러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