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문란한 여자

by starka

0.


그러니까, 내가 사라를 만난 것은 1시간 전의 일이다.


"진짜 오랜만이다 스시-"


간장에 와사비는 풀어놓지 않은 채, 연어 꼬리를 찍어먹는 여자는 도무지 들은 바와는 정반대다.


"너도 스시 좋아한다며 왜 안 먹어? 맛있어"


"어? 먹어야지 천천히 먹으려고"


관찰을 들킨 사람은 99%가 의문문으로 대꾸한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으며 초밥 하나를 집었다.

광어회인가.


생선 꼬리를 와사비가 잔뜩 풀린 간장에 찍으며 든 생각은 '흰 살 생선부터 먹어야 하는데'

와 몇 달 전 친구들과의 대화였다.


1.


"결혼을 왜 해야 되냐?"


양이 툭 던진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은 무의미한 논쟁의 씨앗이 나와 사라의 만남을

성사시켰다.(최근 연구결과에 따르면 닭이 먼저라고 한다)


"결혼은 해야지"


나의 반사적인 대답에 양이 답답하다는 듯이 되물었다.


"그러니까 왜 해야 되냐고"


살다 보면 스스로 깨우친 것보다는 모방에서 오는 배움이 더 많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을 때가 있다.

걸음마를 떼고 들어간 유치원에서부터 우리는 모방을 통해 사회적 약속들을 받아들인다.

물건 제자리에 놓기, 화장실 다녀온 뒤엔 손 씻기, 어른을 보면 인사하기 등 그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조건들을 하나 둘 갖춘다. 애초에 정해놓은 약속 따위에 스스로의 성찰이 있을 리는 만무하다.


그렇다면 결혼은?


결혼은 어떨까.


“난 운동하는 여자가 좋아”


땀 흘리는 모습은 남녀 구분 없이 섹시하다는 생각을 하며 말했다.


“그리고 힙합을 좋아하고 조던 신는 여자. 아, 그리고 픽시를 타야 돼”


주위를 둘러보면(굳이 주위까지 갈 것 없이 당장 부모를 보더라도) 자신의 이상형과 결혼하는 사람은 없다. 플라톤이 말하는 이데아처럼 본질이 있고 그림자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내 마음속의 ‘데이지 공주’는 그림자만 존재한다. 오드리 헵번의 큰 눈과 신민아의 엉덩이, 송혜교의 사랑스러움 따위를 접할 때마다 상상 속의 데이지 공주는 재조합된다. 그래서 실제에서 데이지 공주의 잔향을 쫓다 보면 어느새 허허벌판에 쓸쓸한 낙엽 같은 ‘나’를 마주하게 된다.


“김사라네”


금이 알았다는 듯이 말했다.


“아 맞네! 김사라네 진짜”


양이 받아쳤다.


“아니 걔는…”


“야 딱이다. 너 와이프 감 김사라네. 얘 소개해줘”


그러니까 김사라에 대해 알아보려면 다시 몇 개월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환상의 세계로 데려가는 것만 같았다.

성가신 매미소리와 함께 살인적인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여름, 석간 신문사에서 인턴으로 일했다. 오후에 신문이 나와야 하기 때문에 새벽 6시까지 출근해야 했다. 새벽 공기를 마시며 출근하는 것이 상쾌할 것이라고 오해하기 십상이지만, 아침잠이 많은 나로서는 참 고된 일이었다. 새벽의 거리는 여름 냄새와 형광색 옷을 입은 환경 미화원 그리고 낮에는 볼 수 없던 쓰레기 더미들이 전부였다. 집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12분 정도 걸어야 했고, 매일 아침 더운 공기와 섞인 쓰레기 냄새를 맡으며 피곤한 하루를 시작했다. 유일한 낙은 가장 좋아하는 버스 맨 앞자리에 앉아 양화대교에서 보이는 한강을 내려다보는 것이었다. 동이 트기 전 하늘에 뜬 달과 거뭇한 한강을 가로지를 때면 묘한 기분이 드는 것이 버스가 환상의 세계로 데려가는 것만 같았다. 하지만 매일 예외 없이 내리는 곳은 생각보다 사람이 많은 합정역이었다.


그렇게 몇 달을 다녔을까, 달라진 것이라고는 짧아진 해와 쌀쌀해진 날씨뿐, 여느 때와 다름없이 졸린 눈을 부비며 힘겹게 역에 내리던 차에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엉덩이였다.


‘복숭아’라고 표현하는 것이 적당할 것 같다. 정말로 탐스러울 정도로 알이 꽉 차게 익은 복숭아 같은 엉덩이였다. 종족 번식이라는 원초적 욕구를 강렬하게 자극하는 그런 엉덩이였다. 그 여자애는 타인의 시선에 의한 복숭아가 얼마나 탐스러운가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 초겨울 날씨에도 불구하고 딱 달라붙는 레깅스 차림이었다. 윗옷은 캐나다인들조차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거위털 파카를 입고 있었다. 달랑 천 하나로 하체의 자태가 얼마나 퇴폐적이면서도 매혹적인지 나를 비롯한 중년들, 할아버지들까지도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나 그러한 호사는 버스정류장까지 만 이었다. 아쉬운 시선을 거두고 나는 어둑한 형광등이 비추는 지하철 4번 출구로, ‘복숭아’는 출구를 끼고 왼쪽으로 돌아 김밥천국이 있는 골목으로 사라졌다.


‘복숭아’가 그 날 아침, 오랜만에 멍한 정신상태를 상쾌하게 일깨워준 것은 틀림없지만 일회성으로 끝날 이벤트와도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기에 다시금 무료한 일상으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