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발이었다.
2.
"이것 좀 해주시게."
조선 시대 사극에서나 나올 법한 말투를 쓰는 이 선배는 나와 같은 고등학교를 나왔다. 성식 선배는 내 고등학교 선배이자, 직장 선배인 셈이다. 나보다 10살이나 많은 이 선배는 후배들에게 권위의식은커녕 단 한 차례도 경어를 쓰지 않은 적이 없었다. 말뿐만이 아니었다. 성식 선배는 항상 궂은일을 도맡아하는 사람이었다. 식당에서 물을 따르거나 수저를 놓는 일부터 시작해서 무언가를 분배하는 일, 리스트를 작성하는 일 등 막내가 할 법한 것들을 나서서 했다. 혹시라도 본인이 못하는 날에는 그 일을 대신 해준 후배에게(조직문화상 암묵적으로 후배가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진심으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그 밖에 업무적인 부탁을 할 때에도 항상 인사를 잊지 않았다. 지금처럼.
"오 땡큐."
석간신문은 오전 업무가 전부라고 할 정도로 점심시간 이전이 가장 분주하다. 각 부서들 사이를 뛰어다니며 수정을 거듭하는 편집기자들과 "이 기사 이게 이렇게 가는 게 맞아?" 하는 편집국장의 신경질적인 목소리, 데스크들과 출입기자들간의 통화들에 치이다 보면 어느 새 고요해지는 시점이 온다. 언제 그랬냐는 듯 평온한 얼굴로 하나 둘 회사 밖으로 나간다. 하루 중 공식적으로 허락된 외출, 점심시간이다.
"선배, 식사 어떻게 하세요?"
"어, 가야지. 가십시다."
"수훈 선배는요?"
"어, 가자."
오늘 점심은 성식 선배와 나, 그리고 수훈 선배와 가기로 했다. 수훈 선배는 미남이다. 184 정도 되는 훤칠한 키에 구불구불한 펌 머리, 쌍꺼풀 짙은 큰 눈과 오똑한 콧날에 걸친 '레이벤' 안경은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젊은 교수를 연상시켰다. 수훈 선배는 그래도 재미없고 딱딱한 교수와는 다르게 남다른 유머감각을 갖추고 있었다. 회식 때문에 귀가가 늦어지는 지경이면 매번 "우리 '와이파이'가 지랄해서 가봐야겠습니다"라며 웃는 종류의 유머 말이다. 수훈 선배와 성식 선배는 굉장히 돈독한 선후배 사이다. 나와 성식 선배와 마찬가지로 학교 선후배이기도 하고 직장 선후배이기도 한데 둘은 고등학교가 아닌 대학교 선후배 사이다. 성식 선배가 낮은 사람에게 본인을 더 낮춰서 대하는 것과는 다르게 수훈 선배는 동네 형 같았다. 성식 선배가 가끔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자신을 낮춰서 선배로서의 존중을 받는다면, 수훈 선배는 경상도 사나이 답게 털털하고 할 말은 하는, 그러면서도 뒤끝이 없는 그런 선배였다. 성식 선배의 고향은 모른다.
"선배 뭐 드시겠습니까?"
성식 선배가 묻자 수훈 선배가 음- 하는 형식적인 고민 끝에 나에게 메뉴를 토스했고, 항상 그래 왔듯이 반사적으로 '전 다 좋습니다'고 대답했다. 마지못한 수훈 선배는 '먹을 거 없을 땐 짱깨지'라며 중국집으로 인도했으나 선배가 원래 중화요리를 좋아하는 것을 아는 나는 피식 웃음이 났다.
"선배 뭐 드시겠습니까?"
"난 짬뽕"
"당신은 뭐 드시겠소?"
"전 볶음밥 먹겠습니다"
"이모, 여기 짬뽕 두 개, 볶음밥 하나 주세요!"
성식 선배가 예의 그 사극톤의 말씨로 주문을 했고, 이어 물을 따르기 시작했다. 불편해진 나는 얼른 냅킨 세 장을 뽑아 하나씩 수저를 놓았다.
"요즘 연애사업은 뭐 별다른 소식 없나?"
안경을 고쳐 쓰며 수훈 선배가 말했다. 사흘에 한 번 꼴로 듣는 질문에 평소와 같이 '맨날 똑같죠 뭐'라고 대답하고 말려다 문득 출근길에 본 '복숭아'가 생각났다. 그리고 나선, 짬뽕 두 개와 볶음밥 하나가 나오고 밥을 빨리 먹는 순서대로(수훈 선배 > 나 > 성식 선배) 숟가락을 놓을 때까지 내가 본 '충격의 복숭아'에 대해 묘사하기 시작했다.
160 정도의 작은 키지만 작아 보이지 않았다,부터 시작해서 라쿤이 풍성하게 달린 점퍼를 입고 있었다, 근데 너무도 따뜻한 상의 차림과는 대조되게 하의는 꼴랑 레깅스 한 장만을 걸쳤더라, 근데 정말 엉덩이가 딱 힙업이 이렇게 된 것이 뭐더라 애플힙? 애플힙! 니키 미나즈 같은 그런- 아뇨 미키 마우스가 아니라... 그 유승옥? 그래 유승옥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어요. 아니 치마 달린 것 말구요. 일자로 된 것. 네 그거요. 얼굴이요? 아 제가 뒷좌석에서만 봐서. 근데 머리통은 되게 작았어요 소두.
"그럼 번호를 좀 물어보지 그랬어."
한바탕 장황한 상황 묘사가 끝나자 수훈 선배가 장난스레 웃으며 말했다. '하하 그러게요'라고 받아쳤으나 별다른 생각은 없었다. 아침에 본 크고 탐스런 복숭아는 그저 복숭아일 뿐, 난 원래 복숭아를 좋아하지도 않을뿐더러 당장 오늘의 퇴근만이 최대 관심사였다. 12시 23분, 이른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뜨려는데, 문득 무언가 놓치고 있었다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아른아른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것이 명치 끝을 간지렀다. 괜스레 머리를 슥- 쓸어 넘겨봤지만 그래도 애매한 감각은 여전했다. 차라리 손가락에 자그마한 가시가 박힌 편이 더 나을 듯했다. 커피를 사는 순간에도, 커피를 테이크 아웃해 회사로 돌아오는 길에도 가물가물한 기억력은 도무지 제정신을 차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일을 하면서도 '가시'의 괴롭힘은 여전해서 뇌의 기능을 100% 사용하지 못했다. 아, 그 유명한 앨버트 아인슈타인조차 10% 정도밖에 사용하지 못했다고 했나. 어쨌든 뇌의 한 부분은(좌뇌인지, 우뇌인지 혹은 그들의 일부인지) 여전히 희미한 안개 속을 헤매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이러다 기억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하면 어쩌지'라는 무서운 생각이 스믈스믈 올라왔다. 모른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과 모른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것은 크나큰 차이이며, 개인적인 견해로는 후자의 입장은 엄청나게 불행한 것이었다. 소크라테스가 이미 말하지 않았던 가.
안개 속을 헤매던 나의 뉴런들이 쓸만한, 꼭 필요한 정보를 찾아낸 것은 퇴근 즈음이었다. 나를 괴롭히던 '가시'는 의자를 앞으로 끌다 박힌 나뭇조각이 아니었다. 어렸을 적 샤프펜슬을 가지고 놀다 박힌 샤프심도 아니었으며, 동화 속 공주님이 찔린 장미 가시는 더더욱 아니었다. 엉덩이, 허벅지, 종아리, 발. 모두가 하체였지만, 복숭아가 주는 인상이 하도 강렬해서 평소라면 눈여겨봤을 법한 부분을 놓치고 말았다. 아니면 눈여겨볼만한 것이라서 희미하게나마 기억이 났는 지도 모르겠다. 문제는 신발이었다.
복숭아는 '조던'을 신고 있었다. 그것도 넘버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