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문란한 여자

by star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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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키의 조던 시리즈를 좋아하게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농구 때문이 아니다. 마이클 조던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구기종목에는 별다른 흥미가 없다(심지어 월드컵도 잘 보지 않는 편이다). 나는 학창시절부터 힙합을 좋아했다. 특히 그중에서도 힙합 음악 쪽에 굉장히 심취해 있었다. '술 취한 호랑이'들도 좋았고 '셋보다 나은 둘'도 노래방에서 곧 잘 따라 부르곤 했지만 진짜 그 세계로 빠지게 만든 것은 CSP의 '폴 인 러브'라는 곡이었다. 절친한 친구와 여자친구가 바람을 피운 것을 적나라게 묘사한 곡인데, 사춘기 예민한 감성에 그게 그렇게 낭만적으로 들릴 수가 없었다. 노래방에서 윤도현의 '너를 보내고'를 주구장창 부르던 양도 내 mp3에 담긴 이 곡을 듣고는 가요에서 멀어졌다.


그러다 자연스레 에미넴, 카니예 웨스트를 접했다. 무슨 말을 하는 지는 알아듣지 못했으나 이들이 하는 것이 '힙합 음악'인 것은 분명히 알았다. 그들은 하나같이 바지를 엉덩이 반쯤에 걸치고 발목까지 올라오는 운동화를 신었다. 반장에게 신발에 대해 물어보니 '아 조던?'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반장은 흔히 말하는 '오타쿠'였다. 특이한 점은 겉으로는 굉장히 멀쩡하다는 사실이다. 172cm의 약간은 작은 키지만 곱상하게 생겨 여자애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반장이 빠져있는 분야는 꽤나 여럿이었는데 힙합, 미국 드라마, 그림, 신발 등등 기억나는 것만 해도 너 다섯 개는 됐다(성인이 되고부터는 가죽까지 다루기 시작했다).


반장은 '조던'이라는 신발이 얼마나 구하기 어려운지에 대해 일장연설을 했다. 반장의 설명 덕택에 조던이 대단한 신발이라는 것과 굉장히 비싸다는 것, 그리고 '짝퉁'이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때만 해도 우리나라에서 힙합은 비주류였다. 댄스음악, 발라드 등이 가요계를 휩쓸었고 힙합은 매니아들의 차지였다.


난 힙합의 그러한 비주류적인 면을 좋아했다. 남들과 다른 것을 좋아한다는 점에서 오는 우월감을 느끼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 다른 것이 더 있었다. 아이돌 음악이 본격적으로 산업화돼, 얼굴에 분을 칠하고 안무를 연습하며 팬들의 사랑을 갈구하는 노래들이 공장에서 쏟아져 나올 때였다. 하지만 힙합은 그런 것들과는 거리가 멀었다. 래퍼가 하고 싶은 주제를 골라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다. 힙합은 철저히 개인의 음악이었다. 거기에 동조하고 반응하는 것은 오로지 듣는 이의 선택이었다. 의사, 변호사, 과학자, CEO 등 틀에 박힌 꿈 아닌 꿈을 가지고 사는 세상에서, '곤조'를 가지고 자신의 생각을 말하는 것은 매력 아닌 매력일 수밖에 없었다.


간혹, 지나가는 길에 누군가 힙합을 듣는 것을 알게 된다면 괜스레 반가운 마음이 든다. 타지에서 고향사람을 만난 기분이 그럴까. 이름 모를 그 사람은 단지 힙합을 즐긴다는 이유로 단숨에 호감형 인간으로 바뀐다. 생면부지의 사람이 나의 내면 깊숙이 간직하고 있는 나만의 보물을 알아봐주는 느낌이다. 그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설명한 후, 자신의 것도 살포시 꺼내어 공유하는 느낌이랄까.


조던을 신고, 바지를 내려 입는 것은 '내가 힙합을 좋아하며 그 세계에 속한, 혹은 속하고 싶어 하는 인간이다'는 표상이었다. 하지만 학창시절 용돈을 모아봤자 코 묻은 돈이며 역부족이었기에 바지 사이즈를 34로 맞추는 것에 만족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상형 항목에 '힙합'과 '조던' 카테고리를 쐐기 박은 것은 스물세 살 무렵이었다. 그때도 역시나 비주류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픽시 자전거를 사러 홍대에 들렀을 때였다. 자전거를 고르고 조립하는 것을 기다리고 있을 때, 두 명의 여자가 픽시를 타고 와서는 가게 앞에서 멈췄다. 두 명 다 검은색 타이즈에 흰 색 탱크톱을 입은 육체미를 과시하는 스타일이었다. 게다가 우리나라에서는 특히 더 구하기 쉽지 않은 조던 6 시리즈를 신고 있었다. 간단한 장식품을 구매한 그들은 왔을 때처럼 화려한 자취를 남기고 유유히 떠났고, 나는 그쪽 방향에서 한 참을 눈을 떼지 못하고 멍하게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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