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란한 여자

육감이라는 것은 신기하게도 꽤나 정확한 것이었다.

by stark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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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로도, 일주일에 서너번 씩은 출근길 버스에서 '복숭아'를 만나곤 했다. 날씨가 좀 더 쌀쌀해지고 완연한 겨울이 되어서도 그녀의 옷차림은 늘 같았다. 딱 붙는 타이즈에 캐나다산 봄버, 그리고 살짝 젖은 단발 머리칼까지. 그러나 드러난 몸매와 새초롬한 표정은 매일 신선함을 가져다 주었다.


인턴생활이 끝나갈 즈음인 1월, 나이를 한 살 더 먹은 그날의 출근길은 특별했다. 평소와 똑같은 시간에 잠들었음에도 이상하게 개운했다. 그 덕에 매일 거르던 아침식사도 챙겨먹었고, 조금 일찍 집을 나와 버스 정류장까지 여유있게 걸어갔다. 여전히 위잉- 소리와 함께 쓰레기차가 쓰레기를 삼키고 있었지만, 랜덤으로 재생시킨 음악어플에서는 가장 좋아하는 노래가 흘러나와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정류장에 도착하자마자 버스를 탔다. 연달은 기분 좋음에 '오늘은 뭔가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다음역에서 '복숭아'가 익숙하게 탑승했다. 항상 그녀가 등장하면 버스 안의 분위기가 바뀌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진짜 말도 안되는 엉덩이네'라는 생각을 속으로 삼키는데, '복숭아'의 얼굴에서 이질감이 느껴졌다. 그것은 일종의 데자뷰와 같은 느낌으로 처음 본 사람이 어디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은, 그런데 어디서 봤는지 생각해봐도 기억이 나지 않는, 찝찝한 기분이었다. 매번 버스에서 마주치고 그럴때마다 뚫어져라 쳐다봤기 때문에 드는 익숙함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쥐어짜내도 그녀와 나 사이의 자그마한 연관성조차 찾지 못했기 때문에 익숙함은 찝찝함이 되어 회사까지 쫓아왔다. 하루종일 따라다니며 나를 괴롭히던 의문은 퇴근 후 양을 만나기로 한 카페에서 풀렸다.


탐앤탐스에서(양은 이 카페를 가장 좋아했고, 고집했는데 그 이유는 자신이 느끼기에 가장 미국적이기 때문이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을 시킨 뒤 '복숭아'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근데, 나 출근할 때마다 진짜 몸매가 말이 안되는 여자를 봐."


"뭐?"


황당하다는 양의 표정을 뒤로한 채 나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아니 진짜로. 태어나서 그런 엉덩이는 처음 봐. 서양인인줄 알았어 처음에는."


"얼굴은?"


"얼굴도 괜찮았어. 약간 베이비페이스? 좀 동양적으로 생겼어. 말하고 나니까 우습네. 몸은 서양인인데 얼굴은 동양인이라니."


"오, 매일 마주친다고 거의? 그럼 번호라도 물어보지 그랬냐."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오늘도 마주쳤는데 어디서 본 얼굴 같은데 기억이 안 나. 묘하게 익숙하단 말이야."


"아니, 매일 마주치니까 그렇겠지 당연히. 정들었나보네."


놀리는 듯한 양의 말에 피식 웃음이 나다가도 여전히 '복숭아'의 정체에 대한 궁금증은 유효했다.


"장난이 아니라 진짜로. 아, 너 예전에 얘기했던 걔 있지. 그 몸매 장난 아니라던 애 있잖아 왜. 머리 노랗게 염색하고 무서웠다던."


"아 김사라?"


"어. 걔보다 더하면 더 했지 덜하진 않을 걸? 진짜 직접 봐야되는데..."


"그러고보니 걔도 ㅇㅇ동 살았던 것 같은데."


"진짜? 그럼 우리집 근천데. 걔 뭐하는데?"


"아마 헬스장에서 일할걸?"


눈, 코, 입, 귀, 피부가 느끼는 것을 오감이라고 한다. 거기에 흔히 '촉'이라는 감각을 더해 '육감'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보통 '여자의 육감'이라는 표현과 함께 여자들의 전유물 처럼 여겨진다. 이 육감이라는 것은 간혹 반대 생물인 남자에게서도 발현되기도 한다(아니, '사람에게는 오감말고도 육감이라는 것이 있는데, 주로 여자에게서 발현되며 가끔 남자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맞겠다).

육감이라는 것은 신기하게도 '왜 그렇게 느꼈냐'고 누군가 물어보면 "그냥 그런 느낌이야" 내지는 "왠지 모르게 그럴 것 같아"라는 애매모호한 대답을 이끌어낸다.


더욱 신기한 사실은, 그러한 애매모호함에도 불구하고 육감이라는 것이 꽤나 정확하다는 것이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것이든 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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