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먹어?"
5.
초밥 접시에는 이제 한치, 문어, 성게알 군함말이가 남았다.
'싫어하는 것만 남았네...'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툭툭 치는 것이 느껴졌다.
"안 먹어?"
무표정한 얼굴로 사라가 말했다. 아까부터 느낀 것이지만 이 여자의 표정은 도무지 읽어낼 수가 없다. 사람 잘 본다는 말을 귀가 따갑게 들어온 나로서는 굉장히 당혹스러울 정도다. 이번에도 역시 표정을 읽으려다 실패하고는 수업시간에 딴짓하다 걸린 아이처럼 '지금 먹으려고!'라고 황급히 대답했다. 사라는 이번에도 무심하게 날 훑어보고는 락교 하나를 입에 가져가며 한마디 툭 던졌다.
"이거 너 다 먹어. 나 다 싫어해"
너무도 뻔뻔하게 뻔뻔한 말을 해서인 지, 평소라면 황당하게 받아들일 말임에도 고개를 끄덕이며 한치 초밥을 입에 넣었다. 미끄덩- 하는 식감과 함께 절로 인상이 찌푸려졌지만 애써 내색하지 않았다. 나름의 소개팅 자리인지라 블로그에 소개된 각 종 맛집을 뒤져 찾아낸 곳이지만 역시 싫은 것은 싫은 것이었다. 내내 어색한 분위기로(사라는 계속 무표정했고, 초밥을 먹는 데 열중했다) 식사를 마친 후 나와서 시계를 보니 6시 10분 이었다. 식사 시간이 1시간 30분으로 제한돼 촉박하지 않을까 했던 걱정이 무색할 만큼 우리는 40분 만에 계산대로 향한 것이다. 사실 그럴 만도 한 것이, 나는 도무지 '첫 맛남' 상태에서는 익숙지 않은 사람이다. 태어나서 처음 마주하는 사람과 대화를 이어가기 위해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노력은 정말이지 아찔스럽다. 사는 곳부터 시작해서 취미라든가 좋아하는 음식이라든가 즐겨 듣는 음악, 가장 감명 깊게 본 영화 따위를 묻는 작업은 굉장한 피로감을 느끼게 한다. 더군다나 발전적인 관계를 전제로 한 소개팅과 같은 만남은 더더욱 그렇다. 업무차 만나는 사람이나 그냥 한 두 시간 만나고 말 사람 같은 경우에는 위 작업에서 얻는 소득이 없더라도 어색한 침묵을 조금만 견디면 벗어날 수 있다. 하지만 소개팅 자리에서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매개체를 찾지 못한다면, 침묵을 깨기 위한 돌파구를 미친 듯이 찾기 마련이다. 하지만 돌파구가 쉬이 찾아지지 않는다는 점은 신기하게도 매번 동일하다.
사라와의 첫 대화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는 터널을 돌파하기 위해 엑셀레이터를 풀로 밟았지만 저 앞에 보이는 반짝이는 출구는 도무지 가까워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었다. 사라의 주머니에서 살짝 삐져나온 이어폰을 보고는 '음악을 좋아하냐'고 물었더니(물론 사전에 친구에게서 들었기 때문에 힙합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힙합을 좋아한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반가운 얼굴로 '나도 힙합 좋아하는데!'라며 대화의 물꼬를 트자마자 나는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1. 나는 한국 힙합을 상당히 즐겨 듣는데 반해 사라는 본토 래퍼들의 음악만을 추구했다.
2. 특히, 그녀는 본토 힙합 중에서도 클럽믹스를 즐겨 들었다.
3. 결정적으로 그녀는 한국 힙합을 쓰레기라고 생각하며 경멸할 정도로 싫어했다.
가깝게 느껴졌던 출구가 멀어지자 나는 잔뜩 긴장하며 자전거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역시 '픽시'를 즐겨 타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사라는 픽시가 단순히 예뻐서 샀고, '어디서 샀냐'는 질문에는 '아는 사람'이 구해줬고 '얼마였는지'에 대해서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며 요즘은 지겨워져서 잘 타지 않는다는 무책임한 대답만 늘어놓았다.
애써 괜찮은 척하며 마지막 카드인 운동을 꺼내 들었다(역시 알고 있었다). 내가 기대한 것은 한 종목의 운동을 취미 삼아 꾸준히 하는 사람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성취에 대한 이야기, 보람에 대한 이야기 또는 한계를 극복하고 또 다른 나를 만날 수 있다는 식의 대화였다. 하지만 사라는 웨이트 트레이닝은 굉장히 역겹고 힘든 노동에 불과하며, 몸매를 유지하기 위한 필요악적인 수단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덧붙여, 헬스장에서 일하지 않았다면 아마 운동을 이렇게까진 하지 않았을 거란 말도.
이렇듯 우리 대화의 주제는 터널의 눈부신 끝만을 보여줄 뿐 출구로 데려다 주지는 못했다. 공통된 것 같으면서도 미묘하게 어긋나는 차이가 대화를 더욱 불편하게 만들었다. 침묵의 시간이 점점 잦아들수록 '나와 비슷할 것이다'라는 기대가 '우리는 다른 것 같다'는 씁쓸함과 실망감으로 번졌다. 어느 새 끄트머리에 걸친 노을이 이러한 우울감을 더욱 자극했다.
사실 애초에 많은 것을 바란 것은 아니었다. 나는 여전히 전에 사귀던 여자친구 A와 2년째 이별 중이었고, 그로 인해 누군가와 그토록 깊은 관계가 되는 것에 대한 심각한 염증을 앓고 있었다. 친구들의 연애 좀 하라는 잔소리에도 손사래도 치지 않을 만큼 무감각해져 있는 상태였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했고, 혼자를 즐겼으며 이제는 외로움도 어느 정도 잘 다룰 수 있게 되었다. 타인에게 맞추는 성향이 강한 나로서는 A가 남긴 흔적이 그토록 강렬한 것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나는 누군가(어른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하지 마'라고 말하면 그 행동은 하지 않았다. 단순하게 어른 말을 잘 들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근본적으로 남이 싫어하는 것을 하기 싫어했고, 티격태격하는 것이 싫었다. 또 남이 하기 싫어하는 행동을 안 한다고 해서 딱히 나에게 피해가 오는 일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다투거나 화를 낼 일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2년 전에는 달랐다.
A의 성격은 굉장했다. A의 이름은 얼굴을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남자 이름으로 착각할 정도로 특이했다. 그녀는 그 이유에 대해 '외할머니가 사주가 남자 사주처럼 아주 강하고 성격이 드세서 남자 이름으로 기를 눌러야 한다고 했기 때문'이라고 대답해줬다. 연애 초기에는 우스갯소리로 치부하고 넘겼지만, 해가 지날수록 그 이유에 대해 굉장히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A와 사귄 4년 간은 굉장했다. 친구의 말에 따르면 그녀는 나치를 이끄는 히틀러였고, 나는 레지스탕스였다. 그녀는 싫어하는 것에 특히나 민감해서 내가 자신이 싫어하는 무언가를 하는 것에 대해 원천 차단하는 방식을 택했다.
A는 상스러운 힙합(그녀의 표현에 따르면)적인 모든 것을 금했다. 그녀는 내가 스냅백을 쓰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고, 힙합 음악을 듣는 것을 금지했으며 후드티를 입거나 바지를 내려 입어 팬티라인이 보이게 하는 것을 절대로 하지 못하게 했다. 때문에 나는 스트레이트 핏의 청바지나 면바지를 입고 셔츠나 니트 따위의 불편한 옷을 껴입고는 사랑에 빠진 어떤 이를 표현하는 노래나 애인에 대한 사랑스러움을 노래하는 가요를 들어야만 했다. 이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지만 양은 이 정도만 보고도 나를 한심한 놈 쳐다보듯이 보며 한마디 했다. '선택은 너의 자유지'
A와의 에피소드는 이것 말고도 풍부하고도 스펙터클하며 반전영화 뺨치는 것들이 있지만, 애써 묻어둔 것을 다시 파서 땅에 펼쳐놓기는 싫다.
여하튼 A와 보낸 4년은 나를 '자발적인 연애 고자'로 만들었고, 나는 어쩌면 결혼도 못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담담히 받아들이던 차였다. 때문에 반 강제적으로 만들어진 사라와의 소개팅 역시 하나의 엔터테인 적인 요소일 뿐이었다. 하지만 늘 그렇듯 사람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며 늘 같은 것에 상처받는다. 무의식 속에 자리 잡은 '기대'라는 욕망이 외면받을 때, 앞에 선 사람이 나와 다른 어떤 것임을 확실히 깨닫게 될 때, 그래서 이 사람과는 도저히 같은 것을 공유할 수 없으며 온전한 하나가 되지 못할 것이라고 지레짐작할 때, 실망감이라는 닻을 스스로 발에 단 채 끝없는 나락으로 빠지게 되는 것이다.
식사를 마친 후 내가 발목에 단 추와 함께 나만의 세계로 빠져드는 중이었다.
더 이상 무엇인가를 하고 싶은 욕구가 들지 않아 이제 그만 양해를 구하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이 든 찰나에 사라가 던진 한마디는 나를 수면 밖으로 끌어냈다.
"술 마시러 갈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