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란한 여자

퇴물이야.

by starka

8.


나는 최대한 당황스러운 기색을 감추며 기억을 더듬었다.


'그러는 너는 어떠냐고. 섹스 좋아해?'


문제의 시발점을 찾아내자마자 나는 얼굴이 달아오르는 부끄러움과, 내 머리통을 후려갈기고 싶은 욕구 사이에서 어떤 것을 먼저 수습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했다. 하지만 이 부분은 단지 시작일 뿐, 낯선 여자와 침대에서 뒹굴고 있는 지금 상황을 모두 해명할 수 없었으므로 조금 더 기억을 엿보기로 했다.


"좋아하냐고?"


"응"


되묻는 그녀의 표정을 보니 화가 난 얼굴은 아니었다.


"글쎄... 좋다기보다는 뭐랄까, 재미?"


"재미?"


"음 아냐. 그냥 약간의 우월감과 동시에 내가 살아있는 기분을 느껴."


예상치 못한 대답에 나는 잠시 멍-한 얼굴로 그녀의 얼굴을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우월감이라고?"


"그래."


"그게 무슨 말이야?"


반쯤 벌린 입으로 되물은 나를 보며 사라는 싱긋 웃더니 술잔을 잡아 들었다.


"안돼. 네 차례야."


"뭐가?"


"네가 대답할 차례라구. 지금까지 질문은 너만 했잖아?"


그녀의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 우리의 대화는 내가 묻고 그녀가 대답하는 일방적인 방식이었다. 변명을 하자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내게 관심이 없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무심한 눈빛과 단답형 대답, 가끔씩 내뱉는 혼잣말은 나로 하여금 처음에는 당혹과 당황, 나중에는 분노와 좌절감을 느끼게 했다. 그렇게 생겨난 착잡한 감정은 그녀가 붙잡지 않았다면 아마 집으로 가는 내내 나를 괴롭혔을 테고 침대 한편에 아예 자리를 틀고는 몇 날 며칠을 상주했을 것이다.


"그래. 내가 뭘 대답하면 되지?"


나는 약간의 기대를 품고 질문했다. 지금까지의 태도가 괘씸하긴 했지만 묘한 매력을 띄는 그녀에게 호기심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잭슨키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응?"


예상치 못한 질문에 나도 모르게 큰 소리를 냈다. 창피한 마음에 얼굴로 뜨거운 피가 흐르는 것을 느끼며 주변을 훑었다. 다행히 사람들은 서로 간의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초록병을 쌓는데 열중하고 있었다. 순간 놀림감이 된 기분이 들어 그녀를 노려봤지만, 장난이 아니라는 듯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어서 어쩔 도리가 없었다.


'섹스 이야기를 하다가 난데없이 음악이라니..'


확실히 남들과 달랐다. 특이했다.


"내가 아는 잭슨키드를 말하는 거야?"


"응. 너도 힙합 좋아한다며. 본토가 아니면 별로야?"


"아니. 더 좋아해."


"왜?"


"가사를 바로 알아들을 수 있잖아."


내 대답이 의외였는지 그녀는 '오' 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고는 대답을 독려했다.


"그렇긴 하지. 그래서 잭슨키드에 대한 생각은?"


"퇴물."


"퇴물이라고? 잭슨키드를 퇴물?"


"음 좀 그런가?"


"좀 이라니! 세상에!"


처음으로 큰 폭의 감정 변화를 보이는 것을 보니 살짝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를 골탕 먹이거나 일부러 화를 돋우려고 한 말은 아니었다. 그저 잭슨키드는 내게 있어서 퇴물일 뿐이었다. 물론 그가 화려한 디스코그라피와 우리나라에 힙합을 보급한 1세대라는 기념비적인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또 나 역시 학창 시절 키드의 노래를 즐겨 받았고, 그가 나의 인격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것 역시 인정한다. 심지어 나는 아직도 잭슨키드를 좋아한다. 하지만 그래도 그가 퇴물이라는 주장에는 변함이 없다. 그것은 십 년 전과 판이하게 다른 음악을 하는 그에게 보내는 애증의 시선이자, 돌아갈 수 없는 과거에 대한 아쉬움, 안타까움 또는 과거를 딛고 미래로 한 발자국 나아가려는 몸부림 같은 것이다. 나에게 그는 아름다운 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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