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드르르릉!”
요란한 배기음이 지하주차장을 울렸다. 너무 커서 거슬렸던 소리가 어느덧 익숙해진 것을 느낀 김은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페라리 458 이탈리아’
김은 자신이 이 차를 탈 수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지하주차장을 벗어난 김의 차는 빠르게 직선도로를 달렸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지만 이제는 엔진 소리와 함께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를 즐기게 되었다. 김은 강변북로를 따라 탁 트인 한강을 보며 맘껏 액셀을 밟았다. 늦은 출근시간 덕분에 비어있는 도로는 페라리의 배기음으로 가득 찼다.
지하주차장에 도착한 김은 구석 넓은 자리에 페라리를 주차하고는 병원 입구로 들어섰다.
“어서 오세요 원장님!”
프런트에 앉아 있던 비서가 웃으며 인사했다.
“어어. 밥은 먹었고?”
“네 먹었죠. 식사는 테이블에 뒀습니다.”
“매번 고마워.”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 원장실에 도착한 김은 책상 위에 놓인 샌드위치를 먹으며 몇 달 전을 회상했다.
“안녕하시오.”
그날따라 하늘이 우중충한 날이었다. 막 치료를 마치고 한숨 돌리려던 찰나 김을 찾은 환자가 중후한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네 이쪽으로 앉으시죠.”
김은 환자를 안내하며 위아래로 훑었다. 중절모 밑으로 희끗한 흰머리와 깊지는 않지만 잔잔한 주름들이 나이를 가늠케 했다.
환자는 파란 바탕에 흰색 스트라이프가 줄줄이 이어진 슈트를 입고 있었고, 진한 고동색 헤리티지 구두를 신고 슬쩍 보이는 양말은 아가일 패턴이었다. ‘신사네. 수염이 있으면 완벽했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던 김은 느껴지는 시선에 깜짝 놀랐다.
“뭐가 이상한 가 의사 양반?”
자연스러운 하대였지만 김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아 죄송합니다.”
김은 자신의 무례한 행동에 얼굴을 붉히며 황급히 사과했다.
“아닐세. 젊은이의 시선을 느낄 수 있어서 좋구먼.”
노신사가 너스레를 떨었다.
“아닙니다. 이쪽으로 앉으시겠어요?”
김이 평소보다 더욱 공손한 어투로 노신사에게 말했다.
“어디가 불편하신가요?”
“스케일링을 좀 할까 하는데.”
노신사가 중절모를 벗으며 말했다. 모자를 벗은 노신사는 자연스럽게 김에게 모자를 건넸고 김은 자기도 모르게 노신사의 모자를 공손히 받아 들었다. 김은 왠지 노신사의 모자가 익숙하다는 생각을 하며 노신사의 목에 하얀 냅킨을 둘렀다.
“아 해보세요.”
노신사의 벌어진 입을 보며 김은 놀랐다. 나이에 맞지 않게 깨끗하고 잘 관리된 하얀 치아들이 가지런히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 딱히 안 하셔도 될 것 같은데, 스케일링 언제 하셨어요?”
김이 머뭇거리며 말하자 노신사는 웃으며 ‘알고 있으니 대충 해달라’고 말했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김은 노신사의 말을 거절할 수 없었다.
“아프시면 왼손을 들어주세요.”
김은 속으로 범상치 않은 환자가 왔다고 생각하며 간호사에게 맡기는 대신 직접 스케일러를 잡았다. 스케일링을 하는 내내 노신사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손은 물론 목울대 조차 움직이지 않았다. 김은 노신사의 이가 생각보다 깨끗해서, 고통을 잘 참는 부류의 인간이라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다.
“다 됐습니다. 양치 한 번 하시고 상담실로 오세요.”
상담실로 들어온 김은 의자에 앉아 노신사의 차트를 들여다봤다.
‘341025’
김은 노신사가 80세를 훌쩍 노인이라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