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未] 빨간 페라리를 탄 남자

02

by starka


“아프진 않으셨나요?”


김이 상담실로 들어오는 노신사에게 물었다.


“아주 솜씨가 좋더군 괜찮아.”


“아닙니다. 원체 관리를 잘 해오셔서 아프시지 않으셨을 거예요.”


“그럼 또 다음에 또 오도록 하지.”


노신사는 간호사에게 중절모와 재킷을 받고는 우산을 지팡이 삼아 병원문을 나섰다. 딸랑- 하는 종소리의 여운이 유난히 김의 귀를 파고들었다.


진료실 창밖으로 육중하고도 검은, 비싸 보이는 차가 한 대 보였다. 그 옆에는 기사처럼 보이는 사람이 우직하게 서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주인을 기다리는 충직한 개처럼. 이윽고 노신사의 중절모가 보이자 기사는 뒷문을 열고 노신사가 자리에 완전히 탈 때까지 기다렸다. 아스팔트를 뭉개는 타이어 소리와 함께 거대한 검은 자동차가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 김은 ‘저런 사람들은 걱정도 없을 거야’라고 생각했다.


이튿날, 김은 뜻밖의 장소에서 노신사와 재회했다.


“오 의사 선생!”


반갑게 인사하는 노신사를 보며 김은 당황했다. 단골 펍에서 노신사를 만나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기 때문이다.


“맥주 한 잔 하러 왔나?”


“아, 예.”


“여기 생맥주가 또 맛이 기가 막히지.”


노신사의 말에 김은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김의 병원 건물 뒤쪽 골목에 있는 이 펍은 맥주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생맥주 맛이 좋기로 유명하다. 맥주를 좋아해서 가게를 차렸다는 사장은 장사에 딱히 열의를 보이지 않았다. 귀찮은 것을 싫어하는 사장은 적당한 손님과 자기가 좋아하는 맥주를 실컷 마실 수 있으면 그만이었다. 그가 열중하는 것은 오로지 ‘좋은 생맥주의 맛을 유지하기’ 뿐이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우연히 방문한 손님들이 맥주 맛에 반해 하나둘 단골이 되자 자연스레 입소문이 퍼졌다. 그래서 간판도 잘 보이지 않고 후미진 곳에 있지만 가게가 텅 비어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노신사와 만난 그날도 이른 저녁이었지만 가게가 꽤 붐볐다. 김이 들어서는 것을 본 사장은 귀찮다는 표정으로 500잔에 맥주를 따랐다.


“사장님 나쵸칩도 하나만 주세요.”


김의 주문에 사장은 대꾸도 않고 맥주를 따르는데 열심히였지만 김은 당황하지 않았다. 사장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봤기 때문이다. 김은 노신사가 이 곳을 어떻게 왔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여기는 어떻게 알고..”


“아 그때 스케일링을 받은 날 맥주가 땡겨서 말이지, 주변을 돌아보니 여기가 괜찮아 보이더군. 이래 봬도 술집 하나는 기가 막히게 찾는다고. 어둡고 축축하고 욕망이 가득한.”


노신사의 알 수 없는 말에 김은 정말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퇴근 후 시원한 생맥주로 피로를 씻어내며 머리를 쉬게 하리라는 기대를 망쳐버린 노신사에게 분노의 감정마저 생겼다.


“그렇군요. 좋은 저녁 보내다 가세요 저는 이만.”


사장이 내려놓은 맥주잔에 서린 서리를 닦으며 김이 말했다.


“자리도 없는 것 같은데 같이 한 잔 하지.”


노신사의 말에 김은 고개를 들고 주변을 둘러봤다. 군데군데 비어 있던 자리가 어느새 손님들로 꽉 차 있었다. 김은 하는 수 없이 들고 있던 맥주잔을 입으로 가져갔다.


“저, 스케일링은 6개월 뒤에 오시면 됩니다.”


노신사와 딱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은 김은 치료 이야기를 꺼냈다.


“좀 더 자주 가도록 하지.”


노신사가 웃으며 말했다.


“아뇨 스케일링은 자주 받으시면...”


김은 노신사가 자신의 이야기를 전혀 듣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는 말을 멈췄다.


“그보다 자네 아까 보니 실력이 좋던데, 왜 이런 작은 병원에 있는 건가?”


노신사가 웃으며 말했다. 김은 어이가 없었다. 스케일링 하나만으로 자신의 실력을 판가름하는 것이 황당했고 자신이 근무하는 병원을 작다고 한 것도 굉장히 무례한 발언이었다.


“실력 없습니다 저. 뭐 근무하는 곳도 작긴 하지만 환자분들도 좋고 만족합니다.”


김이 딱딱하게 대꾸했으나 노신사는 전혀 개의치 않고 물었다.


“정말인가?”


“뭐가요?”


김의 짜증에도 노신사는 신경 쓰지 않고 재차 물었다.


“그런 쬐끄만 병원에서 일하는 게 정말 괜찮은가 이 말일세. 원장은 자네에게 병원을 맡기다시피 하며 놀러나 다니고, 오는 환자들은 노인들 아니면 돈 없는 사람들. 이런 환경이 정말 만족스러운가 묻는 걸세. 내가 받은 치료만 해도 부자 동네에 가면 곱절은 더 받을 수 있을 걸세. 아니면 혹시 나 같은 노인네 스케일링이나 해주고 칭찬이나 듣는 것이 충분히 만족스러운가?”


노신사의 말을 들은 김은 당장에 ‘그건 아니잖아요!’라고 반발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딱히 반박할 명분이 없었다. 노신사의 말이 맞았다. 김이 생각하는 치과 의사의 삶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믿을 것은 공부뿐이라며 미친 듯이 매달렸던 것이 동네 구멍가게에서 사람들의 냄새나는 아가리를 보기 위함은 분명 아니었다. 의료인으로서 환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것은 부수적일 뿐 의사의 길을 택한 것은 순전히 돈 때문이었다. 서울의 BIG3 의대를 진학하기보다 국립대학 전액 장학생으로 가게 된 것도, 의대 대신 그나마 공부를 빨리 끝낼 수 있는 치대를 선택한 것도 다 돈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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