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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tarka Feb 19. 2016

어느 우버 기사의 이야기

한국분이신가 봐요?           *사진=산타모니카 해변, LA

 LA에서는 차가 없이 다니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래서 여행 전에 부랴부랴 국제면허증을 만들고는 여권과 함께 포개어 놓은 채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이번 미국 여행의 일정은 총 3주. 샌프란시스코로 떨어져서 LA, 라스베이거스, 워싱턴 D.C, 보스턴을 거치고 뉴욕에서 나오기로 했다. 일본을 제외하고는 긴 해외여행이 처음이기 때문에 긴장이 많이 됐지만, 샌프란시스코에서의 3박 4일을 어찌어찌 잘 넘겼기에 스스로  뿌듯해하고 있던 때였다.


 "렌트를 하기 위해서는 한국 운전 면허증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젊은 백인 남자 직원의 말에 미국으로 출발하기 전 인천공항에서 느낀 막연한 불안감이 되살아났다. 국제 운전면허증을 발급받아 놓고는 '이거면 되겠지' 하며 한국 면허는 책상 위에 휙 던져 놓은 것이 생각난 탓이다. 내 방 책상 위, 어떤 위치에 어떤 모양으로 놓여 있는지 눈 앞에 선해서 당장이라도 가져올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인데 그러기에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너무도 멀리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자 정신이 아득해졌다. 설상가상으로 공항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10시  30분인데 숙소 체크인 시간은 오후 4시였다. 집주인에게 양해를 구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  쏘리'였다.


그렇다고 공항에서 체크인 시간까지 무작정 기다릴 수는 없는 노릇. 첫 장기 해외여행을 망칠 생각은 추호도 없었기에 일정을 다시 손 보기로 했다. 가장 먼 거리에 있는 디즈니랜드는 가장 먼저 제외됐다. 거리도  거리일뿐더러 애초에 디즈니 캐릭터에 대한 동경이 없었기 때문이다. 렌터카 대신 대중교통과 우버를 이용하기로 결정했고, 그렇게 추리고 추려 새 일정을 짜니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애초에 길눈이 어두운데다, 우리나라와 교통법도 다른 나라에서 운전할 생각에 퍽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잘되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 뒤부터는 일사천리였다. 대중교통과 우버의 가격차이가 크지 않았기에 3일 내내 우버를 주로 이용하기로 했다.


샌프란시스코와 달리 LA는 미국에 대한 환상을 산산이 부숴놓았다. 세계 1위의 초강대국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거리에는 홈리스들이 넘쳐났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잡은 숙소에 들어서자 씁쓸함은 더욱 커졌다. 주인에게 '왜 인터넷이 안되느냐'고 묻자, 무허가 아파트라서 인터넷 신청이 불가하다는 대답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LA의 관광명소 중 하나인 베벌리힐즈를 방문했을 때는 그러한 감정이 극에 달했는데, 한인타운과 내가 머무는 8번가와는 다르게 그들은 너무나도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궁궐과도 같은 집에-정말 말 그대로 궁궐 같았다- 보통 사람들은 죽기 전에 한 번 타보는 것이 소원일 법한 고급 승용차가 한 집에 서너 대씩 주차돼있었다. 도로의 폭도 어마어마하게 넓고 깨끗했으며, 경찰차가 수시로 순찰을  돌아한 눈에 보기에도 범죄와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미국 여행을 결심하고 출발하기 전에  주변인들로부터 가장 많이 들은 말은 '많이 보고, 많이 느끼고 와라'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선진국의 문화를 접할 생각에 선뜻 '그러마' 하고 대답했지만, 눈 앞에 보인 것은 철저하고도 베일 것만 같은 자본의 냉정 함이었다. 거기에서 느낄 수 있었던 유일한 사실은 씁쓸함 보다도 더욱  쓰디쓴 무언가 일 뿐이었다.


그 뒤로 LA에서 머무는 내내 자본과 자본주의, 분배에 관한 문제, 부란 무엇인가 따위의 화두들이 쫓아다니며 나를 괴롭혔다. 생각을 정리도 할 겸 나를 돌아보기 위한 여행을 계획했었지만 생각은 더 복잡해지고 나보다는 주위를 더 둘러보게 되었다.


눅눅한 무허가 아파트에서 마지막 밤을 보내고는 아침 일찍 라스베이거스로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우버를 불렀다. 5분쯤 기다렸을까, '띠링' 하는 알림 음과 함께 우버 기사가 곧 도착한다는 메시지가 떴다. 'SHOOO'이라는 이름의 기사였고 도요타의 캠리를 몬다고 적혀있었다. 잠시 후 하얀 승용차가 집 앞에 섰다. 뒷문을 열며 예의 'Hi'라고 말하는 순간, 우버 기사의 입에서 한국말이 흘러나왔다.


 "한국분이신가 봐요?"


당연히 외국인이겠거니 라는 생각에 건넨 영어였는데 민망함과 함께 얼버무리고 말았다. 기사는  3년째 미국에서 사는 중이라고 했다. 처음 1년은 뉴욕에서 지냈고 LA에 온 지는 2년이 됐다고 했다.


 "제가 한 십 년을 기러기 아빠 생활을 했어요. 네? 네 애 때문에. 와이프랑 애랑 미국으로 건너가서 살고 저는 중국에서 의류 사업을 했거든요. 네 중국에서 살았죠. 그래서 원래 이게 애가 대학교 들어가면 와이프랑 중국에서 같이 살기로 했는데 여기가 더 좋다고 그러고 애도 학교를 여기서 다니니까... 제가 옮겼죠 뭐. 원래 처음에는 뉴욕에 있었어요. 그래도 할 줄 아는 게 이쪽 일이니까 동향 좀 알아보려고 1년 정도 뉴욕에 있었죠. 근데 거기는 너무 비싸요. 주차비도 15불 20불 하고, 집 렌트비도 비싸고 해서. 알아보니까 LA에 자바 마켓이라고 있는데 여기 의류시장이 크게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리로 넘어왔죠. 한국이요? 한국 마지막으로 들어간 게 삼 년 됐죠. 여기로 넘어오고 나서는 아직 못 가봤으니깐요. 근데 이게 나가기가 힘든 게, 미국 사는 한국인들은 대부분 자영업자들이에요. 세탁소나 음식점이나 뭐 그런. 그러니까 한국 나갔다 오려면 최소 일주일은 잡고 나가야 하는데 그럼 가게는 어떡해. 못 나가는 거지 뭐. 그리고 한국 가도 뭐  인간관계라는 게 없어요. 외국생활 이렇게 오래 했는데 거기 뭐가 남았어. 다 여기 있는데. 그래도 한국처럼 그렇게 아등바등 살지 않으니까 위안 삼는 거지 뭐. 그게 왜 그러냐면은 여기 사람들은 어느 정도 한계가 뚜렷하다 싶으면 거기서 멈춰. 스트레스 받으면서 살지를 않아요. 왜?  먹고살 수 있으니까. 트럭 운전만 해도 일흔 살까지는 해요 자기가 원하면. 우리나라처럼 머리 싸매고 공부하는 것만이 답이 아니라는 거지 여기 사람들은. 자기 선택에 의해서 정하는 거니까 만족도도 높고. 퇴직해도 연금 있으니까 그거면 살만 하거든. 그러니까 이건 좀 안 좋은 얘기인데 여기 있는 한국분들 중에는 그렇게 연금 받아서 살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요.  먹고살 수 있으니까 편하게. 정서요? 아 당연히 다르지. 남자, 여자, 애완동물, 노인, 어린이 중에 미국에서 제일 살기 좋은 게 누군지 알아요? 첫 번째로 어린이. 얘네들은 어린애들 보호하는 게 굉장히 강해. 어린애들 잘못되기라도 하면 큰일 나 아주. 두 번째는 여자. 세 번째는 노인. 네 번째는 누굴 것 같아요? 맞아요 애완동물. 그리고 마지막이 남자. 우스갯소리 같지만 정말이에요. 근데 또 웃긴 게 뭔 줄 알아요? 얘네 이렇게 애를 보호하려고 하고 가장 지켜야 될 존재로 생각하잖아. 그럼 애한테 가장 상처 주는 게 뭐예요. 부모들 갈라서는 거거든. 애는 그렇게 위하면서도 또 이혼은 엄청 쉽게 해. 얘네는 막 애들 혼내도 한국처럼 나가라, 내쫓는다 이런 말 안 해요. 근데 이혼은 밥먹듯이 막 해.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래도 이혼 생각하면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게 그래도 또 자식이 잖아. 그런 거 보면 참 아이러니한 부분도 있지. 어쨌든, 그래서 어디로 간다고요? 라스베이거스. 좋지. 갔다가 또 어디? 아 동부. 동부는 좀 추울 텐데 여기보다. 젊어 보이는 데 혹시 나이가 어떻게 돼요? 아 그럼 졸업했겠네요? 그러면은 주저하지 말고 짐 싸서 미국으로 넘어와요. 아니다 짐도 필요 없어. 그냥 넘어오는 거야 그냥. 이것저것 재고 따지고 그러면 못 와요. 생각이 많아지고 겁이 나니깐. 그냥 부딪히는 거야 젊었을 때. 경제가 진짜 지금 어려워서, 미국도 지금 힘들어요. 게다가 여기는 뱅크럽이 쉬워서, 응 파산. 개인파산이 쉬워서 조금 뭐 했다 하면 그냥 뱅크럽 해버리니까 사업가들이 살기 딱 좋은 나라야. 나도 지금 뱅크럽만 세 번을 맞아가지고... 아무튼 간에 그래도 아직은 내가 봤을 때 기회의 땅이야. 한국에서 아등바등 살고 이러는 것도 뭐 자신의 선택이기는 한데, 저 같으면 지금 손님 나이였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넘어왔어. 이게 선택을 할 때 늙어서 못 하겠다 싶은 것들을 위주로 해야 되는 것 같아 보니까. 젊었을 때는 혈기, 패기 이런 걸로 다 커버가 가능하거든. 근데 나이 들면은 안돼 그게. 그리고 만약 넘어왔다가 실패하면 어때? 그것도 그것 나름대로 자산이 되는 거지. 괜찮아요 진짜. 우선 와. 내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우선 와요. 와보면 시야가 일단 달라져. 그냥 돈 생각하지 말고 와요. 돈은 벌면 되지. 닥치면 하게 돼 사람이. 이거, 우버만 해도  먹고살아요. 자기 하고 싶을 때 하면 되고. 나도 일하다가 짬날 때 하는 거니깐. 근데 이게 우버도 내가 봤을 때는 새로운 착취의 개념이야. 10시간은 해야지  먹고살만한 돈을 벌거든. 떼 가는 게 많아요. 그렇지만 자기가 선택해서 하는 거잖아. 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만큼만. 그러니까 좋은 거지 불만 없고. 아 다 왔네. 어디 에어라인이에요? 버지니아... 가 저기네. 여행 잘해요. 그리고 진짜 한 번 생각해봐요 미국. 후회 안 할 거라니깐."


 한국인을 오랜만에 만난 것인지 아니면 젊음을 느껴본지가 오랜만인지, 아저씨는 쉴 새 없이 당신의 생각을 설파했다. 공항까지 한 시간 정도 걸렸는데, 이야기가 꽤나 흥미진진하고 생각할 부분도 많아서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이역만리 미국 땅에서  '아메리칸드림'을 고향사람 입에서 듣다니, 재밌는 일이다. 하지만 캐리어를 끌고 수속을 하러 가며 이야기를 곱씹었을 때, 내 대답은  '글쎄'였다.

 항상 어딘가를 돌아다닐 때, 혹은 여행을 다닐 때 생각하는 것이 있다. '여기서 내가 살 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면 여행이라는 것이  유흥이라기보다는 '내 집 찾기' 같은 것이 되어버려 머리가 더 복잡해지고는 하지만 그 끝에는 '역시 우리 집이 최고야'하는 작은 깨달음을 가지고 돌아오곤 했다. 샌프란시스코와 LA를 거치며 내가 새삼 다시 느낀 사실은 이러니 저러니 해도 우리나라가 살기 좋다는 것이었다. 옛날이야 한국에는 없는 물건들을 보며 '와' 했겠지만, 이제는 한국에서도 웬만한 것은 전부 구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혹자는 한국에서 파는 외국물품들의 가격을 보며 '거품이 너무 심하다'고 비난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미국 공항에서 '참깨라면'을 한화 7000원 정도에 파는 것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기사 아저씨의 말대로 미국은 아직까지 기회의 땅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기회라는 것이, 막연한 것이 아닐지에 대한 문제는 잘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나도 한국에 있을 때는 몰랐다. '미국, 미국' 하길래 미국은 엄청난 선진국이고, 선진문화이며, 모든 사람들이 어느 정도 수준의 생활을 누리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본 미국은 아니었다. 아직 여정이 많이 남았지만, 생각이 바뀌지는 않을 것 같다. 미국도 똑같았다. 자본주의에서는 빈부의 격차가 늘 생겨왔다. 그것은 미국도 예외가 아닌 사실을 눈으로 확인했다. 한국보다 더 많은 홈리스들과 더 많은 못 사는 사람들. 한국과는 달리 미국은 빈부격차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게끔 했다.


 언젠가 친구가 재미있게 읽은 구절이라며  이야기해주었던 것이 생각이 난다. 한국인들은 막연히 '선진국'을 꿈꾸며 '우리는 아직 멀었다'며 선진국을 어떤 유토피아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실상 한국과 상당한 격차를 보이는 '선진국'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꿈'을 꾼다. 하지만  '아메리칸드림'이라던지 하는 도피적인 차원에서의 꿈은 지양해야 된다고 본다. 주변을 둘러보면 심심치 않게 '로또' 이야기를 많이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로또' 뿐만이 아니라 일확천금에 대한 막연한 소망이 있어 보이는 것이 내가 느낀 우리 사회의 모습이다.


 적어도 내가 본 미국에서는 그러한 분위기를 느낄 수 없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에 대부분 만족하며 사는  듯했고, 직업에 대한 애정과 열정도 넘쳐 보였다. 나는 그 부분에 대해서 '선택'의 문제라고 결론을 내렸다. 우버 기사의 말대로 그들은 자신의 삶에서 항상 선택권을 가지고 있다. 직업에 있어서, 가정에 있어서, 그리고 삶에 있어서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하고, 그 선택에 따른 책임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듯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러한 '선택적인 삶'과는 거리가 먼  듯하다. '나의 삶' 보다는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쇼윈도적인 면이 강하기 때문이다. 또 현대에 이르러 왜곡된 가정교육도  한몫하는 것 같다. 고생한 부모 세대들이, 자식들이 당신들처럼 고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나온 '울타리 쳐주기'는 젊은 이들을 너무도 약하게 자라게 했다. 완벽한 무균상태에서 자라온 그들이, 부모라는 바람막이가 없다면 겪게 될 풍파는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우리나라는 미국, 일본, 중국이나 유럽 등과 비교해서 전혀 못 사는 나라가 아니다. 바꿔 말하면 그것은 그들이 우리보다 '월등한 선진국'이 아니며, '월등한 선진문화'를 향유하고 있지 않다는 말이다. 중요한 것은 mind, 정신이다. 우리는 삶에 있어서 선택권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하며, 선택에 따른 결과에 대해 겸허히 받아들일 수 있는 수양이 필요하다. 물론, 그에 따른 책임도 당연하다.


우버 기사가 제안한  '아메리칸드림'에 대한 나의 대답은 다시 한 번 '글쎄'다. 내가 살고 있는 곳보다 월등하지도 않고, 말도 잘 통하지 않으며, 열 몇 시간은 날아가야 나오는 나라에서 무일푼으로 삶을 시작하느니 나는 내 나라에서 노력해서 행복하게 살겠다고 '선택'했다. 그렇다고 집에 대한 걱정이나 직업에 대한 걱정, 그리고 미래에 대한 걱정들 모두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내 선택에 대한 책임 역시 겸허히 받아들일 것이다. 이것이 미국에서 괴로운 여행을 하며 얻어온, 내 작은 깨달음이다.


 역시,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집이 최고며, '집 떠나면 고생한다'는 어른들의 말이 가슴 깊이 와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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