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일기

돈에 대하여

by starka

영웅본색으로 친숙한 홍콩 배우 주윤발이 전 재산을 기부했다. 홍콩 달러 56억 원, 한화 약 8100억 원이라는 돈을 그는 스스럼없이 기부하며 '이 돈은 내 것이 아니라 잠시 맡아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이어 '행복의 척도가 돈을 얼마나 많이 모으느냐가 아니라 평화적인 사고방식과 함께 걱정 없이 남은 인생을 사는 것이냐가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나이가 조금씩 들어가면서 돈에 관한 물음을 자주 접하게 된다. '요즘 뭐해?'로 시작되는 오래된 친구들의 질문은 '얼마 벌어?' 혹은 '걔 얼마 번대'로 이어지다가 '나중에 밥 한 번 먹자'로 끝이 난다. 얼마를 버느냐가 개인의 가치와 능력을 가시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된 것이다. 8100억 원을 기부한 주윤발의 삶과는 대조적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윤발과는 다른 인생을 살아간다. 조금이라도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 나의 삶, 가족, 친구 같은 요소들은 뒷전으로 두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러면서도 아이러니하게도 '왜 그렇게 아등바등 사냐'고 물으면 '가족을 위해서' 혹은 '사람 구실 하면서 살려고' 같은 앞의 요소를 이유로 댄다.


돈은 중요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 어느 정도 돈은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그 기준의 척도가 애매할 뿐이다. 어떤 사람들은 주윤발처럼 돈이 없어도 행복하게 사는 반면 어떤 사람들은 재벌이라고 불릴 만큼 돈이 많아도 더 많은 돈을 얻기 위해 하루의 대부분을 할애한다.


주변을 둘러보면 십중팔구는 '돈이 최고'라고 말한다. 나와 비슷한 또래들은 돈으로 대부분의 행복을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99%다. 오히려 기성세대가 돈에 대해서는 젊은 층보다 진보적이다. '돈이 다가 아니다'라던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있다'같은 말은 2-30대보다 기성세대가 많이 한다.


혹자들은 기성세대가 산업화의 혜택을 받아 높은 경제성장률 속에서 말 그대로 손만 대면 잘 풀리는 사회에서 살았기 때문에 복에 겨운 소리를 한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게임의 규칙이 변했을 뿐 삶의 본질은 전혀 바뀌지 않았다. 다만 부모세대가 간과한 것이 하나 있다면 게임의 판도가 변하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채 자식에게 자신과 똑같은 규칙을 강요했다는 점이다.


다시 돌아와서, 돈은 우리 인생에서 얼마큼 중요할까? 내 친구의 아버지는 40살이 되기 전에 몇 백억을 모으지 못한다면 경제적으로 실패한 인생이라고 말하셨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몇 백억은커녕 몇 억도 모으지 못한 채 이 세상을 떠난다. 그렇다면 그 사람들의 인생은 모두 실패한 인생일까?


돈에 대한 요즘 나의 화두는 '과연 돈을 꼭 그렇게 많이 벌어야 하는가'다. 일생동안 살아갈 작은 집이 있고, 생계를 유지할 소소한 돈만 있다면 좋아하는 일을 하루 종일 할 수 있는 삶이 행복한 삶이 아닐까? 이런 생각을 이야기하면 주변에서는 '결혼은?'이라고 반문한다. 흔히 '결혼은 현실이다'라고 말한다. 남들보다 좋지는 않아도 남들만큼의 집, 남들만큼의 연봉, 남들만큼의 지위를 가져야 행복한 가정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남들만큼'이라는 말처럼 모호한 기준도 없다. 요는 우리 사회가, 아니 인간이라는 동물 자체가 타인과 나를 비교하는 것에 너무 익숙해지지 않았냐는 소리다. 스스로가 행복하다면 남들이 뭐라고 하던지 상관없는 일이다. 다만 그렇게 살기에 우리 주변은 너무나 서로 비교하고 상처 입히고 상처 받는다. 나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아가는 것이 곧 행복'이라는 명제에 찬성한다. 그 증거로 '미움받을 용기' 류의 책이 유행하지 않았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작지만 큰 용기라고 생각한다. 돈이 다가 아니라는,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당당히 말할 수 있는 용기. 그런 용기를 낼 수 있는 사람이 다수가 된다면 어쩌면 우리는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에서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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