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에 대해
그저께 잠자리에 들기 전 침대에서 문득 우리 집에 대해 생각이 들었다.
우리 집은 내가 중학교 1학년 때 이사한 이래로 지금까지 살고 있다. 16년째 살고 있으니 참 오래도 살았다는 생각과 함께 중학교 시절의 추억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샘솟았다.
지금은 연락도 되지 않는, 서로가 베스트 프렌드라며 붙어 다니던 친구들과 돈이 없어도 쉬는 시간마다 꼭 들리던 매점, 후랑크 소시지, 비스마르크, 딸리 페스츄리, 바나나우유와 몸에 딱 맞게 줄이고 싶었지만 겁이나 줄이지 못했던 교복, 갑자기 어려워진 수학, 서로 누가 누구를 좋아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들, 그리고 마지막 3학년을 마치고 갔던 제주도 수학여행까지.
솔직히 말해서 그때만큼 기억이 생생치는 않지만 공들여 떠올리면 아직도 중학교 시절 내 모습이 눈앞에 선한데 벌써 서른이라니, 누워있다가 오한이 들 정도로 시간에 대한 두려움이 느껴졌다. 그리고는 내 삶을 반추했다. 공자는 30세, 서른 살을 '이립'이라고 했다. 스스로 뜻을 세울 만큼 자격과 능력을 갖추었나 하니 아직은 한참은 부족하다.
생각해보면 지금껏 살아오면서 이룬 것이 없었다. 중학교 때 이곳으로 이사를 온 것은 순전히 손자 대학 한 번 잘 보내보려고 한 외할머니의 바람 때문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나는 입시에 실패했고, 그저 그런 대학에 입학했다.
대학 1년 동안 흥청망청 원 없이 놀다가 군대에 가서는 정말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미 없는 열정만 가득 안고 돌아왔다. 방향이 없는 열심은 주변을 모두게 힘들게 할 뿐이었다. 손대는 것마다 조금 해보고는 놓기 일쑤였다. 그러면서도 가슴속에는 막연히 '나는 성공할 거야!' 하는 다짐이 살아있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노력도 하지 않고 생각만 앞선 치기 어린 마음이 아니지 싶다.
졸업 후 몇몇 회사를 전전하다 회사생활이 맞지 않아 그만두고 자영업을 했다. 그마저도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겨우겨우 운영할 수 있었다. 게다가 작년부터는 정신적 미숙함에 큰 실수를 해서 나뿐만 아니라 주변까지 괴롭게 만드는 중이다.
여기까지 돌이켜보니 참 보잘것없는 인생을 살았다 싶으면서도 아등바등 살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짤에서 본 것처럼 나는 참 바르게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기차를 탄 것처럼 뒤를 돌아보면 굽이굽이 굴곡진 길을 걸어왔다.
내 기억의 끝을 더듬어보니 드문드문 기억이 나는 부분은 5세까지가 끝이었다. 나라는 인간에게는 25년 치의 기억만이 존재하는 것이다. 짧지 않은 25년 치의 기억을 빠르게 되돌아보면서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시간은 정말 빠르다'라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는 이유가 왜인지 알 것 같았다.
친구가 예전에 '알쓸신잡'에서 정재승 교수가 했던 이야기라며 들려준 것이 생각이 난다. 인간이 자라면서 시간이 점점 빠르게 지나간다고 느끼는 것이 과학적으로 사실이라는 것이다. 사람이 어렸을 때는 처음 경험하는 것들이 많기 때문에 많은 정보를 수집한다고 한다. 예를 들어 6살짜리가 공원에 갔다고 하면 공원에 있는 바위, 그네, 잔디, 풀, 나비 등 여러 가지를 수집해 기억하기 때문에 그 아이가 느끼는 시간은 참 길다. 하지만 성인이 공원에 가면 '오늘 공원에 갔다. 끝' 이 정도의 정보만 처리하고 말기 때문에 하루가 더욱 짧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지금도 눈 깜빡하면 월요일이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주말이다. 이 기세로라면 눈을 여러 번 깜빡이면 곧 환갑일 것 같은 기분이다. 공자는 서른에 스스로 뜻을 세웠는데, 나는 뜻을 세우려면 조금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것 같다. 그래도 자그만 합리화로 위안을 삼자면 공자 시대보다 지금 시대가 정신적 성숙을 위해 필요한 시간이 10년 정도는 필요하다는 것. 그러니 지금 내 나이를 약관으로 봐도 괜찮지 않을까?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