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찰일기

규칙에 대해

by starka

"오늘 회사에서 깨졌어."


친구의 짜증 섞인 목소리에 왜냐고 묻자 친구는 기다렸다는 듯 응어리를 쏟아냈다. 이유인즉슨 사수에게 보고하는 파일이 있었는데 콤마 하나, 온점 하나 같이 사소한 부분을 수정해오라고 계속 시켰단다. 그것도 네 차례나. 참다 참다못한 친구는 네 번째 수정한 파일을 가지고 사수에게 갔는데 얼굴에 티가 많이 났는지 사수가 '짜증 나냐?'라고 물었다고 한다. 나 같으면 깜짝 놀라 당장에 '아닙니다!'하고 고개를 숙였을 텐데 이 친구는 할 말은 하는 성격이라 '짜증 나는 것은 아니고 이해가 안 된다'라고 대답했다고 한다.(가끔 보면 회사생활을 지속하는 것이 신기하다..)


그러자 사수는 널 골탕 먹이려는 것이 아니라 규정과 양식이 있기 때문에 그것에 제대로 맞춰야 한다고 설명해줬다고 한다. 이야기를 듣고 나는 친구에게 '그래도 화를 안 내셨네'라고 말했다. 친구는 '착하셔 원래'라고 답했다.


친구와 통화가 끝나고 곰곰이 생각해봤다. 사실 친구와 같은 문제는 대다수의 직장인들이 겪는 문제다. 특히 나와 또래의 사회초년생들은 이 문제에 대해 굉장히 심각하게 받아들인다. 우리 90년대 생들은 '자유'라는 단어와 '억압'이라는 단어에 굉장히 민감하다. '젓가락질 잘해야만 밥 잘 먹나요'라는 DJ DOC 노래의 인기를 반영하듯 우리 세대는 사회가 정해놓은 규칙과 대립하며 자랐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군대식 서열문화, 수직적인 관계, 정해진 패턴과 지켜야만 하는 규칙에 대해 알레르기가 있다. 게다가 구글, 페이스북 등 IT기업의 무서운 성장세와 더불어 그들의 성공 전략 중 하나가 '수평적인 조직문화'라는 것이 밝혀지자 알레르기는 더욱 심해졌다.


그래서 이 같은 알레르기를 극복하지 못한 친구들은 취업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퇴사를 결심했다. 2015년부터 서서히 불어오던 '퇴사 열풍'은 점점 커져 2019년인 지금은 '퇴사'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이 우리 부모님 세대에게 주던 두려움과는 달리 조금은 가벼운,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같은 의미가 됐다.


브런치에 올라오는 글들만 봐도 그렇다. 브런치가 처음 시작되던 해에 대상을 받은 작품은 티거장님의 작품인데, 삼성을 퇴사하고 퇴사의 이유와 상황에 대해 직장인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만한 내용이 들어있었다.(나 역시 티거장님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하지만 지금은 '퇴사'를 주제로 한 글들이 특별하지 않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어떻게 하려고 그래'라는 걱정 섞인 시선과 '대단하다'는 부러움 섞인 시선이 요즘은 '그렇구나' 정도의 반응이 전부다. 마치 성형수술을 고백한 연예인에게 용기 있다며 찬사를 보내던 대중들이 그런 연예인들이 많아지자 '그게 뭐 대수라고. 자기 마음인데'라며 시큰둥해진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퇴사를 결심하게 된 이유 중 하나인 '직장 내의 쓸모없는 규칙'이 과연 정말 쓸모없는 것들일까?


우리는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사회 속에서 서로 다른 사람들이 살아가려면 반드시 '약속'을 해야 하는데 그것을 우리는 법이라고 부른다. 회사도 하나의 작은 사회다. 그렇기 때문에 약속이 필요하다. 단순히 크고 작고의 문제가 아니라 둘 이상의 사람이 모여 업무를 한다면 약속은 반드시 필요하다. 약속이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사실 위 같은 사실을 우리는 살면서 많이 경험했다. 예를 들어 가장 가까운 대학생활로 가보자. 팀플을 하는데 A, B, C, D에 관한 자료조사가 필요해서 네 명이서 각각 조사 후 정리한 파일을 한 사람에게 보내기로 했다. 그런데 한 명은 한글로, 한 명은 워드로, 한 명은 PPT로, 한 명은 엑셀로 작업을 한 후 보낸다면 어떨까?


어떤 사람들은 당연히 시작부터 같은 프로그램으로 통일하자고 정했을 거라고 반문할 수 도 있다. 그리고 그게 회사 내 규칙과 무슨 상관이냐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상관이 있다. 원래 사람이 작은 단위에서의 문제점은 잘 파악해도 단위가 커지면 이야기가 다르다. 회사도 팀플도 맥락은 같다. 단위만 더 커졌을 뿐이다.


그러니까 내 친구의 사수를 두둔하자면 콤마 하나, 온점 하나도 회사 내 업무 규칙이기 때문에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누군가 '이건 이렇게 하자'라고 말했을 때 그것이 규칙이 되어 모두가 따르는 상황이면 그 규칙이 생겨난 이유가 반드시 있다. 그 누구도 일을 비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단지 신입들을 괴롭히기 위해 규칙을 만드는 사람은 없다.


나는 내 또래들이 회사 내의 규칙들이 단순히 생각했을 때 비효율적이고 '이걸 대체 왜 해야 해?'라며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 아니라 이유에 대해 생각을 했으면 한다. 이해해볼 노력도 하지 않고 성급한 판단을 내려 퇴사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았으면 한다.


물론 회사의 덩어리가 크면 클수록 처음에는 효율적이고자 만들었던 규칙들이 비효율적으로 변할 수는 있다. 그런 경우 합리적인 방법을 통해 규칙을 수정해야 할 일이지 그것을 나와 맞지 않다고 생각해서 회사를 떠나는 것은 반드시 옳은 길이라고 할 수는 없다.


끝으로 나를 포함한 우리가 모든 일에 있어서 배우는 자세를 잃지 않았으면 한다. 회사도 분명 배울 점이 있다. 나중에 창업을 하려고 마음을 먹은 사람들은 더더욱. 단지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조직에 물들어 나중에 들어올 후배들에게 똑같이 답답한 모습을 보이지만 않으면 회사 생활은 충분히 가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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