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침에 커피를 마시면서 문득 든 생각이 시간에 대한 것이었다.
스물일곱의 나이에는 서른이라는 숫자가 크게 와 닿지 않았다. 벌써 이만큼 살았는가 싶다가도, '에이 아직 서른이 되려면 그래도 3년은 남아있으니까!'라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흘려보낸 것 같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히 서른이라는 나이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지금은 잘 쓰지 않지만 '계란 한 판'이라는 말만 해도 그렇다. 30이라는 나이를 계란에 비유할 정도면 말 다했다.
그래서인지 나 역시 서른이라는 나이에 알게 모르게 의미를 많이 부여했다. 서른 되면 이거 해야지, 저거 해야지, 서른 되니까 이번엔 이렇게 해봐야지 하는 중얼거림 같은 계획들은 공기 중 진동으로 흩어져 지금은 찾아볼 수 없다.
어렸을 때 시선을 생각해보면 서른 살은 굉장히 큰 어른이었다. 아들, 딸 두 명정도 자녀가 있고, 24~30평 정도 되는 아파트에 중형 세단을 끌고 다니는 회사원. 그게 내 또래들이 가지고 있는 서른에 대한 이미지였다.
하지만 막상 서른이 되고 보니 대학교 신입생 때와는 별반 다를 게 없다. 여전히 짧은 머리에 나이키 운동화 차림이 가장 편하다. 스무 살에 비해 뽀얗지는 않지만 그래도 얼굴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하는 짓도 여전히 어리게 느껴진다. 다만 과음을 한 뒤 숙취는 스무 살 보다 훨씬 심하지만.
이렇게 별반 다를 게 없는 줄을 20대 후반의 나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일까, 아님 무의식에서 이미 '서른도 똑같애~'라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었던 탓일까, 나의 서른 살은 별 다른 이벤트 없이 흐지부지 넘어갔고, 서른한 살이 되었다. 여전히 실감은 나지 않는다.
그래도 20대와 30대 초입에 들어서 차이점을 말해보라고 한다면 걱정이 늘었다는 것이다. 자영업을 하다 보니 하루하루 매출 걱정, 차 할부금 걱정, 결혼도 해야 하는데 집 값이 너무 비싸서 걱정... 적어놓고 보니 죄다 돈 걱정뿐이다.
20대 때는 딱히 돈 걱정은 하지 않았다. 유복한 환경이라서가 아니었다. 대학교 친구들과 술을 마시다가 돈이 없어 집까지 10km를 넘게 걸어와도 돈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때는 막연하게 '나는 꼭 성공할 거야!' 하는 생각이 돈보다 먼저 들었다.
30대에 들어선 지금도 여전히 20대와 같은 생각을 하지만 결이 조금 달라졌다. '나는 꼭 성공할 거야!'는 생각이 '그래도 아직 젊으니까!'로 바뀌었달까. 20대보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조금 약해졌다. 단순히 나이의 앞자리가 바뀌었기 때문일까?
스스로에게 물었을 때 돌아오는 대답은 '아니다'였다. 20대 때 '나는 꼭 성공할 거야!'라는 맹목적인 믿음은 '나중에'를 내포하고 있었다. '나는 (나중에) 꼭 성공할 거야!'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던 것이다. '나중에'라는 말은 많은 것을 담고 있다.
1. 지금은 시간이 많아!
2. 지금은 일단 놀고 나중에 해야지!
3. 지금은 잘 모르겠고 시간이 지나면 알아서 성공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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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20대의 나는 성공할 것이라는 야망을 품은 것이 아니라 '나중에'라는 단어가 주는 달콤함에 숨어 시간을 흥청망청 써버렸던 것이다. 서른이 넘어서야 어른들이 그렇게 말하던 '시간은 금'이라는 말의 속뜻을 알았다. 시간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생산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는 것인데, 행동을 하지 않는 시간은 그저 유흥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20대 때는 알지 못했던 것이다.
조지 버나드 쇼가 말한 "Youth is wasted on the young"이라는 말처럼 젊은은 가치를 모르는 젊은이에게 주기 너무 아까운 것이다.
30대가 들어서, 또래보다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가 주변에서 들린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한 친구는 '열심히 했네!'라며 감탄하고 다른 친구는 '부럽다!'라고 말한다. 또 다른 친구는 '아 나는 뭐했나'하고 자책한다.
열심히 했네라고 감탄하는 친구는 자신 역시도 꿀리지 않게 차근차근 시간을 써서 결과를 만들어낸 부류고, 부럽다고 말한 친구는 이제야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안 부류다. 자책하는 친구는 아직도 시간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을 가능성이 많다.
흘러간 시간은 느끼기 어렵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다고 해서 시간이 흐르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무에 나이테가, 켜켜이 쌓인 지층이, 얼굴에 생기는 주름 하나하나가 시간이 흐르고 있음을, 무엇보다 빠르고 무겁게 내려앉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다.
공자가 말한 '이립'의 나이에 경제적인 기반을 마련한 소위 성공한 친구들을 보면 그들은 20대, 혹은 그 이전부터 시간의 흐름을 차곡차곡 쌓았다. 필요한 지식을 공부하고, 종잣돈을 모았으며, 규칙적인 운동을 통해 체력을 닦았다. 자기계발서에 반드시 등장하는 이야기들이다. 책을 읽어라, 저축해라, 운동해라!
그러니까 우리가 지나간 시간에 대해 현재 후회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시간이 그냥 흐르도록 내버려 뒀다는 것이다. 열심히 일하거나 치열하게 공부해라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다. 삶에서 내가 하고 싶은 일, 이루고 싶은 일, 아니면 내가 되고 싶은 인간상이 있다면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그 목표를 위해 자그마한 일 하나라도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서른에서 한 살 더 먹은 올해 초에 나는 목표를 재설정했다. 나는 소설가가 되고 싶다. 하루키 같은 소설가가 되어 장편 소설도 여러 권 내고 심심할 때 에세이도 쓰면서 그것을 또 책으로 내고 싶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매일매일 느리지만 글을 쓰는 것 밖에 다른 방도가 없었다. 목표를 세우면 의외로 해결책은 간단하다. 다만 우리가 견딜 수 없는 것은 시간일 뿐이다. 나를 예로 들면 '나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소설가가 될 거야!'는 원대한 목표를 세우면 '아 좋아 이제 머릿속에 있는 이 끝내주는 아이템을 바로 당장 써서 투고를 해보자!'는 생각을 하며 달콤한 꿈을 꾼다.
하지만 머릿속에 좋은 아이템이 있는 것과 그것을 글로 써서 풀어내는 것은 전혀 다른 작업임을 그다음 날 바로 알게 된다. 목표를 세우면 그것을 이루는 방법은 다른 것이 없다. 그저 꾸준히 성실하게, 한 계단 한 계단 오르는 수밖에.
내 또래뿐 아니라 우리 사회의 대부분은 앞으로의 삶에 크게 희망을 가지지 않는다. 구체적인 이유를 정확히 꼬집기는 힘들다. 내가 태어난 해부터 지금까지 줄곧 들어오던 '경제 불황' 때문인지, 계속해서 치솟는 부동산 가격 때문인지, 물가 상승률에 반해 턱없이 부족한 임금 인상 때문인지 아니면 앞에 열거한 모든 것들 때문인지 정확히 대답할 수는 없다.
희망이 없는 사회는 사람으로 하여금 꿈을 잃게 만든다. 꿈을 잃으면 목표도 사라지고 목표까지 가기 위한 여정인 노력은 기성세대의 잔소리에 불과한 것으로 평가절하된다. 나 역시 그렇게 생각해왔다. 부모님 세대와 지금 세대는 너무도 다르고, 그때의 노력과 지금의 노력의 질이 다르다고. 그때는 10의 노력과 10의 성실함으로 내 집 마련과 한 가정을 건사할 수 있었지만 지금 세대는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돌이켜 보니 30여 년 동안 살아오면서 그렇게 기성세대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노력의 가치를 부정하고, 노력은 사람을 노예로 만드는 것이라고 매도하며 살았다. 비겁하게 사회 전체가 겪는 고통을, 한 세대의 탓으로 돌리고 나는 그 뒤에 숨어 태평하게 시간만 속절없이 흘려보내고 있었던 것임을 자각한 것이다.
무엇이든지 해보고 나서 평가를 하는 것과 해보지도 않고 평가하는 것은 진부한 말로 하늘과 땅 차이다. 내가 지금부터 '노력'한다고 해서 내가 원하는 꿈에 가까이 가지 못하고 스러질 수도 있다. 경제적으로도 실패해서 내 집 마련은커녕 결혼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노력'의 가치가 부정당하거나 시도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 아님을 이제는 안다.
로또도 사야지 당첨 확률이 나오듯이, 노력도 해봐야 결과가 나오질 않겠는가? 때로는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봐야 알 때도 있다.
막막하고 앞이 보이질 않는 시기지만 모두가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간다면, 버틴다면 언제고 볕 뜰 날이 오지 않을까?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는 모두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내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