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 속 흐릿하게 남아있는 치과의 첫 기억은 엄마인지, 아빠인지 모를 누군가의 손을 꼭 붙잡고 터져 나오는 울음을 간신히 참으며 진료대기실에 앉아있는 모습이다. 어린이 전문치과가 아니었기 때문에 어린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많았었고 하나같이 표정은 굳어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치과의 위이이잉 돌아가는 기계소리는 긴장을 더 고조시켰고 내 이름이 불렸을 때에는 겨우 참고 있던 울음이 입 밖으로 새어 나와 치과가 떠나가라 울었었다.
진료대에 누워 눈을 가린 채, 8살 작고 작은 내 입 안에 여러 가지 기계가 들어갔고 가끔은 주삿바늘이 잇몸을 찔러 내 모든 감각을 마비시키곤 했다. 치과의사 선생님은 아프지 말라고 놓는 주사라고 했지만 그 주사가 더 아팠고 움직이지 못하게 나를 누르고 있는 간호사 언니의 손은 세상 그 무엇보다 무겁고 무서웠다.
어릴 때 치과의 대한 기억이 좋지 않아서 일까? 나는 20살 대학생이 되어서도 치과 가는 것이 무서웠고 진료를 미루고 미루다 이(teeth) 통증이 치료의 고통보다 더 커진 것 같을 때쯤이면 마지못해 치과를 가곤 했다.
한 번은 매복 사랑니(*치아가 뼛속에 매복되어 잇몸 밖으로 나오지 못한 아래위 턱의 세 번째 큰 어금니) 때문에 학교 앞 치과를 간 적이 있는데 잇몸을 절개하고 치아를 잘게 부순다음 꺼내야 하는 작은 수술을 진행해야 한다고 했다. '마취하면 아프지 않다.'는 치과의사 말을 들은 채 만채 잔뜩 겁을 먹고 병원을 뛰쳐나왔지만 하루도 되지 않아 다시 치과로 돌아가야만 했다. 이미 치아가 신경을 잔뜩 누를 때로 누르고 있었기에 내가 참을 수 있는 고통의 한계를 지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 치과의사 선생님의 말은 다 거짓말이었다. 8살 치과치료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엄청난 고통이 따랐고
수술 중간 치료를 멈추고 구토를 할 정도로 매복 사랑니를 발치하는 과정이 녹록지 않았다. 눈물, 콧물 다
흘리며 1시간 30분가량의 수술을 마쳤고 집으로 돌아와 마취가 풀려가는 볼을 붙잡고 두 번 다시 치과를 가지 않겠다 부질없는 다짐을 했었다.
그 이후 10년은 치과를 갈 일이 없었다. 치과를 가지 않기 위해 치아관리를 정말 열심히 하기도 했고 인생
최고의 성형 다이어트의 연속으로 디저트, 술, 탄산음료 등 입에도 대지 않았기에 자연스레 치과와는 멀어졌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관리를 열심히 한들 '시간'이라는 녀석에게는 당해낼 재간이 없었고 나는 20살 이후 11년 만에 다시금 치과를 찾게 되었다.
단순한 충치로 인한 인레이 치료(*손상된 치아를 파내고 새로운 보형물을 넣어 치아의 기능을 회복시키는 치료)를 권유받았는데 충치를 파내는 과정에서 약간의 시림만 있을 뿐 별다른 고통이 수반되지 않아 너무 편안하게 치료를 받았다. '이제 나도 어른이구나.' 생각하며 더 이상 진료의자가 무섭지 않았고 입 안을 비추는 조명이 두렵지 않았다.
성장하는 시기가 지났으니 고통스러운 치료는 끝나겠구나라고 안심하며 인레이에 사용할 보형물을 선택하기 위해 상담실에서 치위생사 선생님의 말을 듣고 있는데 난 또다시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이게 되었다.
양쪽 어금니, 금으로 인레이하시면 70만 원입니다.
내 귀를 의심했다. 응? 70만 원? 2019년 당시 내 월급 220만 원인 것을 감안하면 대략 30%에 해당하는
금액이 한순간에 나가야만 했다. 충치의 범위가 넓고 깊어서 아말감으로는 진료가 어려웠고 금, 세라믹, 레진 중에 선택할 것을 권유받았는데 무엇을 선택하던 70만 원에서 큰 차이가 나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아는
인력을 총동원해 인레이 가격을 알아보았지만 대부분 비슷한 가격이었고 굳이 다른 곳을 가서 처음부터 다시 하는 것은 더 큰 낭비였기에 난 여기서 5개월 무이자 할부를 긁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갑작스러운 지출과 함께 나는 엄청난 시간 외 근무 및 출장을 자진했고 튼튼한 이를 가진 대신
체력과 활기를 잃으며 5개월 동안 70만 원의 카드값을 메꾸고 또 메꿨다.
얼마 전 엄마가 작년부터 진행하던 외숙모 치아 치료가 마무리가 되었으며 그 비용이 무려 2천만 원에 달한다고 이야기 했다. 대체 무슨 치료를 하면 대학 병원에서 배 가르는 수술만큼 비용이 나온단 말인가 싶지만
금으로 인레이 2개 하는데도 70만 원이 드는데 임플란트, 틀니 치료 등 보철치료가 많으면 많을수록 그 정도 돈은 당연히 들어가는 것 같았다.
안타깝게도 우리 모든 신체부위는 나이가 들수록 노화가 진행될 수밖에 없고 의식주를 행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치아는 반드시 지켜야 하는 곳이기에 2천만 원의 투자는 매우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어릴 때 나에게 치과는 내가 보지 못하게 눈을 가리고 시끄러운 소리와 함께 어떤 기계 인지도 모를 기계들을 입안에 넣는 것이 두려웠고, 나를 짓누르는 간호사 언니의 무게가 고통스러워 치과 가는 것이 너무 무서웠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는 영수증에 그 언젠가 찍힐 2천만 원이라는 글자가 너무 무섭고 무서울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