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시간표도 내 마음대로 짜고 다양한 자유가 주어진 대학생활이지만 중,고등학교시절 빡빡한 시간표에
적응해버린 나는 갑작스럽게 주어진 공강(*수업이 없는 시간)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막막했다.
드라마에 나오는 멋진 선배도 없었고 학과 내 동아리 또는 중앙동아리는 모집 전이었기에 공백을 메꿀 수 있는 특별함도 없었다. 부푼마음을 안고 온 대학에서 입학 첫날 부터 바스러져 가는 로망의 끝이라도 붙잡고자 어색하게 모여있는 동기들을 모아 술집으로 향했다.
술은 낮술이지! 가자
내가 다닌 대학교 앞에는 '댓거리'라는 술집이 즐비한 거리가 있었다. 청춘들의 낭만의 거리라고도 불리우는 그 거리에는 당연히 낮부터 술을 파는 곳이 많았고 우리는 호기롭게 성인임을 인증하는 주민등록증을 내밀며
당당히 술을 시켰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술잔에 술을 따라 한 모금하는 순간 소주 특유의 단향이 입안을 감싸안았다. 뭔지모를 당황스러움과 함께 다시 한 번 단향을 느끼고자 소주를 마셨고 나는 그렇게 소주의 단맛에 빠져 나를 놓아버렸다.
그날 이후 주 7일은 소주와 함께했고 과음을 한 다음날이면 깨질 듯한 두통에 다시는 술을 먹지 않겠다 다짐하면서 그날 밤 다시 소주를 마셨다.
20대 중반까지 술은 정말 맛있어서 마셨던 것 같다.
친구들과 함께 하는 술자리의 분위기도 좋았지만 그보다는 소주가 너무 달고 맛있었다. 거기에다 순하리 (*과실주)를 시작으로 진짜 달콤한 술들이 소주시장을 지배하면서 나의 20대의 절반은 늘 소주와 함께했다.
20대 후반, 직장생활 3년차에 접어들 무렵, 나의 주종은 소주에서 소맥(*소주, 맥주를 섞은 술)으로 바뀌었다.
서비스직에 종사하며 길게는 하루에 12시간씩 말을 하니 입안에서 신물이 올라오기 다반사 였고 그 신물을 잠재우는데 알싸한 소맥은 특효약이였다. 이때부터 술의 달달함의 정의는 알싸함으로 변했고 나는 유달리 에너지를 많이 소비한 날이면 흰거품이 가득한 소맥으로 나를 위로했다. 위로가 너무 과했던 탓일까? 아니면 나이가 들어서일까? 과음을 한 날이면 20대 중반까지는 하지 않던 구토를 하기 시작했고 인생 최초로 술 때문에 연차를 쓰기 시작했다. 다행이 좋은 상사를 만난 덕분에 연차사용 이유가 '과음'이라는 것에 혼이 난적은 없지만 스스로에게 놀라며 '과음을 절대 하지 않겠다.'고 여러번 다짐했다.
그러나 그 다짐도 늘 컨디션이 회복되고 나면 언제그랬냐는 듯 잊어버렸다. 그도 그럴 수 밖에 없는것이 20대 후반에 재직중이던 회사는 34년 인생을 통틀어 가장 보람찼고 즐거워 하면서 가장 많이 상처를 받은 직장이었다. 보람찼고 즐거웠기 때문에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가장 상처를 많이 받았기에 늘 위로가 필요했었다. 친구와 가족과 사랑하는 이로도 채워지지 않는 그런 위로가 절실했다. 소맥은 입안을 개운하게 만들줌과 동시에 직장생활에 받친 답답함과 체증을 한방에 내려주었다.
20대 후반 나에게 술은 가장 큰 위로 그 자체 였다.
30대가 되고 결혼을 하고나서는 술을 조절하기 시작했다. 과음을 하고 난 다음 날이면 이틀이 지나도 컨디션이 회복되지 않았고 이것은 가사일과 직장일 모든것의 효율성을 떨어트려 나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하지만, 가정의 평화와 삶의 활력을 위해선 적당한 술의 흡수가 필요했고 이제는 술 자체보다는 술을 함께 먹는 사람, 그리고 그때의 분위기를 느끼며 술을 즐기기 시작했다. 사람과 분위기를 느끼기 시작하니
특별히 주종을 가리거나 술 맛에 집중하는 시간이 줄었고 과음하는 횟수도 현저히 낮아졌다.
만약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음을 하는 날이 있다면 그것은 함께먹는 사람도 너무 좋고, 분위기도 매우 황홀하며, 술도 딱 내 입 맛에 맞을 때이다. 동생과 함께 기울이는 술은 편안하고, 직장동료와 함께 그 날의 스트레스 풀며 먹는 술은 시원했으며, 남편과 하루를 마무리하며 먹는 술은 열심히 살았구나를 느끼게 해주었다. 30대가 되어도 과음을 하고 난 다음날이면 '이제는 그만하자' 라고 다짐하지만 그때의 사람, 그때의 황홀함, 그때의 느낌 잊지 못해 다시금 그 사람들과 그 분위기에서 나는 술잔을 들곤 한다.
30대 나에게 술은 '내가 그래도 잘 살아가고 있구나'라는 안도감 인 것 같다.
가족들에게 연락도 제대로 못할 만큼 바쁘게 살았지만 나와 함께 술잔을 기울여 주는 동생을 보며
'그래도 내가 언니노릇은 잘했구나' 라는 안도감.
회사에 그렇게 의견차이로 언성을 높이고 서운하고 서로를 귀찮아 하지만 그래도 술 한잔하자고 하면 군말 없이 같이가는 동료를 보며 '그래도 내가 최악의 파트너는 아니구나' 라는 안도감.
집안일과 회사일 그 어느것 하나도 잘하는 것 없어 씁쓸해 할때 남편과 함께 맥주한 잔을 기울이며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와 서로를 향해 짓는 미소에 '나는 오늘도 괜찮게 살았구나'라는 안도감
나는 오늘도 이렇게 '안도감'을 느끼기 위해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과음을 하고 난 다음 날이면 어김없이 아픈 머리과 위장을 부여잡고 술을 먹지 않겠다 다짐하면서도 술잔을 자꾸 채우는 이유는 아빠와함께 술을 처음 마셨던 그 어린 날 부터 이 글을 쓰는 34살 지금 이 순간까지 술은 우리가 무너지지 않을 수 있게, 이 험한 세상 재미를 느끼며 잘 살아 갈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이 아닐까?
그 도움이 행복으로 번지고, 그 행복이 삶의 활력소가 될 수 있다면 적당힌 취기와 적당한 알딸딸함을 위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