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같이 일하는 헨젤이에게 "껌딱지 선생님은 참 착한 사람인 거같아요."라는 말을 들었다.
10대 때만 종종 듣던 말을 30대 중반에 들으니 감회가 새로우면서도 당황스러웠다.
갑자기 나에게 착한 사람이 라니, 칭찬하는 말은 아닌 듯한 뉘앙스에 왠지 모를 불안감에 휩싸여
다른 이야기로 넘어가려는 그의 말을 끊고 이유를 물어보았다.
헨젤이가 바라보는 나의 모습은 이랬다.
첫 번째, 자기주장을 강하게 하지 않고 상대의 의견에 많이 따르는 것 같다.
두 번째, 굳이 나서서 친목도모의 자리를 만들고 스트레스받는다.
세 번째, 사람을 너무 빨리 좋아하고 무조건 좋게 본다.
'어떻게 이 모습이 착한 사람으로 비칠 수 있지?' 라며 궁금해하며 헨젤이 의 그다음 말을 기다렸고
헨젤이의 설명에 나는 망치로 머리를 한대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선생님은 일을 할 때 선생님의 기분보다는 상대의 감정, 상대의 성향 더 신경 쓰고 그런 것에 스트레스받지만 티를 내지 않고 끝까지 좋게 마무리하려고 노력해요. 그리고 본인 주장이 약하고 너무 착해요. 너무 착해서 자꾸 본인이 안 해도 되는 고민을 하고 또 굳이 걱정을 해요'
착한 아이 콤플렉스라고 혹시 알아요? 선생님이 착한 아이 콤플렉스 같아요.
나는 아니라고 애써 부정했지만 사실 헨젤이 의 말이 틀린 것 하나 없었다. 나는 갈등이 싫어 상대의 의견에 대부분 따랐고 또 굳이 자청해서 조직 내 소모임을 만들어 사람들이 모두 잘 지낼 수 있기를 바랐다. 또한 타인의 나쁜 행동은 무시한 채 좋은 점만 바라보고 칭찬했다. 그러한 과정 속에서 스트레스받기도 하고 사람에게 실망해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 단 한 번도 입 밖으로 꺼낸 적이 없었고 상대의 의견을 따른 결과가 좋지 않아도 타인을 탓하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고생했다 말하며 결과에 대한 책임만 질뿐이었다.
아마 나는 조직에서 모나고 튀지 않는, 사랑받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껌딱지는 성격이 참 좋아'
'껌딱지는 사람이 참됐어'
'껌딱지는 같이 일하기 참 좋은 사람이야'
이런 사람이 되기 위해, 사랑받는 사람이 되기위해 화가 나도 말이 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10년간의 직장생활 속에서 착한 사람으로 변하고 있었던 것 같다. 생각해보면 10대 때 내가 그린 30대 직장인의 모습은 착한 사람이 아니라 멋있는 커리우먼이였다. TV 드라마 속에 나오는 멋진 커리우먼들 처럼 나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부당한 일에 당당히 맞서며, 좋은 성과를 내고 인정받는 그런 커리우먼.
하지만 지금의 내 모습은 그때의 상상과 정반대인 착하고 착한 사람이 되어있었다. 물론 직장생활에서 모나지 않고, 튀지 않게 행동한다는 것은 직장생활의 팁이 될 수 있다. 성과는 좋지만 자기주장이 강하고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사람은 조직 내에 원활한 인간관계를 맺기 어렵다. 하루에 8시간을 넘게 일하는 회사에서 혼자가 된다는 것은 아무리 강한 사람이라도 버티기 어려울 터. 아무리 싫어도, 아니 꼬아도(*아니꼽다: 하는 말이나 행동이 거슬려 불쾌하다.) 회사를 그만두지 않는 한 그 회사의 일원으로 융화될 수 있도록 스스의 말과 행동을 조절해야만 한다. 다만 그 조절에서 적정선을 찾지 못하면 나처럼 착한 아이로 변하는 것이 아닐까?
헨젤이와 이야기하는 와중에도 최대한 갈등은 피하며 타인에게 인정받고 사랑받고 싶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이왕 태어난 세상, 좀 아름답게 살면 안 되는 것일까? 꼭 갈등을 마주하고 얼굴을 붉히며 내 주장을 관철시켜야만 할까? 복잡한 내 표정을 한참 보던 헨젤이가 따뜻한 목소리로 말했다.
"착한 아이로 살아도 괜찮아요, 그런데 선생님이 스트레스받고 아프잖아요. 내가 아픈데 왜 남의 생각해요.
사랑을 받더라도 내가 신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건강해야 그 사랑을 온전히 느낄 수 있어요.'
헨젤이의 말이 맞았다. 내가 그 사랑을 다 받아들일 몸과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는다면 그 수많은 사랑과 타인의 인정이 무엇이 대수 일까? 착한 아이로 사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착한 아이로만 살려는 것이 문제라는 것을 나는 직장생활 10년 만에 깨닫게 되었다. 이제 나는 긍정적인 방향으로의 변화를 위해, 나를 위한 고민을 지금부터 시작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