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궁금증. 4 우리 집 고양이는 행복할까?

나는 좋은 반려 가족일까?

by 껌딱지

나는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의령군 칠곡면 외조리 화촌 부락이라는 시골 중에 시골에서 살았다.

그때 당시 시골의 불문율은 집을 보호한다는 목적에 강아지를 키우는 것이었다.

요즘은 1cm의 강아지 말하며 시골 개의 동물복지 논란이 있긴 하지만 내가 살았던 그 시기, 그 동네에서

강아지는 닭과 토끼 등 가축이라는 재산에 손해를 끼치지 않아야 하기에 당연히 짧은 목줄에 묶여 하염없이

만 지키는 그저 그런 동물 중 한 마리였었다.


우리 집 또한 '설이'라는 하얀 진돗개를 키우고 있었고 역시나 1cm의 공간에서 단순히 우리 집을 지키는

강아지로 살고 있었다. 그때는 '설이'의 행복이라는 개념보다는 우리 집에서 우리 가족을 위해 집을 지키는 일을 하고 있으니 1cm의 공간에서라도 쾌적하게 보낼 수 있도록, 배변을 치우고 물청소를 하고 매일 깨끗한 밥과 물을 공하며 '설이' 일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시절의 나는 반려동물이라는 개념에 무지했고 그 무지는 당연히 '설이'의 행복에 관해 신경 쓰지 않았다.

세월이 흘러 대학을 입학하며 우리 집은 주택에서 아파트로 이사를 가게 되었고 우리 집 '설이'는 이름 모를 어떤 아저씨 집으로 입양을 가게 되었다. '설이'를 입양 보내며 우리 아버지는 '잡아먹지는 마소'라고 부탁을 했고 그 아저씨도 알겠다고 했지만 우리 가족은 그 뒤 '설이'의 소식을 단 한 번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내 인생의 첫 반려동물을 떠나보냈고 어릴 때 행동이 참 많이 무지했구나를 깨닫게 된 것은 대학교 2학년 어느 방학 때쯤이었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알게 된 선후배들과 술자리를 하고 있는데 심리학과 재학 중인 한 선배가 '나 요즘 기숙사에서 몰래 고양이 키우잖아' 라며 한숨을 푹 쉬는 것이 아닌가? 갑자기, 그것도 기숙사에서 웬 고양이를? 이유를 물어보니 동물행동학과 관련된 과제에 고양이 손 훈련 영상을 리포트로 제출할 계획이었고, 고양이는 훈련이 잘 되지 않는 동물이기에 고양이를 훈련해서 영상을 찍으면 A+는 당연한 것이라 도전을 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손 훈련 영상을 다 찍고 난 후 고양이가 필요가 없는데 얘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이미 고양이 엄마에게서 떨어진 지 꽤 됐기 때문에 다시 합사는 불가능하고 그렇다고 본인은 절대 키울 수도 없다고 했다.


나는 너무 무책임한 모습에 갑자기 화가 났고 홧김에 그 술자리를 박차고 나와버렸다.

'어떻게 사람이 저렇게 무책임할 수 있지? 어른인척은 다하더니....'

왜 그렇게 분노가 치밀어 올랐는지 모르겠으나 너무 화가 나 나 자신을 주체할 수 없었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화가 가라앉지 않았다. 흥분이 여전한 채로 다음 날 핸드폰을 들어 그 선배에게 연락했고 나는 필요가 없어진 작고 여린 고양이를 우리 집으로 데리고 왔다.


병원에 데려가 검사를 진행하는데 예방접종이 하나도 되어있지 않고 몸에는 진드기가 가득했다. 의사 말로는 아마도 엄마 고양이가 길고양이였을 것이고 지금은 생후 2개월이 조금 지났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렇게 어린 고양이를 엄마와 강제로 떼어놓다니... 인간의 이기심을 직접 경험하며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고

작고 여린 고양이를 품에 안으며 '내가 엄마가 되어줄게'라고 속삭였다.


그렇게 나는 2번째 반려동물을 맞이하게 되었다.

지금부터 나는 고양이의 엄마였기에 '어떻게 하면 우리 집 고양이가 행복할 수 있을까?'라고 고민을 시작했다.

이름은 못 생기에 지어야 한다는 인터넷 속설(?)을 따라 '똥짜바리'라는 이름을 지어주었고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열심히 공부하고 모르면 또 수의사 선생님께 물어가며 나와 함께 하는 우리 '짜바리'가 행복하길 진심으로 빌었다.


하지만 대학교 2학년,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덜 자란 성년 아르바이트 자취생에게 '엄마'의 역할은 쉽지만은 않았고 그 중 금전적인 부분은 혼자 감당하기엔 너무 벅찼다. 돈을 더 벌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늘리다 보니 우리 '짜바리'가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집으로 돌아와 나만 보면 품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짜바리'를 보며 '설이'가 떠올랐다. 우리 '설이'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매일 하루종일 1cm 그 공간에서 주인이, 내가 한 번쯤 쓰다듬어 와 주길 바랬을까? 나는 절대적으로 좋은 가족이 아니었구나를 깨닫게 되었다.

그 시절을 되풀이하기 싫어 아르바이트 시간을 조절해 '짜바리' 함께하는 시간을 늘렸지만 통장잔고는 바닥을 보였고 결국 친구에게 손을 벌리게 되는 상황까지 오게 되었다. 그런 나에게 돈을 빌려주던 절친은 조심스레 본인에게 입양 보내는 것을 권유했다.


이미 반려묘를 키운 경험이 있고 집도 경제적으로 여유로우며 농사일을 하시는 부모님과 늘 함께 농장으로

출퇴근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집고양이를 밖으로 데리고 다닐 때 스트레스가 있겠지만 그 부분은 의사와 상의해서 잘 케어하겠다고 말하며 어느 것이 더 '짜바리'가 더 행복할 수 있을지 고민해 보라 했다.

또 무엇보다 그때의 나는 '짜바리'의 엄마로 남아있기엔 여러 가지 한계를 넘어서고 있었다.


결국 나는 친구 집으로 '짜바리'를 입양 보내며 '짜바리'가 더 행복할 것이라는 부끄러운 위안을 했고

그렇게 나의 두 번째 반려동물을 떠나보냈다.


두 번째 반려동물과 헤어진 지 6년이 지난 27살, 회사 납품차에 실려온 생후 4주 된 고양이 2마리를 구조하게 되었다. 아마 추운 겨울 어미 길고양이는 따뜻한 곳을 찾아 차 안에서 새끼를 낳았고 그걸 몰랐던 납품차 직원분은 200km 떨어진 이곳으로 아이들을 데리고 오게 되었던 것 같다. '짜바리'에 대한 죄책감 때문이었을까?

나는 어린 두 고양이를 보자마자 동물병원으로 달려갔고 간단한 진료와 함께 분유 먹이는 법, 체온 유지하는 법 등의 주의사항을 배웠다. 하지만 9-18시 출퇴근하는 직장인이 4주 된 고양이를 돌보는 데는 무리가 있었고 또다시 아이들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울며 불며 늦은 밤 지역 커뮤니티에 도와달라 글을 쓰게 되었다.


다행히 지역 캣맘의 도움을 받아 '시하'라는 너무 고마운 위탁묘에 아이들을 맡길 수 있었고

2015년 겨울, 나는 또 다시 고양이 엄마가 되었다.


당시 구조한 고양이는 2마리였지만 치즈 냥이(*노란 고양이)는 좋은 분께 입양이 되었고 검은 고양이였던

지금의 '아옹이'만 내가 키우게 되었다. 직장을 다니며 모아둔 돈도 있었고 자취방 주인아저씨의 양해도 받았기에 나는 당시 내가 해줄 수 있는 모든 애정과 시간, 돈을 '아옹이'에게 쏟아부었다. 배 위에 올라 고로롱(*고양이가 기분 좋을 때 내는 소리)을 들으며 잠들었고 주말에는 무조건 집에서 '아옹이'와 함께했다.

이것이 내가 '아옹이'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고 무지함에, 책임감 없이 떠나보낸

'설이'와 '짜바리'에 대한 사죄라고 믿었다.


그 믿음 덕분일까? 우리 '아옹이'는 큰 병치레 없이, 나한테 큰 하앍질(*기분이 나쁘거나 불쾌할 때 내는 소리) 한번 없이(?) 7년의 세월을 함께했고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우리 남편 발에 걸쳐 나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다.

지난 7년이란 시간 동안 우리 '아옹이'는 행복했을까? 외롭지 않았을까?

양해 한번 없이 7년 동안 4번의 이사를 했고, 동의 없이 갑작스레 아빠와 '다롱이'라는 여동생(*3살 고양이)이 생겼는데 나한테 서운한 것이 없었을까? 나는 정말 '아옹이'에게 좋은 엄마였고 지금도 괜찮은 엄마일까?


가까운 미래에는 동물 번역기가 세상에 나와 남은 시간만큼은 정말 우리 '아옹이', '다롱이' 가 좋아하는 것, 즐거워하는 것을 맞춤형으로 다 해주고 또 아프다면 늦지 않게 병원에 데리고 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삶이 다하는 그 어느 날, '엄마, 행복했습니다.'라고 웃으며 떠날 수 있기를...


그리고 감히 바래도 될지 모르겠지만 우리 '아옹이', '다롱이'가 무지개다리를 건너는 그 끝에

꼭 '설이'와 '짜바리'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가는 길이, 혹시나.. 이 못나고

부족한 나를 기다리는 그 시간들이 외롭지 않고 넷이서 즐겁기를 간절히 또 간절히 기도해 본다.


나는 늘 궁금하고 궁금하다. 과연 나는 우리 고양이들에게 좋은 반려 가족이 맞을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오늘의 궁금증. 3 나는 시어머니에 어떤 존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