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연애를 막 시작했던 그때, 세상을 살아갈 이유를 잃어버린 채 매일을 눈물로 마무리했었다.
허망하게 무너져 가는 나의 두 손을 꼭 잡고 함께 묵묵히 버텨준 이가 지금의 우리 남편이었고
남편과의 결혼은 내가 인생을 살아갈 이유를 되찾게 된 계기가 되었다.
신혼여행지에서는 나는 남편에게
'자기 어머님, 아버님께 내가 진짜 잘할게!! 나 딸 같은 며느리가 될 수 있어!!'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남편은 '며느리는 딸이 될 수없어, 무리하지 말자'라며 '지금 집안의 분위기를 네가 바꾸지
않았으면 좋겠어, 부탁해' 라며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보통 남편들은 아내가 저렇게 말하면 좋아한다고 하는데 아무런 감정의 동요 없이 인생 2회 차 같은
남편의 말에 서운함을 느꼈지만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며 남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남편이 설명한 시댁의 분위기는 친정과는 정반대로 지극히 개인주의였다.
생일과 명절에는 아침 또는 저녁 한 끼 같이 먹고 각자의 시간을 보내며 연말, 새해에도 특별한 일 없이 개인 시간을 보낸다고 했다. 심지어 김장도 어머님 친구들과 함께 할 뿐 가족들과 함께 하지 않았다. 나는 '그래도 며느리가 들어오면 다르지 않을까?어머님도 사실 외로움을 느끼지 않으셨을까?'라고 물었지만 남편은
'그 외로움을 며느리에게 채워달라면 안되지'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며느리가가 된다는 것은 남편이 말한 것처럼 이성적으로 흘러가지 않았다.
어머님은 정확히 명명 하시진 않으셨지만 1주일에 1번씩 전화, 한 달에 1번씩 같이 식사 등 기존에 남편에게 들은 것과는 다른 것을 원하셨고 나는 며느리도 자식이니까 함께 해야지라고 생각하며 어머님 말씀을 최대한 따르려 노력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 노력의 결과가 나의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 바빠서 전화를 못하거나 시댁에 가지 못하면 시어머님은 어김없이 나에게만 전화를 걸어 서운함과 화를 풀어내셨다. 1년에 한 번씩 있는 김장도, 명절에 요리도 나에게만 함께 하길 원하셨다. 그리고 매번 전화를 하거나 얼굴을 뵙고 헤어질 때쯤에는 남편 밥을 차려주고, 어떤 것을 먹이고 어디가 아픈지 살펴보고 잘 보필(?)할 것을 당부하셨다. 나를 위해서 했다는 국은 남편이 좋아하는 국이었고 명절에는 똑같이 피곤해도 남편은 방에서 재웠고 나는 딱히 일을 하진 않았지만 아들이 왜 피곤한지를 설명하며 시부모님과 함께 있어야 했다. 많은 것을 함께 하길 원하셨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남편의 건강상태가 어떤지, 하루 스케줄이 어떤지 등 남편의 이야기만 하실 뿐이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화가 나거나 서운하거나 하는 감정은 들지 않았다. 다만 가끔 '내가 왜 결혼했지? 시부모님이 나에게 아들을 맡기신 건가?'라는 의문이 들 뿐이었다. 나는 시어머니에게 아들의 소식을 전하고, 음식을 배달하고, 편식하는 음식은 꼬아서(*'설득하다'의 경상도 사투리) 먹여야 하는 사람이었다.
품 안의 자식을 장가보냈기에, 매일 보던 아들을 매일 볼 수없기에, 하나밖에 없는 귀한 아들이기에
모든 것이 궁금하고 안타까우시고 걱정이 가득한 것은 당연한 것이라 생각한다. 나와 함께 살고 있는 반려묘도 내가 회사에 가있는 동안 뭐하는지 심심하진 않은지 걱정이 되는데 당신의 배 아파 낳은 자식은 오죽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