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사람 중에 스스로를 매우 객관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자기 자신은 절대 감정에 동요하지
않으며 객관적으로, 논리적으로 이해만 할 수 있다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본인은 모든 것을 인정한다고 했다.
직장생활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상사의 지시에 논리와 객관성만 있으면 무엇이든지 따를 수 있고 충성을 맹세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앞에서는 '예'라고 대답은 하겠지만 실제로 업무를 수행할 때에는 진심을 다해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했다.
또한 본인은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며, 아닌 것에 대해서 상대에게 주장할 때에도
감정에 절대 동요되지 않고 객관적인 팩트(*사실)를 기반으로 상대를 설득하거나 주장할 수 있다고 했다.
가끔 감정적으로 동요가 일어나기도 하지만 금방 괜찮아진다고 말했다.
왜냐하면 본인은 매우 객관적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멋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해야 할 말을 똑 부러지게 하고 큰 실수 없이 업무를 정확하게 처리하는 모습이 나와는 너무 달랐기에 직장에서 배울 수 있는 멘토가 생겼다는 사실이 안도감으로 찾아왔다. 워낙 이전 직장의 상사가 남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 참고 또 참으며 버티는 것조차 일이었던 곳이었는데 여기서는 최소한 버티는 것 자체가 일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에 약간 설레며 회사생활을 이어나갔다. 나는 똑 부러진 선임에게 이쁨 받는
후임이 되기 위해 맡은 업무를 빨리 숙지하고 정확하게 처리하기 위해 노력했다. 다행히 이전에 해보았던 업무들이었기에 적응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고 빠르게 해당부서에서 내 몫을 해내었다. 그 덕분에 선임와 두터운 친분관계를 형성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거리지 않았고 업무 쉬는 시간 흰머리도 뽑아주고 함께 산책하며
농담도 주고받을 정도로 매우 가까워졌었다.
하지만 너무 가까워지고 좋아했던 탓일까?
그가 말하는 '객관적이다.'의 모순들이 갑자기 눈에 들어왔다.
1년 사업 계획의 목표를 상의하는 데 있어서 의견 차이 심하게 갈린 적이 있다. 고성이나 욕설이 오간 것은
아니었지만 회의시간이 2시간이 넘을 정도로 길어졌고 지칠 대로 지쳐버린 상황이었다. 긴 회의를 마치고
혼자 남아 회의 결과에 따른 업무를 정리하는데 문득 토의를 통한 협의의 회의가 아니라 책임공방의 자리가 된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는 회의하는 동안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되 네가 책임을 지면 된다. 그게
객관적으로 논리적이니까 하고 싶은 대로 해라'라는 말을 반복했고나는 '개인이 하고 싶은 대로가 아니라
함께 대화를 해서 목표를 정하고 그에 맞춰서 함께해야 하는 것이 아니냐, 왜 자꾸 나보고 결정을 하고 책임을 져라고 하느냐'라는 말만 반복했다. 물론 조직생활에서 무엇을 직업가치관으로 두는지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지만 당시 나는 입사한 지 2개월밖에 되지 않는 신입이었고 1년의 전체 사업을 혼자 계획하고 판단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었었다. 하지만 선임은 본인도 들어온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았기에 충분히 판단할 수 있다고 말하며 모든 선택을 내가 하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에 대한 책임도 반드시 내가 질 것을 요구했다. 그게 논리적으로 맞으니까 말이다.
그 일이 있은지 2개월 후 부서 내 보직변경 명령이 내려왔다. 회사 내부의 인력부족 문제와 우리 부서 예산
부족 문제가 겹치면서 한 명이 타 부서로 전출을 가야만 했다. 나는 이제 겨우 해당 업무에 적응했는데
다른 부서로 변경되는 것은 원치 않았기에 인사팀에 '저는 보직변경을 하지 않겠다.'라고 의사를 전했고 결국 나의 선임이 타 부서로 전출을 가게 되었다. 문제는 분명 CEO실에서 이 문제를 논의하며 개인의 의견을 충분히 어필할 시간이 있었고 심지어 CEO가 "부서가 변경되지만 업무분장 중 10% 정도는 기존 부서 것을 해야 한다. 괜찮겠냐?"는 질문에 선임은 '괜찮습니다.'라고 답을 했지만 사무실에 돌아와 '진짜 괜찮아요?'라는
나의 질문에는 '안 할 건데요? 못하죠! 그리고 나는 이제 이 부서랑 영원히 안녕이에요. 우리도 이제 인사만 하고 지내죠?'라고 말했다.
무슨 뜻이냐는 나의 질문에 말 그대로 부서가 변경되었는데 왜 본인이 이 일을 해야 하냐며 '그건 객관적으로 안 맞는 것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예요.'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응? 뭐라고?
나는 이 날 정확히 깨닫게 되었다. 그동안 그가 말했던 할 말은 하는 사람이라는 것과 객관적이고 논리적으로 생각하고 말한다는 것의 전제는 신분의 본인의 위에 있는 사람이 아닌 아래이거나 동등한 사람에게만 해당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결국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한 객관성과 논리성을 가진 사람이었다.
이 일이 있은 후 그에게 있었던 나의 모든 존경심과 긍정적인 감정은 밑바닥을 치게 되었고 그를 계속해서
멘토로 두기에는 너무 어려웠다. 나도 모르게 살가웠던 행동들은 차가워지거나 업무적인 태도로 변하게 되었고 그에게 더 실망하지 않기 위해 거리를 두었다. 하지만 결국 일은 또 터지고 말았다.
1cm라고 넘겨두려 노력했던 모든 존경심이 0을 넘어서 마이너스로 내려가버린 일이.
보직변경이 결정 난지 하루 만에 다시 재보직명령이 내려왔고 내가 결국 부서를 변경하게 되었다.
변경된 부서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동료가 특정물건을 필요로 했고 나는 해당 물건이 이전 부서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선임에게 내려갔다. 당시 선임은 가족이 코로나-19에 감염된 상태로 매우 조심하고 있는 상태였고 사무실에 들어오지 말라고 손을 저었으나 잠깐이라는 생각에 '너무 필요해서요, 잠시만요'라고 말하며
해당 물건을 찾았다. 그리고 차후에 다시 가져다주겠다 말했고 '네'라고 말하는 그의 말에 별문제 없이 동료와 함께 사무실로 복귀했다. 그리고 정확히 2시간 후 CEO, 차장님, 타부서원들 모두가 속해 있는 사내 단톡방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00님에게 들어오지 말라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무실에 들어오셔서 이렇게 글을 남깁니다
라는 말을 시작으로 나의 행동에 대한 불쾌함을 여과 없이 드러냈고 거기에 최근 물건 분실 우려사태가 많이 일어나고 있으며 혼자 근무하고 있으니 특정물건이 필요할 때에는 본인에게 말하고 가져가라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 당시 급하게 처리해야 하는 업무가 있어 회사 단톡방을 보지 못했는데 내 주위에 모든 동료와 선임, 상사들에 나에게 '무슨 일이냐?, 그 00이가 너한테 왜 그러느냐?'라고 물으며 걱정을 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기존의 상황을 설명하고 사내단톡방에 죄송하다는 글을 남겼다. 또 사무실 내에서는 불미스러운 일을 만들어 죄송하다고 사과하며 어수선 상황을 정리했다.
단톡방에 글을 보는 순간 나는 화가 나거나 부끄럽거나 하기보단 '어쩌다가'라는 안타까움이 더 컸었다.
"이것이 본인이 말하는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행동일까? 조직생활을 조금이라도 해보았다면 회사 내 이의제기의 순서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았을 텐데"라는 안쓰러움과 동시에 남은 1CM의 존경심이 모두 없어져 버렸다.
물론 내 행동에도 잘못이 있었음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 행동을 공개적으로 지적하기 전에 그가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사람이라면 반드시 몇 가지 확인 절차 거쳤어야 했다.
본인의 현 상황이 회사 전체에 공유가 되었었는지, 본인의 행동에 어떤 절차적 오류는 없는지, 글에 감정이
담겨 있지는 않은지, 무엇보다 사무실에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면서 사람 많은 점심시간에 회사를
여유롭게 산책하는 그의 모습을 본 사람은 없는지 등 말이다.
객관적이고 논리적이라는 사전적 정의는 아래와 같다.
객관적: 자기와의 관계에서 벗어나 제삼자의 입장에서 사물을 보거나 생각하는.
논리적: 논리학적 지식에 합당한.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만약 스스로를 객관적이고 논리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혹시나 이 글을 본다면 이전의 자신을 돌아보며
본인의 논리와 객관성이 어쩌면 매우 주관적인 것은 아닌지, 그것을 이유로 타인을 본인의 기준에 맞추려고 하는 것은 아니었는지, 무엇보다 그 논리와 객관성이 사람을 가려 발현되는 것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며 한 번쯤은 '자기 객관화'를 꼭 해보았으면 좋겠다.
만약 그동안 본인의 모든 행동이 저기에 하나라도 속한다면 그것은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사람이 아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