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아픔을 너무 늦게 발견한 나 자신이 너무 미웠던 하루
나는 인생 N년차를 살고 있는 7살 아옹이와 매일 우주전쟁인 3살 다롱이와 함께 살고 있다.
아옹이는 몇 해 전 회사 납품차에 실려오면서 엄마 고양이와 강제로 헤어지게 되었고 '시하'라는 아름다운
위탁묘와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몇 번의 위기를 넘기며 나의 가족이 되었다.
다롱이는 아옹이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어 찾아간 00마루(*사설유기묘센터이자 고양이 유료 분양업체)에서 곧 죽을 것처럼 배변패드위에 쓰러져 있는 모습을 보고 순식간에 입양을 결정하고 품에 안은 아이다.
입양 계약서를 쓸 당시 사장님께서는 강제 급여를 해야 하고, 범백(*백혈구가 갑자기 감소하는 현상) 이 있을 수 있으며 일주일 이내에 폐사할 수 있음을 경고했다.
또한 '이러한 부분을 다 인지하고 입양할 경우 그 어떤 사유로도 책임비는 환불되지 않습니다.'라고 설명했지만 이상하게 그때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고 그저 다롱이를 빨리 집에 데려가고 싶었다. 다행히 다롱이는
케이지를 나와 남자 친구(*지금의 남편) 품에 안기자 마자 덜덜덜 떨리던 몸은 차분해졌고 몇 번의 병원신세 진 후 지금은 매우 건강한 모습으로 우리 집 막내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지금은 지난 시간이 무색할 정도로 밤마다 2시간씩 우다다(*밤에 거실을 달리는 모습의 의태어)를 할 만큼
매우 평온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그래서 내가 너무 방심했던 탓일까? 우리 집 아옹이의 입술이 부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3월 초 보직이 변경되면서 회사 내 꽤 큰 프로젝트의 지원업무를 담당하게 되었고 하루에 기본 2시간씩 진행되는 회의와 각종 서류들, 관련 법규를 찾아보며 8시간 내내 회사에서 시달리고 집에 오면 항상 잠자기에 바빴다. 아침에 출근 준비할 때 아옹이 와 다롱이가 졸졸졸 쫒아다니면 잠깐 바닥에 앉아 머리와 배를 쓰다듬어 주는 것이 다 일뿐 아이들과 눈 맞춤을 하며 깊은 교감을 하지 못했다. 이마저도 3월 중순이 지나면서 할 수 없었고 나는 회사의 노예(?)되어 우리 집 아옹이과 다롱이를 점점 잊어가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밤 10시를 넘어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했는데
남편이 '여보, 내가 저번 주에도 말했는데 아옹이가 자꾸 얼굴을 털면서 밥을 먹는데 오늘 자세히 보니 입술이 조금 부은 거 같아'라고 말했지만 나는 듣는 둥 마는 둥 '내일 확인해볼게'라고 말하고 씻고 바로 잠들다.
그리고 새벽에 목이 말라 거실에 물을 마시러 나갔는데 함께 자던 아옹이가 따라 나와 졸린 눈으로 발 밑에 조용히 앉는 것이 아닌가? 너무 예쁜 모습에 나도 함께 거실 바닥에 주저앉아 아옹이를 쓰다듬는데 손을 대자마자 아옹이가 고로롱(*고양이가 기분 좋을 때 내는 소리) 거리며 생전 안 하던 무릎 냥이가 되어 품 안에 쏙 들어왔다. 잘 챙겨주지도 못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지도 못하는 집사(*고양이를 키우는 주인을 일컫는 말)가 뭐 좋다고 자신의 체온을 나누어주는지 미안함과 새벽의 감성이 더해져 울컥했고 아옹이에게 연신 사과 말을 전했다.
엄마가 미안해
뭐 그리 대단한 회사라고 이렇게 예쁜 아이에게 눈길 한번, 손길 한번 주지 못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 그리 대단히 좋은 엄마라도 내 무릎에 지긋이 눈을 감고 고로롱거리고 있는지 미안하다는 말 외에는 그
어떤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아옹이를 열심히 쓰다듬고 또 쓰다듬었다. 그러다 문득 지난밤 남편이 한 이야기가 떠올랐고 아옹이의 얼굴을 살포시 들어 입술을 살피는데 새벽 감성이 더해진 약간의 울컥함이 폭발해
나는 펑펑 울고 말았다. 남편이 말한 것보다 더 심하게 오른쪽 입술이 부어있었고 잇몸은 헐어 가만히 있어도 피가 나고 있었다. 또 잇몸에 피가 나고 마르고를 반복했는지 염증 딱지가 너덜거렸다.
그제야 아옹이 밥그릇과 물그릇을 살펴보니 전날 아침에 준 밥이 그대로였고 물그릇의 물은 메말라 있었다.
우리 아옹이는 잇몸이 너무 아파 밥을 먹지 못하고 있었다.
아침마다 밥그릇과 물그릇을 갈아주면서 나는 왜 전혀 눈치 채지 못했을까? 남편이 고양이 화장실을 치우며 자꾸 아옹이가 배변이 보이지 않는다 했었는데... 몇 주 전부터 얼굴을 털면서 밥을 먹는다고 말했는데...
왜 나는 그 말들을 전혀 귀 기울여 듣지 않았을까? '내가 병원 데리고 갈까?'라는 남편의 말에 괜찮다고 내가 알아서 하겠다고 답했던 지난 시간의 나 자신이 너무 밉고 원망스러웠다.
결혼 후 아옹이는 남편과 나의 반려묘가 되었지만 아옹이를 혼자 키웠던 시간이 길어서인지 '나의 고양이'
라는 생각 너무 강해 평소에도 아옹이랑만 관련된 일은 절대 남편에게 부탁하지 않았다.
나는 '나의 고양이'라고 생각해 남편의 도움을 거절해 놓고 '나의 고양이'의 아픔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아침의 해가 떠오르고 근처 동물병원의 오픈 시간에 맞춰 아옹이과 함께 내원했다. 퉁퉁부은 눈으로 수의사
에게 아옹이의 상태를 설명했고 약간의 검사와 함께 고양이 피부병의 일종인 호산구성 의심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기존의 있던 구내염이 조금 더 진행되었다는 수의사의 설명과 함께 연고와 항생제를 처방받았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나는 아옹이에게 말했다.
아옹아, 엄마가 아무리 바빠도 아프면 아프다고 꼭 말해야 해! 알았지?
엄마도 더 신경 쓸게, 그러니까 아옹이도 꼭 말해야 해!! 알았지? 응? 알았지?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케이지 안에서 하염없이 날 바라보는 아옹이의 흑진주 눈빛에 미안함과 고마움이 잔뜩 몰려왔다. 아마 우리 아옹이는 최선을 다해서 아침마다 출근하는 나를 쫒았다니며 '엄마 나 아파요.' '엄마 나 좀 봐주세요'라고 아프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 말을 못 알아들은 것은 나 자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에 지쳐 집에 들어왔을 때 누구보다 먼저 나를 마중 나온 우리아옹이, 새벽에 화장실 갈 때, 물 마시러 갈 때 꼭 같이 나와서 나를 지켜주던 우리 아옹이.
우리 아옹이는 그런 고양이다. 집사를 아주 많이 이해해주고 사랑해 주는 나보다 더 사랑이 넘치는 고양이.
매일 저녁 약을 먹이기 위한 전쟁을 치르며 옥신각신 하지만 그래도 내 옆에서 밥 잘 먹고 배변도 잘하는
아옹이를 보니 모든 것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다. 왜 인간은 늘 후회할 짓을 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지만
이제 더 이상 똑같은 실수를 또 반복하지 않겠다 굳게 다짐하며 오늘의 궁금증. 13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