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보는 아기
아기를 어린이집에 보낸 지 3개월째 되던 날, 운 좋게 원하던 일자리에 취업이 되었다. 진짜 관운(뜻: 관리로 출세하도록 타고난 복)이 있었는지 최종합격자가 임용을 포기하면서 극적으로 추가합격이 되었다.
합격의 기쁨도 잠시 출근 후 감당하기 어려운 일들의 연속이었고 문서 하나 찾는 것조차 제대로 하지 못해 늘 기죽어 회사에 다녀야만 했다. 텃세도 당해보고, 상사한테 엄중한 경고도 들으며 정신적으로 피폐해졌지만 견디고 또 견뎠다. 그러던 와중 아기가 갑자기 아프기 시작했다. 아기는 저녁을 먹었음에도 딸기와 우유를 급하게 먹더니 새벽 내 토와 설사를 반복했고 백초시럽(아기 소화제)도 먹였지만, 소용이 없었다.
다음날 남편이 연차를 써서 병원으로 향했고 급성장염, 원인 모를 폐렴, 모세기관지염 진단을 받고 입원하게 되었다. 그래도 3일만 지나면 명절이기에 남편과 연차를 나누어 아기를 돌보았고 제발 명절 연휴가 끝나기 전에 퇴원하기를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랬다. 만약 명절 연휴가 지난 시점까지 퇴원이 확정되지 않으면 입원 도우미를 신청하거나 최후의 방법으로는 양가 어머니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양가 부모님들께 입원 소식을 알렸고 입원이 길어질 것을 대비해 입원 도우미를 알아보고 있다고 말씀드리니 시어머니의 첫 마디가 “남의 손에 애 맡기지 마라” 였다. 감사하고 또 감사하게도 어머님이 돌봐주실 수 있기 때문이었다. 다만, 그 뒤에 말이 또다시 나를 ‘아기 어린데 일하러 가는 매정한 엄마’로 만들어 아기를 안은 채 눈물 훔칠 수밖에 없었다.
“왜 남의 손에 맡겨서 애 눈치를 받게 하니,
눈치가 얼마나 빠른 아이인데, 지금도 어린이집 다니면서 눈치 보는데”
우리 아기 어린이집을 선택할 때 원장님도 만나 뵙고, 원아들도 만나 어린이집이 얼마나 좋은지 물어보고 짧지만, 수업도 참관하며 신중하고 또 신중하게 고른 곳이었다. (물론, 선택지가 작았던 것도 있지만)
아기가 아직 말을 할 수 없어 100% 장담할 수 없지만 어린이집 선생님들을 볼 때 덥석 안기고 좋아서 발을 동동 구르는 모습을 보면 그곳이 아이에게 눈치를 주거나 기죽게 만드는 곳은 아니었다. 설령 눈치를 보게 된다 한들 단체생활에서 어느 정도 필요한 부분이고 아기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부분도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물론 이 생각도 ‘부모 마음 편해지자고 하는 생각이 아니냐?’라고 한다면 딱히 반박할 수 있는 말은 없지만 가정 보육만 한다고 해서 ‘아이에게 100% 좋다.’라고 말할 수 없는 것도 같지 않을까?
걱정 어린 말씀이지만 어떻게 마음에 콕콕 박히는 말씀만 골라서 하시는지, 그 순간은 시어머니가 너무 미웠다. 하지만 급할 때 가장 빠르게 도움을 주실 수 있고 누구보다 우리 아기를 사랑하는 분이기에 나는 참고 또 참을 뿐이었다.
남의 손에 맡기는 것이 정말 나쁜 일일까? 우리 아기 눈칫밥 먹게 하는 일일까?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사실 잘 모르겠다.
그저 나는 나와 우리 가족이 처한 상황에서 가장 최선의 선택을 하기 위해 매일 노력하고 또 노력하려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