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여행기

추석 연휴 때 아무 생각없이 갔다가 고생한 이야기

by 도시 탐험가

큰 고민 없이 몽골여행을 결정했습니다.

사막에 대한 막연한 동경과 우리나라에서 생각보다는 가까운 위치.

그리고 사람사는 곳은 어디든지 다 똑같지라는 근거없는 믿음과

해외 나가봤자 별 것 없더라 같은 약간의 오만함을 무기로 질렀습니다.

인터넷으로 적당히 클릭해서 준비물 파악하고 필요하다는 것들 샀으며

그렇게 출발날짜가 다가왔고 어느새 몽골에 도착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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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스트하우스에서 자고 일어나

아침 일찍 현지 가이드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울란바토르 시내에서 출발했습니다.

시 외곽으로 가서 구글맵에서 highway라고 표기된 곳에 도착하니 왠걸 2차선 도로입니다.

겨우 2차선 도로를 가지고 고속도로라고 표기하는 것은 너무하지 않나라는 생각은 잠시.

달리다보니 어느새 눈 앞에 펼쳐지는 평원에 말문이 막힙니다.

산도 없고 나무도 없고. 그냥 끝없이 땅이 펼쳐져 있습니다.

이렇게나 아무것도 없는 풍경이라니. 맙소사.

혹여나 우주여행을 하다가 이름 모를 행성에 불시착하면 이런 기분일까요.

그냥 카메라 셧터만 눌러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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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첫 만남의 설레임은 오래가지는 않았습니다.

창문 바깥으로 계속 펼쳐지는 풍경은 멋지기는 했으나

비포장 들판을 달리는 구형 승합차 안에서 그것을 우아하게 감상하기는 힘든 일입니다.

놀이기구 탄 사람마냥 몸이 제멋대로 움직이고

혹여나 작은 둔턱이라도 만난다면 잠시나마 하늘을 나는 경험을 할 수도 있습니다.

슬슬 무시했던 2차선 고속도로가 그리워지고

지루한 마음에 가이드에게 다음 목적지까지 거리가 얼마나 남았는지 묻게 됩니다.

대답은 한결같이 다섯 시간. 네 시간. 이런 식이네요.

몇 킬로미터 쯤 남았는지 물어보면 대답을 못합니다.

예. 여긴 남은 주행거리가 중요한 곳이 아니라 시간이 중요한 곳입니다.

조급한 도시 촌사람 마음이 여기에서 들통나나요.

사실 물어볼 때마다 불러주는 그 시간도 딱히 믿을만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렇게 차 안에서 여기저기 휙휙 날아다니다보면

어느새 그 와중에 꾸벅꾸벅 졸고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역시 인간의 적응력은 대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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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여행의 절반 가량은 그렇게 어디론가 이동하면서 보낸 듯 합니다

차 안에서 햇볕 받으며 생각하고 졸았으며 가끔 내려서 기지개를 폈습니다.

제대 이후로 처음 노상방뇨를 하면서 느꼈던 그 찜찜함도 금방 사라졌으며

가끔 비포장 도로를 달리다가 멀리서 보이는 다른 차가 그렇게나 반가웠습니다.

난로를 켠 게르 안이 그렇게나 따뜻하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으며

자기 전에는 꼬박꼬박 징기스칸 금색 보드카를 마셨습니다.

숙소 근처에서 괜히 할 것이 없어서 발 아래에서 굴러다니는 나무조각을 관찰하고

여행내내 중간중간 보이던 양떼 사진을 찍고 또 찍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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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해외여행을 다녀와서 떠오르는 것은

그 곳만의 독특한 건물이나 맛있는 음식. 현지 사람들의 얼굴 같은 것일건데

몽골여행을 돌이켜보면 그런 사람이 만들어낸 흔적들은 딱히 생각나지 않습니다.

인간이 만든. 혹은 신이 만든 이런저러한 것들을 다 배제하고

하얀 도화지 위에 나를 앉혀놓고 한 일주일 정도 나를 누가 내버려둔

느낌의 여행이라고 하면 맞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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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몇 가지 자연풍경은 사진처럼 선명하게 기억 납니다.

모래가 산맥처럼 길게 끝없이 쌓여있는게

왠지 예전 살던 집 앞 놀이터 생각을 나게했던 고비사막과

그 앞에 생뚱맞게 있던 농구 골대.

다 알고 갔으면서도 보자마자 입이 쩍쩍 벌어질 정도로 멋졌던 은하수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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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중에서도 제일은 달돋이겠네요.

보름달이 지평선에서 떠오르는 걸 볼 때 그 느낌.

바다에서 보는 해돋이와 다른 뭔가 이질적인 그 느낌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정말로 우주가 있고. 그 우주 속에 지구와 달이 있고. 또 내가 있구나라는

누구나 다 알고있지만 사실 잘 생각하지 않는 그 사실이

가슴 속으로 훅 들어와서 괜히 마음이 많이 먹먹해지더라구요.

입는 침낭으로 무장하고 캠핑의자를 펼치고 앉아

그저 멍하게 하늘만 바라보면서 한 시간 정도 있었습니다.

나뭇잎이 흔들리는 소리도 없고 지나다니는 동물의 바스락거리는 소리도 없었으며

졸졸거리는 물 소리도 없고 바람도 불지 않고

그냥 앉아있는 내내 아무런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예전에 들어가봤던 무향실 안에 혼자 앉아있는 것 같았습니다.

영화 프로메테우스의 첫 장면처럼 그냥 세상에 나 혼자 있었습니다.

지금껏 내가 지켜왔던 상식이나 생각. 가치관 등등이 덧없이 느껴지더라구요.

말로 쉽게 표현할 수 없는 묘한 경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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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비사막 근처에서는 너무너무 건조해서

마스크를 쓰지 않으면 숨쉴 때마다 콧 속이 갈라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현지 음식도 딱히 입맛에 잘 맞지는 않은 터라 즐겼다고는 말 못하겠습니다

언어적 / 지역적 특수성의 문제로 교통수단 / 숙소 / 식사 등등

내 마음대로 정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수동적인 여행방식도 싫었으며

울란바토르 시내의 참을 수 없는 매연도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고로 누군가 몽골을 가자고 지금 제안한다면 딱 잘라서 싫다고 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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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냥 나라는 사람의 존재감을 선명하게 느끼고 싶거나

자연 앞에서 홀로 서 있을 때 드는 당황스러운 무력감 등이 그리울 때면

그 때는 다시 생각날 것도 같습니다.

노래 듣는 것도 귀찮아서 그냥 막연하게 창문 바깥만 보면서 달렸던.

그리고 그저 푸르공을 타고 다음 이동장소로 가는 것 빼면

아무런 생각을 하지 않았던 그 시간이 그리운 것은 아니지만 잊혀지진 않네요.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다르다. 이게 제 몽골 여행의 결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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