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보다 내 아기를 사랑하는 엄마예요
이 글을 쓰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렸다.
쓰려고 마음먹은 건 거의 한달도 더 전인데 글을 쓰려고 하면 목구멍에서 무언가 울컥울컥 올라와서 글을 쓸 수가 없었다.
이건 나를 위한 글이다.
스스로를 위로하기 위한 글.
그리고 혹여나 위로가 필요한 분들을 위한 글.
나는 사실 모유수유에 대해 감흥도, 큰 지식도 없었다.
아기에게 모유가 좋다는 건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었고, '출산하고 나면 당연히 모유가 나올 테니 아기에게 먹이면 되겠지'라고만 생각했다.
임산부 등록 후 구청에서 준 육아 관련 자료들 중 '모유수유 성공의 길'을 보며 코웃음을 쳤었다.
거창하게 '성공'이라고까지 할 건가, 이게?
그냥 하면 되는 거 아니야?
왜 다들 모유수유에 대해 말이 많을까 궁금했었다.
병원에서 아기에게 처음 젖을 물렸을 때의 기분은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사실 아직도 그때만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건드리기만 해도 부서질 것만 같은 이 작고 작은 아기가 눈도 제대로 못 뜬 채, 살겠다고 입을 앙 벌리며 내 가슴으로 파고드는데 내가 누군가에게 이렇게까지 필요한 존재가 될 수 있구나 싶고 내가 진짜 엄마가 되었구나 싶었던 순간이었다.
"많이 먹어. 내가 엄마야."
온 힘을 다해 오물오물 빨아먹는 아기를 보며 혼자서 조용히 어색하게 엄마라는 단어를 내뱉어보았던 그날.
신비로움과 경이로움이라는 걸 온몸으로 느꼈던 그날.
아마 모든 엄마들이 나와 같은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가능한 오랫동안 모유수유를 해야겠다고 결심하지 않았을까 싶다.
내 아기를 위해 오롯이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니까.
나의 아기를 위해서라면 그 정도쯤이야 당연히 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직접 해보고 나서 깨달았다.
모유수유라는 건 내가 원한다고 해서 원하는 때까지 지속해서 하기가 생각보다 매우 힘들다는 것을.
여러 상황과 여건, 그리고 아기와의 합이 잘 맞아야 하는데 하나라도 틀어지면 엄마가 힘들거나, 아기가 힘들거나, 둘 다이거나 하는 일이 발생한다.
모유수유를 하려면 자세도 중요하고, 체력도 필요하다.
특히 신생아 수유를 할 때는 아기가 너무 작아서 안지도 못하고 수유쿠션에 살포시 내려놓고 수유를 해야 하는데 아무리 자세를 잘 잡아도 수유 후엔 어깨가 아프고 허리도 뻐근하다.
(내 지인 중에는 목 디스크가 도져서 수유를 중단한 케이스도 있다.)
게다가 신생아를 돌보는 것이 보통 일인가.
출산의 여파로 생긴 손가락 마디마디, 무릎 관절, 손목의 통증을 참으며 잘못 건드리면 부러질 것 같은 가느다란 다리를 잡고 수시로 기저귀를 갈고, 아기가 응아라도 하면 혹시나 떨어뜨릴까 덜덜 떨며 안고 가서 엉덩이를 씻기고, 밤에 수시로 깨는 아기를 돌보느라 잠이 부족해서 하루 종일 눈도 아프고 머리는 띵 한데 모유수유까지 하려면 보통 체력으로는 쉽지 않다.
하지만 어쨌거나 나는 모유수유를 열심히 해 볼 생각이었는데 애석하게도 젖양이 많은 편이 아니었다.
아기가 원하는 만큼 젖이 나오지 않아 아기는 늘 배고파했고, 분유로 보충을 해주어야만 만족스러운 듯 기분 좋게 잠을 잤다.
젖양을 늘리기 위해 물도 많이 마시고, 커피 같은 카페인은 일절 마시지 않았고, 배가 고프지 않아도 밥은 세 끼 꼭 챙겨 먹었다.
원래 건더기만 먹는 스타일인데 국물까지 싹싹 긁어먹었고, 모유 양을 늘려준다는 차도 마셔보았다.
아기가 먹을 시간이 되지 않아도 규칙적으로 유축도 했다.
하지만 젖양은 내 마음대로 늘어나지 않았다.
하루는 아기가 배고파해서 젖을 물렸는데 조금 빨아먹다가 '으아아아앙' 하고 울면서 머리를 뒤로 젖히며 입에서 젖을 뺐다.
당황했다.
분명히 배가 고플 텐데.
"자, 다시 물어봐. 앙~ 먹어보자~"
몇 번을 시도했는데 아기는 먹을 생각이 없었다.
입에 억지로 넣어줘 봐도 '나는 절대로 먹지 않겠다!'는 강경한 의지를 보여주었다.
"우에에에에엑. 켁켁."
급기야 입에 있는 젖이 불편한 듯 켁켁거리기 시작했는데 마치 내가 아기를 고문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혹시 어디가 아프거나 불편해서 안 먹으려 하는 건 아니겠지?
걱정이 되어 일단 젖병에 분유를 타서 줘 보니 물고기가 미끼를 물듯 확 낚아채서 꿀꺽꿀꺽 먹기 시작했다.
우리 아기에게 유두혼동이 온 것 같았다.
아기들에겐 엄마젖을 빠는 게 젖병으로 먹는 것보다 훨씬 힘들다고 하는데 젖병으로 쉽게 먹는 것을 경험하고 나니 엄마젖을 빨기 싫어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그리고 찾아보니 엄마젖과 젖병은 빠는 방법이 다르다고 한다)
애나 어른이나 본능적으로 힘든 것보다는 쉬운 것을 찾나 보다.
아...
난 이때 크게 상심했다.
아기와 나 사이에 연결되어있던 얇은 끈이 툭 끊어진 것 같았달까.
아기가 젖 먹는 모습 보면 나도 모르게 뭉클해지고 도무지 설명할 길이 없는 알 수 없는 감정이 나와 아기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느낌이었는데.
나는 너에게 더 줄 준비가 되어있는데...
모든 게 내 잘못 같았다.
임신 호르몬이 남아있어서인지 또다시 눈물이 났다.
그 뒤로 나는 아기에게 직수(직접수유)를 더 시도해보았고, 가끔은 잘 먹어주는 날도 있었지만 점점 커가는 아기는 한 번에 먹는 양이 많이 늘어나 모유 양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 왔다.
모유수유 후에도 여전히 배가 많이 고파 힘들었던 아기는 이제 직수 자체를 거부하기 시작했다.
예전엔 그래도 조금 빨아보다가 배가 고프면 울었는데, 이젠 직수를 시작하려고만 해도 '이거 아니야!'라는 사인을 보내며 악을 쓰며 울었다.
이게 반복이 되니 나도, 아기도 울다 지치는 날들이 많아졌다.
내가 모유 양이라도 많으면 어떻게든 직수를 하며 모유를 먹이려 해 봤을 텐데 그렇지 않으니 유축해서 간식처럼 먹이고 점점 분유 수유 양이 늘어났다.
그러다 보니 서서히 젖양이 줄기 시작했고, 나는 자연스레 단유의 길을 걷게 되었다.
단유를 하기로 결정한 초반에는 마음이 많이 심란했다.
내가 원해서 단유를 하게 된 것이 아니라 더욱 그랬다.
시큰거리는 손목으로 아기에게 분유를 타 주려다 보면 왜 자꾸 내 눈에는 분유통에 적힌 '모유가 아기에게 제일 좋은 식품입니다' 글자만 보이는 건지.
내 사정은 하나도 모르는 주변 사람들의 '벌써 단유 해? 그래도 6개월은 해야지.'
'나는 1년간 완모(완전 모유)했는데. 요즘 엄마들은 육아 참 쉽게 하려고 해.'와 같은 말은 비수가 되어 꽂혔고
유축할 때마다 눈에 보이는 훅훅 줄어드는 젖양을 보며 혼자 오열을 한 날도 있었다.
모유수유를 권장하는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의 말은 전부 나를 혼내는 것 같았다.
모유의 좋은 점들을 강조하며, 모든 엄마가 반드시 해야 한다며, WHO의 모유수유 권장기간은 2년이고, 대한모유수유의사회의 권장기간은 1년이라며, 그것도 채우지 못한 나를 엄마 자격이 없는 매정한 엄마로 몰아가는 듯한 말들.
내가 그걸 몰라서 단유 하는 게 아닌데.
이럴 때면 너무 속상해서 다시 직수를 시도해보곤 했다.
하지만 아기는 울고,
젖양은 점점 줄어들고,
나도 울고,
결국 우리 아기는 완분(완전 분유)으로 가기 시작했다.
단유 하고 이제 한 달 좀 넘은 것 같다.
나는 이렇게 단유를 하게 되었지만, 분명히 여러 가지 이유로 아쉬운 마음을 안고 단유를 결정한 엄마들이 많을 것이다.
사정상 출산 후 바로 일터로 복귀할 수밖에 없는 엄마들,
건강에 이상이 생겨 모유수유를 할 수 없는 엄마들,
체력적으로 모유수유를 지속할 수 없는 엄마들,
아기가 젖을 잘 못 물어서 모유수유를 중단하게 된 엄마들,
나처럼 젖양이 적어 단유 할 수밖에 없는 엄마들 등등
속상하고 죄책감을 느낄지도 모르는 엄마들에게 그러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모유 양이 충분치 않은데도 모유만을 고집하다가는 아기가 영양실조에 걸릴 수도 있고 성장이 더디게 될 수도 있으니 분유보충이 필요하다는 소아청소년과의사의 글도 있고, 완분으로 키웠음에도 건강하게 잘 큰 아기들의 사례도 당연히 많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말자.
오랫동안 모유수유를 할 수 있었으면 정말 좋았겠지만, 우리는 각자 처한 상황이 있고, 각자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아기를 기르면 된다.
모유수유를 지속하지 않았다고 해서 결코 아기에 대한 사랑이 적은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으니까 주변인들이 생각 없이 던지는 가벼운 말에 상처받지 말자.
결정을 내리기까지 수없이 많은 생각과 고민을 했고, 그 끝에 내린 나의 선택이 바로 정답이다.
밤중 수유는 남편에게 맡기고 통잠을 자 보자.
남편에게는 아기와의 유대관계가 밤새도록 돈독해질 기회를 주고 가뿐한 가슴으로 개운하게 일어나 그동안 끊었던 커피도 한 잔씩 마시며, 또렷한 정신으로 아기와 더욱 즐거운 시간을 보내자.
활기차게 출근하여 사회인으로서 당당한 엄마의 모습을 보여주자.
열심히 일해서 번 돈으로 우리 아기에게 좋은 음식, 좋은 환경, 좋은 교육을 해주자.
임산부라서, 수유부라서 하지 못했던 일상으로 조금씩 돌아가 보자.
미용실에 가서 오랜만에 머리도 손질하고, 파마도 하고 예뻤던 출산 전으로 돌아가 보자.
임신 호르몬 때문에 생긴 기미와 피부 트러블도 관리받자.
아기도 예쁜 엄마를 당연히 좋아할 것이다!
주사약이 모유에 끼칠 영향때문에 미루고 미뤄왔던 손목과 무릎 치료를 받자.
근육통에는 망설임 없이 파스도 붙여보자.
앞으로 50년은 더 살아야 하니, 더 늦기 전에 내 몸을 돌보자.
아기의 맘마시간이 되면 서둘러 집으로 돌아가야하는 신데렐라의 삶은 그만해도 되니 주말에는 남편이 아기를 보는 동안 운동을 해서 몸매도 가꾸고 체력도 기르자.
더욱 단단하고 건강해진 팔, 다리로 우리 아기를 마음껏 안아주자.
매일매일이 아쉬울 만큼 쑥쑥 크는 우리 아기들.
벌써 신생아 시절이 어색할 만큼 커버렸지만 아직 작디작은 우리 아기.
눈에, 사진첩에 많이 담으며 아낌없이 사랑해주자.
좋은 생각만 하고, 밝고 행복한 에너지로
웃음이 넘치는 아이로 키우자.
초음파 사진 속의 작은 점을 본 순간부터
아기를 처음 내 품에 안았던 그 순간부터
우리는 엄마로서 내 아기를 위해 무엇이든 할 마음의 준비를 마쳤으니까,
아기가 앞으로 살아갈 80년의, 혹은 100년의 인생에 걸쳐 엄마로서 해줄 수 있는 것들은 무궁무진하니까,
현재 모유수유를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에 사로잡혀 더욱 중요한 것을 놓치지 말자.
최선을 다해 멋진 아이로 키워보아야지.
엄마가 많이 노력해 볼게.
이 세상의 모든 엄마들 화이팅!
p.s. 사진은 제 아들 신생아 시절이에요. 귀엽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