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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찹쌀경단 Dec 22. 2022

나도 정상, 너도 정상

P은행 다니는 직장여성 최민경입니다 13

결혼 후 제일 좋다는 신혼. 동시에 가장 많이 싸운다는 신혼.

매번 데이트하고 헤어지는 순간이 아쉬워 결혼하였으나, 30년 이상을 서로 모르는 상태로 각자 다른 생활방식으로 살아온 두 사람이 갑자기 함께 살기 시작하니 트러블이 만만치 않게 많이 생기는 것이 당연하다.


나에게는 기본 상식인 것이 상대방에게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정상이고 상대방이 비정상인 것이 아니고, 그렇다고 내가 비정상이고 상대방이 정상인 것도 아니다. 그냥 다른 것인데, 그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다.


깔끔한 성격의 재훈은 가끔 민경의 ‘게으름’이 용납되지 않는다. 편안함을 추구하는 민경은 가끔 재훈 때문에 숨이 막힌다. 빨래를 해서 널은 후, 빨래가 다 마른 것이 확인되면 개서 정리를 해야 한다는 것이 재훈의 생각이고, 민경은 그다음 빨래를 널기 전 까지는 빨래대에 옷이 계속 걸려있는 것이 뭐 어떠냐고 생각했다.


“빨래가 다 말랐으면 집어넣어야지.”

“다음에 빨래 널 때 정리해도 되는 거 아니야? 꼭 지금 해야 해?”

“계속 널어 두면 먼지 쌓이잖아. 보기에도 안 좋고.”


그럼 자기가 그냥 넣으면 되잖아,라고 말하려던 민경은 빨랫대 위의 옷이 모두 본인의 것임을 알아차렸다.


뭐야, 내 거 밖에 없잖아? 참 나. 본인 것만 접어 넣은 건가? 치사하다, 치사해. 

우리, 룸메이트인가? 흥, 두고 봐라. 나중에 나도 내 옷만 치워야지.


딱히 할 말도 없고, 어차피 치우긴 해야하니까 옷을 일부러 탁탁 소리 나게 털어서 접었다.


수건은 혹시나 떨어지더라도 풀어지지 않게 가지런히 접어 한쪽 귀퉁이를 말아 넣은 후 색깔별로 모아서 수건의 수건장에 넣어놓기로 정했는데, 가끔 민경이 수건을 잘못 넣어 놓거나 잘못 접어두면 여지없이 재훈의 잔소리가 날아왔다.


“수건 말야. 접어서 한쪽 방향으로 넣기로 했잖아? 왜 반대로 넣었어?”

“휴, 그래. 내가 실수했어. 이럴 수도 있지 뭘. 근데 이걸 꼭 이렇게 짚고 넘어가야 해?”

“자기가 이렇게 하자고 했잖아? 이렇게 해야 더 깔끔하고 보기 좋다며.”

“그래, 알았어. 나도 더 신경 쓸게.”


스트레스가 쌓였지만 사전에 합의한 내용이라 딱히 반박할 말이 없었다. 잘못을 인정하고 넘어가는 수밖에.


함께 살기 시작하며 몇 가지 규칙을 만들었다. 최대한 트러블을 줄여보고자 만든 소소한 규칙이었는데 (예를 들면 먼저 얘기한 수건을 개는 방법이라던지, 분리수거할 쓰레기 모아놓는 방법이라던지 하는 것들) 꼼꼼하고 FM 스타일의 재훈은 머릿속에 입력된 대로 오차 없이 행동으로 바로 옮겼으나, 덜렁거리는 민경은 그러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리고 우리 취침은 적어도 11시 전에는 꼭 했으면 해. 민경아, 이건 내가 결혼 전부터 계속 얘기해온 거잖아. 규칙적으로 생활하는 게 여러모로 좋은데. 늦게 자고 일어나면 아침에도 정신없고 회사 가서도 너무 피곤한데 자기는 취침시간이 너무 늦어. 난 이게 제일 불만이야.”


늘 일정한 시간에 자고, 일정한 시간에 일어나는 재훈은 그동안 마음 한 켠에 쌓아둔 것이 있었는지 갑자기 취침시간 이야기를 꺼냈다.


“어제는 인터넷으로 머 좀 찾아보다 보니 늦은 거고, 그제는 회식이 있었잖아.”

“회식 다녀와서도 시간이 늦었으면 바로 씻고 잘 준비를 해야 하는데, 와서 핸드폰 보고, 유튜브 보면서 놀다가 자니까 시간이 늦어지잖아. 11시에 충분히 잘 수 있었어.”

“물론 자기 말도 맞는데, 회식도 일의 연장선이라 정신적으로 너무 피곤했어. 좀 놀면서 스트레스 풀 시간이 필요했다고. 내가 새벽에 잔 것도 아니고 11시 50분에는 누웠는데.”

“핸드폰 보는 건 다음날 해도 되는 거 아니야? 급한 거 아니었잖아. 습관이라는 게 되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나중에 우리 아기 생기면 규칙적인 생활을 하고 일찍 자는 습관을 길러주고 싶은데 민경이 따라서 늦게 자고 수면 패턴 망가질까 봐 걱정돼.”


아, 이건 정말 너무 오버 아닌가?


“아니 무슨 좀 늦게 잔 거 가지고 지금 우리한테 있지도 않은 아기 수면 패턴을 걱정해?”


민경의 목소리가 격양되었다.

마치 어릴 때 엄마 아빠에게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라고 잔소리를 듣는 것만 같다. 서른이 넘었는데 남편에게 일찍 자라는 잔소리를 들어야 하다니. 물론 규칙적인 생활습관을 지향하는 남편의 생각은 굉장히 훌륭하고 본받을 만 하지만 가끔은 숨이 막힌다. 어떻게 사람이 로봇처럼 늘 인풋과 아웃풋이 일정할 수 있을까.


‘가끔은 그냥 눈 감고 넘어가 줄 순 없을까. 꼭 말을 해야 속이 시원한 걸까?’

‘규칙에 어긋나면 규칙을 정한 의미가 없잖아. 민경이가 잊어버린 것일 수도 있으니 알려주자. 말을 하지 않으면 입이 간지러워.’


‘가끔 이 정도는 괜찮지’라고 생각하는 느긋한 민경과 ‘함께 지키기로 한 것은 꼭 지키는 것이 맞다’는 재훈의 빈틈없는 입장차에서 두 사람은 소소한 트러블이 생겼다.


휴, 그래. 좋게 생각하자. 남들은 남편이 집안일을 안 챙겨서 스트레스라는데 그에 비하면 이건 훨씬 낫지. 잔소리 때문에 내가 좀 스트레스는 받지만 안 하는 것보다는 낫겠지. 가끔 속이 좀 답답하고 짜증이 날 때도 있지만 내가 조금만 더 신경 써서 잘 지키면 되는 걸. 이렇게 서로 맞춰가는 거겠지. 이래서 신혼 때 많이 싸운다는 건가 봐.



이런 자그마한 트러블 외에 두 사람은 꿈같이 달콤한 신혼을 보냈다.

평일 아침이면 빵이나 시리얼로 간단히 아침을 먹고 같이 버스를 타러 나갔다. 일 하는 중간중간 연애 때처럼 카톡을 주고받다가 민경은 퇴근길에 ‘오늘 저녁은 무엇을 해 먹을까’ 즐거운 고민을 하며 장을 봤고, 서툴지만 정성을 다해 차린 음식을 재훈이 맛있게 먹어주면 피곤이 풀렸다.


식사가 끝나는 즉시 재훈은 설거지를 마쳤고-빈틈없는 재훈은 설거지거리가 쌓여있는 모습은 절대 보지 못한다. 물론 장점이다-씻고 난 후에는 각자의 취미활동을 한다거나 함께 영화나 TV를 보다가 침대에 누워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들곤 했다.


주말에는 소위 말하는 ‘핫플’이라는 맛집도 찾아다녔고, 전시회도 보러 다녔다. 날씨 좋은 날엔 산책도 하고, 배드민턴도 쳤다. 매일 회사 일은 고돼도, 함께 하는 저녁과 주말이 힐링이 되어 삶이 활기차 졌다. 시부모님은 일 하느라 음식 할 시간 없을 거라며 민경이 좋아하는 멸치볶음이나 계란말이 같은 밑반찬을 준비해 가져다주었고, 친정 부모님도 재훈을 믿음직스럽고 든든한 사위로써 민경보다도 더 챙겼다.


"민경 대리, 요즘 좋아 보여~ 역시 신혼이 좋지~”라는 말도 심심찮게 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결혼이라는 거, 생각보다 꽤 괜찮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애의 연장선 같은 느낌이랄까. 원래도 말이 잘 통한다고 느꼈던 두 사람은 집에 함께 있는 시간 내내 대화가 끊이질 않았고, 결혼 전보다 결혼 후 더욱 가까워진 것 같았다.


눈 깜짝할 사이 2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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