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를 다같이라고 적었던 이유

학교 현장에서 하나님을 예배하다.

by 배재윤


설교에는 수학의 중요한 논리 중 하나인 필요충분조건이란 개념이 숨어있다. 설교란 말씀을 전하는 설교자와 말씀을 듣는 청중과의 관계를 의미한다. 설교자는 청중에게 바른 복음을 전해야 하며 설교를 듣는 청중 또한 설교자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교회 주보를 살펴보면 설교 옆에 “다같이”라고 적어둔 이유도 마찬가지이다. 설교란 말씀을 듣는 청중과 말씀을 전하는 목회자 모두가 함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설교를 아무리 열심히 들어도 설교자의 설교가 좋지 않으면 그것은 좋은 설교가 아니며 설교자의 설교가 아무리 좋아도 우리가 귀를 닫고 듣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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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2장 5절에서 이렇게 말했다.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거룩한 제사장은 설교를 전하는 설교자만 의미하는 건 아니다. 하나님은 설교자뿐만 아니라 설교를 듣는 우리 모두를 거룩한 제사장으로 부르셨다.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거룩한 제사는 주일날에만 드릴 수 있다는 명제는 틀렸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로서 주일에 드리는 예배뿐만 아니라 삶의 현장으로 나아가서도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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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를 들은 우리는 삶의 현장으로 나아가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야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라는 의식조차 잊은 채 살아갔다. 학교에서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야 한다는 기대와 결단조차 없으며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이 전혀 자랑스럽지 않다. 한 학생의 고민을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선생님 학교에서 우린 다른 아이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거 같아요. 매일 교과서나 뒤척이고 점심시간과 종례시간만을 기다잖아요. 도대체 우린 왜 그리스도인이라는 거죠? 주일을 지키기 때문인가요?”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은 매주 주일을 지키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하지만 하나님은 주일 뿐만 아니라 6일 모두 하나님의 자녀로 우릴 부르셨다. 삶의 현장에서 우린 거룩한 제사장으로서 하나님과 동행하심을 세상에 드러내야 한다. 이것이 세상과 구별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자 하나님의 자녀로 주어진 특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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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하나교회에서 〈2019년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설교를 했다. 인상 깊게 들었던 말씀이 있었다. 요한복음 15장 5절에서 예수님은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많은 시간을 교회 밖에서 살아간다. 예수님은 날마다 우리와 동행하심으로 언제 어디서든 열매 맺기를 원하신다. 그래 우린 학교 현장에서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예배자로 충분히 드러날 수 있다. 자 그렇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설교를 “다같이”라고 적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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