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오늘 내가 들었던 말씀이 마지막 말씀이라면

말씀은 은혜의 방편

by 배재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끝은 창대하리라.” 욥기 8장 7절에 나오는 말이다. 수험생은 대학합격을 기원하며 이 말을 써서 벽에 붙였고 사업가는 사업의 번창을 기대하며 이 말을 조각하여 벽에 걸어두었다. 하지만 사실 그 의도는 절대로 축복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 말의 화자는 욥의 친구 빌닷으로 욥에게 닥친 재난의 원인이 욥의 죄악 때문이라며 책망하는 말에 가깝다. 욥기 8장을 잘 살펴보면 빌닷은 욥에게 저주를 퍼부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신성모독까지 했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의 방편을 잘 활용해야 한다며 말씀과 성례 그리고 기도를 선물로 주셨다. 여기서 말씀이란 성경이며 성경을 바르게 해석한 설교이다. 말씀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말씀을 내 멋대로 해석한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권위가 있으며 세상에 단 하나뿐인 진리이다. 말씀을 내 멋대로 해석하는 일은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하는 일과 같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역사하신다. 사도행전 8장 26~40절을 살펴보자.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국고를 맡은 내시는 이사야서 53장을 읽고 있었다. 그는 은혜의 방편인 말씀을 읽고 있었지만, “털 깎는 자 앞에서 조용한 어린양”과 같은 예언된 인물이 누구인지 알지 못했다. 성령 하나님은 사마리아 지역으로 가는 집사 빌립을 내시에게로 인도했다. 빌립은 이사야서에 예언된 인물이 바로 나사렛 예수임을 알려주었고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이 성취되었음을 알려주었다. 그는 빌립의 말을 듣고 기뻐하며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겠느냐?”라고 말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하여 내시의 믿음을 불러일으켰다. 그리고 그 믿음은 신앙고백이 되었으며 빌립은 내시에게 세례를 베풀어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초대했다. 이처럼 성경은 바르게 해석하며 가르치는 일이 매우 중요하다.



말씀을 가르치는 교사와 말씀을 듣는 청중은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공부하기에 힘쓰자. 먼저 말씀을 가르치는 교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아이들을 예수님의 제자로 키워야 한다. 앞서본 에디오피아 내시 이야기는 빌립이 예수님의 지상명령을 실천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상명령이란 마태복음 28장 19~20절에 나온 말씀으로 예수님이 하늘로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말한 명령이다.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말씀을 바르게 전해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이 우리에게 하신 명령이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 내가 가르친 수업은 한 아이의 인생을 변화시킬 변곡점이 될 거란 사실을 가슴에 새기자.



말씀을 듣는 청중은 오늘 내가 들었던 말씀이 내 평생에 있어서 마지막 말씀일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자. 훌륭한 청중은 훌륭한 설교자를 만든다. 아무리 설교자가 전하는 말씀이 좋아도 청중이 깨어있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하루 24시간 중 30분에 해당하는 설교는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다. 하지만 오늘 내가 들었던 단 한 편의 설교가 내 인생을 뒤바꾸는 변곡점이 될 수 있다. 가물어 메마른 땅을 가진 농부에게 단비가 감격이 되듯이 말씀을 들으러 나아갈 때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자. 말씀과 설교를 통하여 옛사람의 모습을 버리고 새 사람으로 삶의 현장으로 나아가자. 자 그럼 다시 한번 생각해보자. 만약 오늘 내가 들었던 말씀이 마지막 말씀이라면. 우리는 말씀에 대한 소망과 기대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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